토요 시론

총선이 다가오면서 ‘이미지 정치’가 극성이다. 그러나 과도한 ‘이미지 정치’ 때문에 권력의 주변에 기생하는 음습하고 어두운 그림자들이 하나둘 스스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음은 아이러니하다.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해병대 고 채모 상병 순직 사고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받아 온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총선을 12일 앞둔 29일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등의 극렬한 저항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명 강행에 이어 호주 부임을 위해 출국한 지 11일 만인 21일 귀국했던 그가 귀국 후 8일 만에 무거운 직을 내려놓았다. 그토록 두둔하며 감쌌던 그의 윗 권력도 총선을 앞두고 요동치는 민심의 흐름이 무섭긴 무서웠던 모양이다. 이제 남은 건 본인은 물론 외압 의혹을 받는 또 다른 권력이 허물을 벗고 실체를 드러낼 차례다.

납득하기 어려운 두 사건...총선 앞두고 국민 ‘기망’

대통령실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자료사진)
대통령실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자료사진)

지난해 7월 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숨진 전북 남원 출신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입건된 이 전 장관 수사 외압 의혹의 가장 ‘윗선’으로 의심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핵심 수사 대상을 국외로 내보내는 인사를 한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수사의 피의자일 뿐 아니라 해병대 전 수사단장의 '상관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서 피해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증인으로 출석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검사 출신인 대통령의 호주 대사 임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과 비판들이 나왔다. 

최고 권력 근저에서 발생한 기이한 일은 또 있다. 앞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언론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1980년대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 언급으로 인한 논란이 발생한 지 엿새 만인 20일 사퇴했다. 역시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발생한 일이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국민을 기망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MBC는 지난 14일 황 수석이 일부 대통령실 출입 기자단과의 오찬 중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다고 보도하면서 충격과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MBC 보도에 따르면 황 수석은 “MBC는 잘 들어”라고 말한 뒤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의 저의는 의심과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황 전 수석은 앞서 MBC를 포함한 출입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과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에 대해 말하다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까지 언급하면서 화를 자초한 셈이 됐다. 특히 언론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분위기다.

전국언론노도조합 등 90개 시민언론사회단체는 다음날인 15일 성명을 내고 “며칠 전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조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장관을 호주 대사로 발령한 후 벌어진 언론의 비판과 논란에 ‘공수처와 야당‧좌파 언론이 결탁한 정치 공작”이라고 규정했다“며 ”대통령이 의혹의 꼭지점에 있는 사안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하자 황 수석이 행동대장을 자처하며 ‘칼 몇 방 맞을 각오하라’며 비판 언론을 협박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한 조폭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과 정확히 겹친다“고 비난했다.

한국기자협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기자를 겨냥한 대통령 핵심 참모의 ‘회칼 테러 발언’은 충격적”이라며 “황상무 수석의 발언은 전후 사정을 볼 때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대언론 협박이다. 평생 군사독재에 맞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오홍근 기자에 대한 만행을 태연하게 언급한 것은 언론의 비판이 불편하다고 느끼면 모든 기자를 표적으로 ‘테러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위협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또 기자협회는 “황 수석의 막말 행렬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5·18 민주항쟁과 관련해 북한 개입설에 사실상 무게를 싣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며 “개탄스럽기 그지없으며 황 수석의 발언은 국민 소통에 나서야 할 임무를 방기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국론 분열 발언”이라고 성토했다.

해결사처럼 나선 한동훈...심상치 않은 행보 ‘전율’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자료사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자료사진)

황 전 수석이 언급한 사건은 1988년 8월 6일 오홍근 중앙경제신문(중앙일보 자매지) 사회부장이 출근길에 서울시 강남구 삼익아파트 대로변에서 괴청년 3명에게 흉기로 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한때 공정을 입에 담고 활동했던 공영방송 기자와 앵커 출신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라는 애매한 옷으로 갈아입더니 특정 언론사를 겨냥한 협박 발언을 한 데 대한 공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아마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대통령실의 대응이었다. 18일까지만 해도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국정철학"이라며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버티다 결국 이틀 만에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한 듯 사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찜찜한 구석들이 남아 있다.

