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 영화 <건국전쟁>이 누적 관객 수 100만 명을 넘기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보수 측에서 나오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술 더 떠 경복궁 옆 송현녹지광장에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한다고 밝혔다.
젊은 층에게 이승만 전 대통령은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지만, 독재와 부정선거 때문에 하야 한 사람으로 알 것 같다. 최근 보수 측에서 나오는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의견을 듣고자 지난 6일 서울 용산역에서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을 만났다. 다음은 이 전 관장과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이미 역사적 평가 끝난 이승만이란 인물 다시 띄우려는 작업...쉽게 이루어질 수도 없고 이루어져서도 안 돼”

- 영화 <건국전쟁>이 보수층 사이에 인기를 끌면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와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데 이런 분위기 어떻게 보세요?
“나눠서 봐야 될 것 같아요. 이승만을 찬양하는 <건국전쟁>이 최근 화제가 된 건 맞아요. 그런데 그걸 흥행몰이에 성공했다고 언론이 얘기하더라고요. 지금 100만 명 정도 넘었거든요. 보기에 따라 다큐멘터리 영화를 100만 명이 봤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 100만 명이라는 숫자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대형 교회와 자유총연맹 같은 단체에서도 단체 관람 하고 있고 일부 지자체에서도 공무원들한테 사실상 강요하고 있어요. 여기에 비춰보면 100만 명이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큰 숫자일까란 생각이 들어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를 찍었던 유권자 수가 1,600만 명이 넘거든요. 그 가운데 윤석열 정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30%라고 하는데 환산해 보면 윤석열 후보 찍었던 1,600만 명의 30%면 거의 500만 명이거든요. 500만 명의 극우 세력 가운데 기껏해야 100만 명만 보러 갔다고 볼 수도 있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 것이죠. 보수 언론이 그걸 지나치게 띄우고 있다는 생각이 일단 들고요.
그것과 분리해서 그러면 <건국전쟁>이 일부 보수의 판단으로 흥행에 성공했으니까, 이승만을 재평가해야 되고 이참에 이승만 기념관 지어야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데 과연 재평가가 100만 명의 관객 동원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가라면 아니라는 거죠.”
- 혹시 <건국전쟁> 보셨나요?
“저는 <건국 전쟁> 안 봤기 때문에 영화 자체에 대해서 코멘트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이 <건국전쟁>을 통해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이승만이란 인물을 다시 띄우려는 작업이 쉽게 이루어질 수도 없고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현행 헌법이 살아있는 한 이승만 띄우는 건 불가능해요. 현행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했다고 못 박아놨거든요. 4.19에 의해 쫓겨난 대통령은 이승만이에요. 4.19가 불의에 항거했다고 헌법에 못 박아 놓았는데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4.19는 불의에 항거한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죠. 이승만이 불의가 아니라고 얘기를 하면 4.19도 불의에 항거한 혁명이 아니게 되는 거예요.”
-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아마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되었지만, 독재와 부정선거 때문에 하야한 사람이라고 알거든요. 이승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승만은 세계 정치사에서 굉장히 보기가 힘든 사례입니다. 왜냐면 초대 대통령을 두 번 했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죠. 1948년 8월 15일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에서 또 초대 대통령을 지냈어요. 더 특이한 건 두 번 다 그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났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면직 됐고요. 정부 수립 이후에는 또 대통령이 됐는데 죽을 때까지 대통령 자리를 지키려고 하다가 1960년 4월에 일어난 민주혁명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났어요. 그걸로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 이승만 대통령기념사업회 명예 회장인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공이 100이면 과는 1이고 너무 폄훼돼있다고 하던데.
“거꾸로입니다. 공의 1이면 과는 백. 천, 만이에요. 유일한 공이 대한민국 정부를 정식으로 수립하는 데 참여해서 대통령이 되었다는 겁니다. 일부 보수 세력이 자꾸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침략 막아낸 게 이승만의 공로라고 얘기하는데 이승만이 6.25 전쟁에서 북한의 침략을 막아낸 게 아니에요. 연합군이 막아준 거예요. 이승만 정부는 전쟁 터지자마자 도망 다니기 바빴어요.”
- 그건 가짜뉴스고 옆에 부교 만들어서 피난시켰다던데.
“아니요. 그거야말로 역사적 날조인데요. 이승만은 전쟁 터지자마자 바로 도망갔어요. 처음엔 대전 갔다가 전황이 불리하니까 대구 갔다가 얼마 전에 비밀 자료가 해제되면서 공개됐는데 그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 망명 정부를 세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미국이 개입하고 연합군이 참전하면서 전세가 바뀌었죠. 이건 당시 한강 다리가 끊어지면서 서울에 남았던 수많은 사람이 증언하고 있어요.”
