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냉소 섞인 푸념들이 벌써부터 쏟아져 나온다. 정당과 후보들 면면을 살펴보면 몇몇 후보자의 이름만 달라졌을 뿐 본질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말이 유권자들이 직접 손으로 뽑는 선거라고 하지만 이미 거대 양당의 공천 이벤트를 통해 유력 후보는 정해진 바나 다름없다. 싱거운 투표 절차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멀리 볼 필요 없이 우리 지역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총선 후보 등록까지는 2주가 채 남지 않았건만 출마에 나선 전북지역 후보들 대부분은 민주당 일색이다. 한 선거구당 많게는 5~6명의 민주당 예비후보가 난립한 지역도 있다. 이들 지역은 민주당 공천을 겨냥한 예비후보들 경쟁이 1~2년 전부터 치열하게 전개돼왔다. 그러더니 선거가 임박해서야 중앙당 주도의 공천과 경선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진행되면서 갈등과 잡음이 커지더니 민심이 두 조각 세 조각으로 갈라져 흉흉해지고 있다.

중앙당 지배 공천 관행 '독점 정치' 강화

국회 본회의장 모습(자료사진)
국회 본회의장 모습(자료사진)

공천 후유증이 극심하기는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다. 중앙당 지배 구조의 공천이 '불공정한 사천'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관행으로 뿌리내린 양당의 독점적 정치 환경이 낳은 폐해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거대 양당의 독점적 정치 구도를 깨겠다고 나선 제3지대 신당들이 지역에서 확장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의힘이 16년 만에 불모지나 다름 없는 전북의 10개 선거구 모두에서 후보를 공천할 정도인데 반해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 예비후보는 현재까지 2명뿐이다. 지난 21대 총선 때 10명에 달했던 무소속 예비후보도 3명에 불과하다. 이번 총선도 4년 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후보자의 이름만 달라졌을 뿐 거대 정당 구도에는 변화가 없다. 

선거가 점점 임박해 오면서 ‘어떻게 해야 독점 정치 구도를 바꿀 수 있을까?’란 담론과 화두는 멀어지고 ‘어떻게 해야 다수 의석(독점)을 차지할 것인가?’가 주된 화두로 작용하는 것도 예전과 비슷하다. 거대 정당들의 독점적 의석 확보를 위한 헤게모니 쟁탈전이 된 선거전에 유권자들도 점점 말려들며 세뇌당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특정당 소속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원으로 구성된 지역에서 중요 의제나 민감한 현안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전달·반영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러한 해괴한 구도 때문이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총선 과정에서 일당 독식 구도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가장 앞장서며 큰 몫을 해내고 있는 장본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바로 촘촘한 조직망과 두터운 지역 인맥, 지역당을 중심으로 상하 관계가 잘 얽힌 지방의원들이다. 겉으론 당내 공천과 경선 과정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처럼 외치면서도 지역구 위원장이자 자신들의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쥐고 있는 현역 국회의원들 편에 줄서기를 하는가 하면 그들의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펼치는 도의원과 시·군의원들이 버티고 있는 한 같은 당 소속이지만 다른 후보들은 물론 군소 정당 후보들과, 무소속 또는 정치 신인들은 한 지역에서 어려운 선거를 치러야만 한다.

4년 내내 한 지역구 민심 공략에 올인하며 선거를 위해 공들여 온 그들의 지대는 이미 정해진 바나 다름없다. 그래서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텃밭론’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정치 신인이 공천을 통과해 국회에 입성하는 일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중앙정치, 지역정치를 부속물 취급...‘지역정당’ 필요성 대두

국회배지
국회배지(자료사진)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에 실시될 지방선거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총선과 지방선거는 거대 양당 소속 공직자를 임명하는 절차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오로지 중앙당의 눈치를 보며 공천의 관문만 통과하면 승리감에 도취 돼 유권자들을 우습게 여기며 토론회 불참은 물론 선거운동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고 있다.

