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125)

입춘!

군불머슴은 허리를 세우고 며느리는 확돌에서 갈아낸 봄죽으로 어른들의 몸을 세워 드리는 날이다. 입춘은 엄동설한 겨울 내내 방을 데우기 위해 난방 군불을 지피느라 굽어진 지리산 군불머슴의 허리가 펴지기 시작하는 날이다.

입춘은 며느리가 우물가 확돌 속에서 녹아 뱅뱅 도는 얼음을 꺼내고 봄나물과 쌀을 갈아 봄죽을 끓여 지리산 마을 어른들의 몸을 세워드리는 날이다.

입춘!

자연은 사람에게 사람 노릇 할 기회를 가져다 주는 날이고 사람은 달려온 봄의 정거장을 세워 주는 날이다. 처녀가 봄나물 캐러 갈 소쿠리를 챙기고 선비가 그림 붓을 꺼내면 봄이다.

매화 한송이 눈맞춤 했다고 봄을 다 말하지 말라. 한발 앞선 매화가 첫눈에 달려 들었을 뿐, 줄줄이 뒤에선 것들이 봄을 밀고 있으니 그렇단 말이다. 그래서 엄동설한 고개 넘어온 모두가 봄을 세우는 날 입춘이 있는 것이다. 

입춘! 

그 꽃대궐의 문을 매화가 열었을 뿐이니, 꽃대궐로 봄을 말하라.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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