“이승만의 대표적인 과...사사오입 개헌, 부정 투표 등 민주주의 파괴”
- 아승만 대통령 과는 뭔가요?
이승만의 과를 백, 천, 만이라고 했는데 다 얘기할 순 없고 몇 가지만 얘기할게요. 민주주의를 파괴했습니다. 처음에는 국회의원 선거로 대통령이 됐거든요. 그런데 그 다음 총선거에서 이승만을 지지하는 세력보다 이승만을 반대하는 세력이 더 많은 의석수 갖게 돼요. 국회에서의 간접 선거로는 더 이상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니까, 계속 대통령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개헌합니다. 그리고 헌법에 대통령은 한 번 연임할 수 있다로 돼 있었거든요. 이승만은 1대, 2대 대통령 했어요. 그럼 3대는 못 하는 거잖아요. 3대 대통령을 또 하기 위해서 헌법을 또 바꿉니다. 이게 악명 높은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거예요.”
-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라 왕을 꿈꾼 것 아닐까요?
“맞아요. 본인은 평생 전주 이씨 왕조 후손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죠. 평생을 자신이 왕족의 후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대통령 자리도 왕으로 생각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마 이승만은 헌법으로 자신의 임기를 제한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희한한 개헌으로 자신의 임기를 사실상 무기한으로 늘려버리죠. 그래서 대통령이 다시 됐는데 당시 50년대에 이미 자유당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수준이었어요. 정상적으로 선거를 하면 이승만이 대통령이 될 수가 없고 자유당 정권이 유지가 안 돼요. 그래서 각종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부정선거를 합니다.
1950년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또는 당시 지방자치 선거를 했는데 지방선거 통해서 어마어마한 부정선거를 해요. 그 부정선거의 최종판이 바로 1960년 3.15 부정선거에요. 다른 건 얘기할 필요 없습니다. 두 가지만 얘기하면 되는데요. 하나는 사전투표에요. 3분의 1을 미리 투표함에 넣어놔요. 당시 자유당 대통령 후보이던 이승만, 그리고 당시 부통령 제도가 있었는데, 자유당 부통령 후보이던 이기붕을 찍은 표를 미리 넣어 놓아요. 그러고도 기타 여러 가지 부정선거 방식을 동원했죠. 대구는 당시 야도였습니다, 놀랍게도 3월 15일 선거 당일날 대구에서 중간 결과가 올라왔는데, 자유당 정·부통령 후보가 99% 득표를 했다는 겁니다. 공산당 식이잖아요. 말이 안 되잖아요.”
- 야도건 말건 99%가 나올 수 없잖아요.
“지금도 99%는 못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대표적인 야당 도시이던 대구에서 중간 개표 결과 이승만 이기붕 표가 거의 몰표가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자유당 정권의 수뇌부들이 깜짝 놀란 거죠. 그래서 그날 밤에 긴급 지시를 내려요. 이건 투표 부정이 아니라 개표 부정인 거죠. 근데 문제는 뭐냐 하면 사전 투표한 투표함이 마산에서 실수로 부서진 거예요. 투표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마산의 한 투표장에서 실수로 투표함이 열려버렸어요. 그 안에서 이승만 이기붕을 찍은 표가 쏟아져 나온 거예요. 그래서 마산 시민들이 분노해서 부정선거는 인정할 수 없고 선거 제대로 하라고 시위합니다. 그게 이른바 3.15 의거예요. 4월 혁명의 신호탄이었죠. 그리고 마산의 3.15 시위가 전국 각지로 번져나가요.
처음에는 선거 다시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것을 이승만 정권이 탄압하죠. 어떻게 탄압하냐면 ‘시위대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 불순분자들의 조정에 의해서 시위가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몰아갔죠. 그런데 그 말 듣고 넘어갈 학생들이 아니죠. 그래서 그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그러다가 4월 18일 서울에서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모임 갖고 시위를 해요. 그런데 그 시위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을 이승만 정권의 비호 받던 깡패들이 습격해서 유혈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러면서 4월 19일 서울 시내 대학생들이 일제히 시위를 벌이는 거죠.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4.19예요.”
“재판 과정도 없이 즉결 처분으로 100만명 민간인 학살”
- 그래도 이승만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던데.