더구나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하루 앞선 17일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피의자인 이종섭 호주대사에 대해 "공수처는 즉각 소환을 통보해야 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말하고, MBC 기자에게 '회칼 테러' 발언을 한 황 전 수석에 대해선 "본인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자마자 일사천리로 사태가 수습된 것도 의아하다. 마치 해결사처럼 나선 그의 행보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번 총선이 끝나면 여권은 한동훈 쪽으로 '권력의 추'가 급속하게 기울 것"이란 전문가 분석이 나올 만도 하다. 

한발 더 나아가 한 위원장은 20일 "이종섭 대사 문제라든지 황상무 수석 문제를 다 해결됐다"고 자신 있게 말하며 당정 갈등설까지 나왔던 이른바 용산발 악재가 끝났다는 듯이 선언했다. 불과 열흘 사이에 바람처럼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들이다. 일련의 두 사건은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정의(正義)가 제대로 정의(定義)되지 않고 있는 단면을 보여준 씁쓸한 사례다.

사건 내막들을 자세히 복기해보면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최고 권력에 기대에 특권을 누리려 하거나 권력을 향유하려는 어둡고 음습한 그림자들의 실상을 드러낸 것과 같다. 가뜩이나 선택적 수사와 기소로 ‘정치검찰’의 역할을 자처하며 자신들의 특권에 도전하는 세력을 무자비하게 수사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아온 국민들은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류와 보수를 참칭하는 대다수 서울 언론들은 양비론 프레임을 꺼내 들어 '총선을 앞둔 여야 공방전'으로 물타기 보도를 하거나 최고 권력의 든든한 '우군 역할'을 자청할 뿐이다.

토호세력 결탁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들'...지역서도 ‘활개’

문제는 이러한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는 중앙에만 있는 게 아니고 지역에도 요소요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른바 토호세력과 결탁한 음습하고 어두운 그림자들이 총선을 앞두고 활개치는 형국이다. 대학에서 강의하던 교수들이, 또 언론사에서 공정한 감시를 외치던 기자들이 갑자기 거품을 물며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홍보의 전위대에서 진두지휘하는 사례는 다반사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끝나자마자 전북지역에서는 22대 총선에 마침표를 찍은 것처럼 보도하는 지역 언론들이 잦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지방선거를 겨냥한 낯부끄러운 지방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줄서기 경쟁이 선거구마다 벌써 한창이다. 이른바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된다’는 ‘민주당 텃발론’ 인식이 그동안 통용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갑자기 인기가 높아진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 지역 방문에서도 비슷한 분위가 피부로 느껴진다. ‘보장성 높은 정치 보험’이라도 가입하려는 듯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역 정치인들과 정치교수들, 권력 지향형 시민사회활동가들의 모습은 차마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다. 그러나 그들의 면면을 자세히 보면 과거 ‘노무현·안철수 바람’이 전북지역을 강타했을 당시에도 주변을 얼씬거렸던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보인다. 이젠 백발이 다 된 마당에 권력에 기대어 무엇을 누리려고 저럴까 하는 측은함이 묻어나게 하는 인사들도 더러 눈에 띈다.

각설하고, 이제 시민들이 이 땅에 민주주의와 정의의 회복을 위해 결연히 나서야 할 때다. '텃밭론 타령'에 휘말리거나 기가 질려 주변의 훌륭한 인물들을 지역 국회의원 후보로 적극 추천하지 않고 방관한 책임이 크지만, 그럼에도 당장 4월 10일 총선은 거대한 변화와 개혁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함께 참여해야 가능하다. 4·10 총선 전과 후로 우리 사회는 나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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