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26)

겨레의 전통문화가 집약된 최대 명절 설이 본디 뜻을 잃고, 연휴로만 즐기는 요즈음이다. 세배 후 가족과 함께 둘러보기에 고창 고인돌 운곡습지마을이 제격이다. 2021년 이곳은 유럽연합 선정 지속가능한 세계 100대 관광지에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이어서 유엔세계관광기구 선정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에 한국 최초로 신안 퍼플섬과 함께 등재된 2관왕 관광지이다. 왜일까? 경치만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수천년간 천지인이 상생하며 손잡고 울력하며 보존해온 생태와 역사문화 이야기가 함께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나 유엔의 지속가능 관광이란 보편적 기준으로 보면 이러한 점이 크게 돋보인 것이다.

하필이면 첩첩산중에 구름만이 노닐다 간다하여 구름골 운곡이란 땅이름을 붙였을까? 운곡은 천도와 인륜을 착하게 지키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 주자학의 이상향이다. 주자학의 큰스승인 회암 주희(晦庵 朱熹 1130~1200)의 고향 마을 이름 운곡에서 따온 지명이다. 다른 이름인 오배이골은 5행사상에서 나온 5방골이 방언화하여 오뱅이골, 다시 발음이 편하게 받침탈락 오배이골로 바뀐 것이다. 

운곡 북극성 고인돌...세계 최대 규모 

세계 최대 규모의 300톤 고인돌이 왜 하필 운곡습지에 있을까? 한반도 문명수도였던 시절 고인돌 왕국 '높을고창 고인돌의 제왕'이 바로 이 300톤 고인돌이기 때문이다. 천문지리원리에 따라 설계된 고창지역 고인돌 중 죽림리 500여기 고인돌과 도산리 천제단 고인돌, 송암천문대 고인돌 등 주요 고인돌은 하늘의 별자리 모양을 따라서 배치하였고, 정북 방향의 북극성이 바로 운곡습지의 제왕고인돌이다. 이 곳을 하늘나라 별자리의 중심인 자미원으로 본 것이다. 제왕고인돌 주변에 왕비, 왕자, 수호장군 고인돌을 함께 배치한 것을 보면 더욱 분명하다.

고인돌시대 북극성 제왕고인돌이 이 곳에 자리한 것은, 먹고 살기도 좋았겠지만 무엇보다도 신성한 지역으로 인식한 까닭이리라. 심심산골같지만 물산이 풍부하고 장살비재로 무장현 방면, 백운재로 흥덕현 방면, 행정치, 회암재, 지겁재로 고창현방면 교통로가 5방으로 트인 이곳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다. 고려시대에는 이곳에 용계리 청자요지도 있었다. 조선시대 관찰사 김종직이 숙박한 기록이 있는 화시산 중턱의 안덕사라는 큰절이 있었고, 한지 만드는 지소가 여러 개 있었던 것을 보면 꽤 번창한 고을임을 알 수 있다.

주자학의 나라 조선시대에 다시 시절인연을 만나서 운곡은 주자가 꿈꾸던 성리학의 이상향 주자마을로 되살아난다. 진안을 유교적 이상향으로 삼고자 유교의 성인인 안자 주자 정자를 따서 물 이름을 안천, 주천, 정천으로 이름지었다. 안자, 주자, 이정자, 제갈량을 모신 사당을 세우고 세 물 이름을 따서 삼천재(三川齋)라 한것도 같은 사례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무이, 자양, 회암, 운곡, 신안, 고정 등이 들어간 서원이나 사우는 주자를 사모한 것으로 보면 된다. 고창 운곡서원과 함께, 강릉의 회암영당, 충주의 사액서원인 운곡서원, 경주의 운곡서원, 임실의 신안서원 등의 사례도 그런 부류다.