“처음에 이승만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어요. 처음엔 선거 다시 하겠다고 했어요. 어떤 선거를 다시 하느냐면 부통령 선거를 다시 하겠다고 했어요. 이걸 미국이 가만히 보니까 큰일났거든요. 이대로 놓아두었다가는 안 될 것 같으니까 결국은 미국이 이승만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죠.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망명을 권합니다. 더 이상 한국에 계시지 마시고 하와이에 가라고요.”
또 다른 과는 뭐예요?
“두 번째 과는 민간인 학살이에요, 이게 사실 민주주의 파괴보다 더 큰 죄과일 수 있어요. 윤석열 정권이 등장하기 전에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는 역사학자들이 모여서 몇 명이 모여서 한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악의 대통령은 누구일지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누가 뽑혔을 것 같아요.”
- 전두환 씨 아닌가요?
“이승만이에요. 전두환도 물론 광주 민주화 운동을 피로 진압해서 민주주의 파괴한 역사의 죄인임에 틀림없는데 이승만 정부가 죽인 국민의 숫자와 비교하면 상대가 안 됩니다. 여순 사건부터 시작해서 제주 4.3 그다음에 6.25 전쟁 과정에서 이승만 정부가 재판을 거치지 않고 학살한 민간인 숫자를 학계에서는 거의 100만 명 정도라고 봐요. 근대 국가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 범죄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재판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돼 있거든요. 근데 재판 과정도 없이 즉결 처분으로 100만 명 정도의 민간인을 학살한 거예요.”
- 그런 거에 대해 황교안 전 대표는 대통령이 시시콜콜하게 얘기하지 않는다고 해요. 아마 이 말뜻은 이승만 대통령이 지시한 게 아닌 건 아니다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그게 대통령의 책임인 거죠. 이미 여순, 4.3에서 학살이 이루어졌거든요. 그걸 몰랐다? 그러면 정말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사람이죠. 사실상 황교안 대표의 말이 맞겠죠. 콕 집어서 대전에서 천 명 죽이고 서산에서 천 명 죽이라고 지시는 안 했겠죠. 그래도 어쨌거나 전국적으로 벌어진 학살 사건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입니다. 그게 대통령의 책임이죠.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 출범한 1기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 이른바 진화위에서도 꼼꼼하게 조사했는데 아마도 사실상 이승만 대통령의 묵인 아래 학살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더라고요. 학살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한테 있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가 없고요. 더군다나 그것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전쟁이 끝난 다음에 피해의 진상을 밝히고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서 대통령으로서 용서를 구해야죠. 그런 거 없이 오히려 학살한 사람들은 중용하고 죽은 사람들의 가족은 핍박했어요.”
“헌법에 명시된 불의에 항거한 4월 혁명으로 쫓겨난 사람...기념관을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드는 건 말도 안 돼”
- 오세훈 서울시장은 경복궁 옆 송현 녹지광장에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한다는 건데.
“오세훈 시장에게 권하고 싶어요. 기념관 만들고 싶으면 오세훈 시장 재산도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만드시라고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헌법에 명시된 불의에 항거한 4월 혁명으로 쫓겨난 사람 기념관을 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듭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 보수 측에서 이승만 대통령 띄우는 이유는 뭘까요?
“원래 보수층은 이승만에 관심이 없었어요. 보수층이 진짜 원래 좋아했던 건 박정희거든요. 그런데 지금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동시에 이승만을 띄우죠. 역사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그래요.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요. 엄청나게 싫어했어요. 그래서 이승만 정권 당시에 박정희 장군이 이미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어요. 기회를 못 잡아서 그게 1961년으로 미뤄진 것이죠. 박정희 찬양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승만 찬양하는 거 보면 저는 굉장한 위화감을 느껴요. 박정희를 제대로 공부했으면 저럴 리가 없으니까요.
보수세력이 한국 경제성장, 산업화 신화의 주역으로서의 박정희를 찬양했는데 이 보수세력이 봤을 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거든요. 다른 게 필요합니다. 산업화 그러면 반드시 따라붙는 게 민주화거든요. 그래서 산업화는 보수, 민주화는 민주 세력, 이렇게 대충 양분해서 파악했는데, 보수세력이 ‘민주도 우리 보수가 다 한 거야, 한국 민주주의를 지킨 게 누군데’라는 억지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죠. 그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으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무너졌단 거죠. 무너졌다는 건 뭐죠? 북한 통치 아래 살고 있었을 거니 한국 민주주의 지킨 주역으로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이영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