선거 초반엔 유권자들 앞에서 고개를 연신 수그리고 손을 흔들며 달콤한 공약들을 제시하다가도 공천만 통과하면 당선된 듯이 행동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 사례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러한 행태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무투표 당선이 확실해지자 당선증을 받기도 전에 음주운전을 하다 제명 처리된 사례가 전북지역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재선거를 치르게 됐는데도 당사자가 다시 출마해 따가운 눈총을 받은 사례는 ‘그들만의 축제’로 전락한 지방선거가 낳은 병폐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들만의 ’축제‘가 된 선거제도 하에서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졸속 또는 재탕 공약들은 지역의 골칫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중앙정치가 지역정치를 부속물 취급하고 지역의 사안을 뒷전에 놓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특정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지역정당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말이 지역정당이지 전 세계적으로는 우리나라와 같이 강력한 규제를 행하는 ‘정당법’이 존재하는 한 이 또한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높다.

‘정당법’은 그 구조상 지역정당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모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정당법’에 의하면 5개 이상 시·도당을 두고 각 시·도당마다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하는 전국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을 때만 정당으로 인정한다. 게다가 반드시 중앙당이 있어야 하며 중앙당의 사무실은 서울에 소재해야 한다. 게다가 최소 5,000명 이상의 당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여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0.01%에 해당한다. 이 같은 당원 기준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기준이다. 이는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는 헌법과 다소 불일치한 대목이란 해석이 높다.

그런데 이러한 정당에 대한 현행 헌법의 규율과 ‘정당법’의 규제는 1960년대 초반 박정희의 쿠데타 직후 등장한 제도란 점에서 얼마나 구태한 정치가 작동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나라 ‘정당법’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1962년 출범한 제3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법률 제1246호(1962년 12월 31일)로 제정·공포되고 다음 해 인 1963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군사 쿠데타 직후 제정·공포 ‘정당법’, 양당 독점 구도 뿌리...지방자치제·풀뿌리 민주주의 위협 

지방의회 상징 마크(자료사진)
지방의회 상징 마크(자료사진)

당시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자신들의 집권에 방해가 되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이들 조직을 해체해버렸고 나아가 입법·행정·사법부에 걸친 중앙 독점적 권력 행사를 시도했다. 그 결과 지방자치와 지역정치는 완벽하게 통제됐던 것이다. 이때 형성된 ‘정당법’의 틀이 군부독재가 청산되고 민주화에 접어든 오늘날까지 지역정치를 방해하고 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를테면 1962년 유신 독재정권 체제의 시혜를 만끽하고 있는 것은 당시에 뿌리를 내린 '정당법'에 기인한 거대 양당 뿐, 정작 주권자는 의사를 표출할 길도 대신할 정치인도 찾기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역정당’이란 책을 쓴 윤현식 지역정당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지역정당은 갈등의 근본 원인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서로의 입장을 명확히 확인하게 하여 지역 간의 감정 대립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지역 문제를 직시하고 지역에서 해야 할 실질적 대안을 제시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갈등의 해소가 이루어졌을 때 제대로 된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전국정당의 지역 조직이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전국정당의 지역 조직은 결정적인 순간에 지역의 이해가 아니라 중앙의 이해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역정치의 퇴보와 지방자치제도의 올바른 정착을 근본적으로 훼손시킨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거대 양당 독식 구도를 낳은 전국정당 중심의 정치제도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당법’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은 아주 오래 전이지만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축소하고 그 빈 공간에 다양한 정당 세력이 경쟁하는 사회가 곧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임에도 입법·행정·사법기관은 물론 시민사회까지 책무를 방기하는 동안 지방자치제와 풀뿌리 민주주의는 끝없는 위협을 받아왔고 지금도 받고 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자 '유권자들의 축제'라고 부르지만 기껏해야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행위’에 정체됐거나 '그들만의 축제, 잔치' 속에  정치적 혐오와 냉소를 자극시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꽃을 피우기 위한 길은 바로 거대 양당 독점 구도의 ‘파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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