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지난해 전북지역에서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일들이 발생해 도민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다. 2017년과 2019년 두 큰 국제행사를 유치한 이후 무려 4~6년 동안 장밋빛 청사진으로 포장해 도민들을 기대에 부풀게 하더니 참담한 실패를 안겨준 때문이다. 긴 준비 기간이 있었음에도 ‘2023 전북아시아태평양마스터스대회’(아태마스터스대회)와 ‘제25회 새만금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새만금잼버리)는 행정과 정치권의 부푼 기대와 자랑, 홍보에도 불구하고 모두 기대 이하의 성과와 어이없는 실패로 이어지면서 도민들의 실망과 충격이 실로 컸다.

두 국제행사를 어렵고 힘들게 유치한 때문인지 전북도와 지역 정치권은 ‘역대 가장 성공적인 대회 개최', '막대한 지역경제 효과를 달성할 것’이라고 애드벌룬을 띄우며 언론인과 시민들 앞에서 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홍보했었다. 그런데 준비·운영 과정에서 총체적 부실을 드러내며 기대치가 허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새만금잼버리 참담한 실패, 정치적 책임 없이 모두 ‘공천’ 통과

각국 참가자들이 조기 철수한 이후 새만금잼버리 야영장의 공허한 모습.
각국 참가자들이 조기 철수한 이후 새만금잼버리 야영장의 공허한 모습.

첫 대회에 투입된 사업비 21억여원과 비교하면 무려 7배가 넘는 예산을 지출한 아태마스터스대회는 투자에 비해 경제적 효과가 형편없이 저조했다. 당초 전북도와 대회조직위원회가 추산했던 625억원의 생산소득 유발에 248억원의 부가가치 창출 등 800여억원의 경제효과는 커녕 지방재정만 축낸 사례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동네잔치’, ‘허상’, 고비용 저효율' ‘낙제점’ 등의 평가가 이어진 이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되면서 시작부터 불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최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나마 전북지역에서 치러졌으나 성과는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이어 3개월 후 큰 기대 속에 열린 새만금잼버리는 더 혹독한 시련과 후폭풍을 가져다주었다. 개막 1년 전부터 야영지를 비롯한 개최지 전반의 시설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지적이 일부 언론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시큰둥하게 여기며 밀어붙이더니 안전관리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잼버리대회 역사상 초유의 조기 철수 사태를 맞게 됐다. 지역경제에 막대한 효자 노릇을 할 것이라던 자랑과는 달리 가뜩이나 침체된 지역경제에 악영향은 물론 전북의 이미지만 구기고 예산을 낭비하는 꼴이 됐다.

전북은 물론 도민들의 명예와 자존심도 여지없이 구겨졌다. 이를 유치했던 전북도의 행정 수장이었던 송하진 전 도지사는 하필 두 국제행사가 개최되기 직전 3선 도전에 나섰다가 실패해 그 책임에서 슬그머니 피해갔다.

그러나 새만금잼버리 유치 과정부터 공동조직위원장과 전북도정의 핵심 요직을 맡아 깊숙이 참여하고 관여했던 인물들은 국회로 진출하거나 재입성한 상태에서 새만금잼버리 파행과 실패를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히려 책임론이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돼 ‘네탓’ 공방으로 가열된 바람에 유야무야되면서 모든 책임에서 슬며시 비껴갔다.

민심 깡그리 무시 ‘그들만의 잔치’ 전락...유권자들 ‘불편’

더불어민주당 로고(더불어민주당 제공)
더불어민주당 로고(더불어민주당 제공)

지금도 새만금잼버리 실패 후유증은 가시지 않았다. 책임론을 놓고 벌인 여야 정치적 공방으로 전북 예산의 대폭 삭감은 잼버리대회 유치 과정보다 더 험난하고 힘들었다. 그 힘든 몫은 오로지 전북도민들이 끌어안아야 했다. 그래서 지난해 많은 도민들은 '다음 선거에는 제대로 참여하고 투표하자'는 말로 서로 위로하고 다짐하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다가온 총선 앞에서 이러한 의지가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역 현역 의원들이 공천의 문턱을 모두 통과했다. 특히 새만금잼버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의원들은 단수 공천으로 본선에 직행했다. 공천이 아닌 ‘사천’과 ‘사당화’란 논란이 일어 전례 없는 갈등과 잡음으로 내홍이 극심한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다른 예비후보들을 유권자 투표 없이 떨어뜨리고 본선으로 직행하는 정치력에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그들 중에는 특히 2016년부터 새만금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아 ‘붙박이’란 별칭을 얻었던 의원, 새만금잼버리 유치 과정에서 전북도 대외협력국장 등을 맡아 많은 해외를 방문하며 홍보에 깊숙이 참여했던 의원, 새만금잼버리 개최 전후로 민주당 전북도당 최고 책임자를 맡았던 의원 3명이 나란히 포함됐다. 이들이 민주당의 단수 공천을 받아 본선으로 직행한 모습을 바라본 도민들은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새만금잼버리 파행과 실패에 대한 책임이 명확히 규명되지 못하고 아직도 관련 감사가 모두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전북지역에서 현역 의원들의 교체 지수가 여느 때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심은 깡그리 무시된 채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하고 있으니 불편하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올 만도 하다. 

어쩌다 이상한 번호로 걸려 온 전화 몇 통화로 자기들끼리 네편 내편을 가르고 다른 예비후보들은 아예 유권자들의 심판조차 받지 못하도록 사전 제거해 줌으로써 단수로 직행하게 만든 중앙당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역 의원들을 이번 총선에서 심판하고 싶었던 유권자들은 어쩌란 말인가’란 푸념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냉철하고 깨어 있는 의식, 적극 참여하는 유권자 행동 필요

자료사진
자료사진

더구나 단수 공천으로 직행한 현역 의원들 중 2명은 총선이 39일 남은 지금까지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예비후보 등록조차 하지 않아 유권자들의 깜깜이 선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뜩이나 선거구 획정이 국회에서 실컷 낮잠을 자다 총선 41일을 앞두고 부랴부랴 지각 통과해 전국 곳곳에서 깜깜이 선거가 치러지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높다. 이처럼 혼란이 야기되고 유권자들의 참정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는 마당에 전북지역의 민주당 공천 심사 결과에 대한 반응은 더욱 싸늘하기만 하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부르지만 자칫 ‘민주주의의 독’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들이 최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특정당)의 텃밭이니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안하무인식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유권자들은 안중에도 없이 선거철만 되면 자신들만의 축제, 자신들만의 잔치로 이어가는 정치 행위와 그 집단들을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다. 침묵하고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들이 이런 풍토를 조성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고 경고했다.

지금도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뼈아픈 대가를 경고하는 중요한 격언으로 여겨진다. 2,500년 전 플라톤의 이러한 경고가 지금도 우리에게 유용한 까닭은 저질스러운 사람에게 지배받을 것인지, 참주인으로 살아갈 것인지 중요한 교훈을 선거가 끝나고 나면 늘 극명하게 일러주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을 조롱하는 공천과 사천이 되지 않도록 하고 유권자들을 짓밟는 선거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냉철하고 깨어 있는 의식, 참여하는 행동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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