유교 국가 조선 선비의 유토피아 '운곡 오방골'

선산 김씨 사우인 운곡서원 주산은 자양산이다. 주자의 부친 주송이 공부한 자양산을 따서 지은 주자의 서실명이 자양이고 호로도 쓴다. 주자의 본관이 신안 주씨라서 운곡리에 신안이란 마을명을 붙인다. 추사 김정희 글씨로 유명한 신안구가(新安舊家)도 유학자 내림집안이란 의미다. 주자의 호가 회암이기에 죽림리 고인돌에서 운곡습지로 가는 고갯마루가 회암재, 회암재 동편 봉우리가 회암봉이다.

송암마을은 행정으로 불렸었고 송암에서 오배이골로 넘는 고개가 행정치다. 행정은 공자가 사수의 은행나무 아래서 교육했다하여 향교에 꼭 심는 은행나무 행자를 딴 정자로 유교의 상징이다. 행정치 동쪽산이 옥녀봉인데 주자의 무이구곡가 제2곡 제목이 옥녀봉이다. 용계리 신촌마을도 무이구곡 제9곡의 배경인 신촌마을을 노래한 것이고, 무이구곡의 신촌 앞산에 구름운자를 쓰는 백운암(白雲巖)과 제운봉(霽雲峰)이 있었다. 주자는 왜 구름을 좋아했을까? 주자가 무이정사를 짓고 살았던 제5곡에 "오곡산고운기심(五曲山高雲氣深)산이 높으니 구름기운도 깊도다"하고 구름을 노래한다.

하늘의 덕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으뜸이고 형통하고 이롭고 곧은 품성을 지닌 만고불변의 하늘과 대비하여, 만변만화의 조화의 원인을 구름으로 본 것이 아닐까? 산은 고요하고 부동이나 구름은 시시각각 변화하며 움직이는 동인이다. 용도 구름을 타야 비룡승천 한다. 운곡습지 주변을 주자학 관련 지명을 붙인 것은 여러 대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고 그 중심에 운곡서원이 자리한다.

운곡서원은 선산김씨의 사우로 영조때인 1766년 모양 당산에 건립했다가, 1797년 현위치로 옮겼다. 대원군 때 철폐되었다가, 1905년 복설, 1924년에 복원되었다. 주자와 선산김씨 집안 백암 김제, 농암 김주, 강호 김숙자, 점필재 김종직을 배향하고 있다. 이렇게 유서깊은 운곡서원이 운곡댐의 건설로 후손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가고, 보살피는 이 없이 쇠락해가는 서원의 모습만이 안타깝기만하다.

세계 6대 문명요람, 고창 고인돌 운곡습지

일찍이 고인돌시대 세계고인돌왕국인 고창의 제왕고인돌 자미궁을 둔 데서 알 수 있듯이, 세계 6대 문명의 요람이었던 운곡습지 고인돌이다.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주자학의 이상향이었던 이곳 고창 고인돌과 운곡습지가 다시 유럽연합이 선정한 한국 유일의 지속가능 세계 100대 관광지로, 유엔 선정 최우수 관광마을로 그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운곡습지는 한 때 인간의 경작과 훼손으로 파괴되었던 자연습지가, 댐 건설로 인간의 간섭이 사라지자 놀라운 복원력으로 생태 복원된 내륙 산간습지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글로벌한 관점에서 다시 보니 고인돌 시대 한반도 문명의 요람인 이 땅의 역사문화와 생태의 가치가 현대적으로 재평가 된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류소멸을 우려하는 오늘날, 하늘 땅 사람이 사이좋게 살던 천지인 상생의 아름다운 공생의 가치가 더욱 절실하다.

주자학의 스승인 주자와 성인들의 인의예지를 배우고 실천코자한 뜻을 땅 이름으로 새긴 지혜를 배울 일이다. 천지자연은 늘 으뜸이고 형통하고 이롭고 곧다. 하늘의 덕을 받들며 착하게 살아야만 잘 사는 사람살이다. 운곡서원의 안내판 앞면에는 운곡서원이란 이름만이, 뒷면에는 사람의 길인 인의예지, 하늘의 도인 원형이정이 새겨져 있다. 대부분 관광객은 앞만 보고 간다. 보석은 뒤에 숨겨져 있는데...새 마음 착한 마음으로 복짓는 설날을 맞고 싶구나.

/글·사진=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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