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30)

영화 '파묘'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개봉 11일 만에 600만명을 돌파하여 1,000만명 돌파는 시간문제라고들 한다.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 '사바하'에 이은 괴기영화(오컬트)인데, 일본의 정령신앙, 도깨비, 귀신 등 동양무속과 일본의 침략역사, 무속신앙 등을 비벼낸 스토리 소재가 탄탄한 연기와 복합되어 재미를 자아낸다. 탁월한 '국뽕 마케팅' 전략으로 3·1절에 맞추어 개봉하면서 주연급 이름을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 이름을 쓰고, 차량 번호도 0301, 1945, 0815를 사용하여 이른바 독립운동 마케팅도 한 몫 한 것이다.
무덤을 파낸다는 뜻의 '파묘'를 제목으로 하고 풍수사가 등장하지만, 결코 정통풍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에도 자주 소개된 일본 만화 영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에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받았고, 그는 '이웃집 도토로' 등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에는 신화와 숲의 정령신앙(에니미즘) 등 전통민속과 설화 등을 소재로 하면서도 지구환경 보전과 반전쟁 평화의 메시지를 함축한 점에서 좋은 영화로 평가 받은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본 영화 '파묘'에도 동티 등 풍수사상의 생태환경 보전 교훈과 경계가 담겨 있었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 음양사의 저주와 주술을 자칫 한국의 착한 풍수학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풍수는 '통섭의 생태과학'...사람과 지구가 공생하는 '지혜의 틀'

풍수사상은 동아시아 문화의 기반사상적 공통분모의 하나다. 우리 문화유산의 올바른 이해와 해석은 풍수사상에 대한 기초지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화유산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한 필자가 풍수공부를 하게 된 연유다. 풍수는 고려초에서 구한말까지 천년동안 국가기관의 정규직 관리들이 다루던 공적 학문이었으나, 정통풍수가 아닌 묘지술수만을 부각시킨 일제강점기에 미신으로 왜곡되었다. 묘지풍수만이 풍수라는 오해가 있으나, 고리 수도 개성, 조선 수도 한양이나 지방의 모든 관아, 향교 등의 입지와 현존하는 문화유산 건조물은 유불선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풍수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류소멸 위기에 처한 오늘날 산과 강, 모든 자연생태계를 생명체로 인식하는 풍수사상이야말로 지구 살리기의 대안 사상이 될 수 있다. 서양의 개발주의와 정복주의 자연관을 극복하고, 공존공생의 지속가능한 생태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인류와 지구 공생의 지혜틀로서 재평가되어야 한다.(유기상, 조선후기 실학자의 풍수사상)
오늘날 서양에서도 많은 풍수 책이 나오고 풍수응용 건축이 유행한다. 홍콩, 대만, 중국 등에서는 랜드마크 대형 빌딩 건축시에도 풍수사상 스토리를 입혀서 설계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풍수지식을 활용한 부동산투자로 명예와 돈을 얻었다. 오늘의 중국 주석 시진핑은 풍수를 잘 활용한 결과다.(김두규, 권력과 풍수). 최근들어 행정의 도시계획 입지선정 과정에도 공식적으로 풍수지식을 활용한 사례가 늘고 있다. 세종행정중심복합도시, 전북혁신도시, 경북도청 이전 등에 문화재위원인 김두규 교수가 공적자문기구에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풍수와 미신...'동티'는 자연을 보전하라는 교훈

우리 선조들은 산천초목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보고, 필요 최소한의 소비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했다. 집을 짓기 위해 나무 한 그루를 베더라도, 나무에 감사와 용서를 구하는 고유제를 드리고, 나무가 놀라지 않도록 '도끼들어 갑니다' 외치면서 조심스럽게 생명을 다루었다. 특히 공동체의 민속신앙 대상인 당산목이나 땅을 함부로 해치면 벌을 받는다는 '동티(動土)' 관념이 공유되었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자연환경을 보존하라는 교훈이고 경고다. 진시황의 총애를 받아 만리장성을 쌓은 몽염장군이 간신 조고의 모함으로 죽으면서, 대형토목공사로 수많은 산줄기를 끊은 자신의 죄를 자책했다. 한국의 대표적 동티이야기는 고창사람 동리 신재효가 개작한 변강쇠와 옹녀이야기인 '변강쇠전 (가루지기타령, 횡부가)'이다. 게으른 변강쇠가 장승을 베어다 불을 때고 동티나서 죽은 이야기다.

최근에도 고창지역에는 동티난 실화가 전해진다. 고수 증산마을 당산나무에 보리가리를 쌓아 두어 당산이 고사위기에 처했는데 아들이 사고를 당하자 바로 반성하고 당산나무 구제조치를 했다, 성내면 개비동 충견을 기린 개 비석를 밀어버린 포크레인 기사가 바로 교통사고를 당했다, 성송 월평마을 당산목을 해치려던 사람이 사고사를 했다는 사례 등이다. 최근에 수 십년간 주민들 삶의 일부가 된 전주천의 버드나무, 고창 월곡공원의 잣나무를 행정 관청에서 무더기로 벌목한 일로 시끄럽다. 아직도 이런 뉴스를 듣고있는 서글픈 현실이다. 돈에 눈이 멀어 낙락장송 당산목까지 팔아먹으려 시도한다니 동티날 일이다.
조선시대 타임캡슐이라는 최고의 생활사 백과사전인 <이재난고>를 쓴 이재 황윤석의 생가는 3백여년간 초가지붕으로 내려온다. 집의 크기나 목구조가 기와지붕을 이을만 하고, 경제력도 기와집 지을 여유가 있는데도 왜 굳이 초가를 고집하며 전승될까? 소의 먹이통인 구유형국 마을인 조동리에 풍수동자가 잡았다는 풍수전설의 명당터이므로, 땅기운을 오래도록 유지하려면 초가지붕을 하라는 풍수유훈이 계승되었다. 아무래도 근검절약하며 살고, 이웃에게 돈자랑하지 말고 베풀라는 교훈을 풍수설화를 통해 후손에게 대대로 내려준 것이리라.
착한 사람이 명당을 만난다(吉人逢吉地)

천지인상생의 풍수사상은 한국 전통문화의 지혜이며 과학이다. 팔만대장경을 8백여년 잘 보전한 장경각은 천연 항온항습 바람이 순환하는 절묘한 곳에 터를 잡았다. 전국의 유명한 사찰이나 문화유산은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가 없는 길지를 택하였기에 지금까지 잘 보존전승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도 풍수는 기본 교양으로 공부했다. 조선지리학의 아버지인 순창출신 여암 신경준은 한시창작법 기초교재인 <시칙 詩則>을 지으면서 풍수용어를 인용하여 한시작법을 설명하기도 했다. 생가마을 이름을 호로 쓰는 후광 김대중대통령의 호, 후광(後廣)도 사실은 풍수용어다. 마을어귀는 좁아서 바람을 막아 아늑하고, 마을 뒷쪽은 넓고 넉넉해서 살기 좋은 곳, 전착후광(前搾後廣)을 뜻하는 후광마을에서 대통령을 낳았다.

전국 각지에 복을 준다는 수많은 명당들이 있는데, 돈으로 살 것 같으면 부자들이 다 차지할 것 아닌가? 아니다. 이재 황윤석은 덕을쌓고 복을 지은 사람만이 길지를 만난다(길인봉길지 吉人逢吉地)고 했다. 돈만 있고 덕이 없는 자는 명당취득 자격요건 미달이다. 지구살리기도 지방살리기도 사람하기에 달렸다. 이 시대에도 개발을 명목으로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산줄기 혈맥 끊기, 나무베기를 즐겨하는 우두머리는 지도자로 실격이다. 이런 참사는 지역의 미래에 참으로 동티날 일 아니겠는가?
/글·사진=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