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남미 여행기②

'길 위의 철학자', ‘길을 걷는 도사’, ‘길 위의 백과사전’이라는 닉네임을 지닌 신정일 선생이 이번에는 남미 여행길에 나섰다. 안데스 산맥 등 아름다운 대자연의 모습들을 직접 사진으로 담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이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길의 전도사'인 그가 먼 이국 땅에서 전해온 아름다운 대자연의 모습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메시지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기대를 많이 하고 갔을 때 실망하는 경승지가 있고, 기대하지 않고 갔다가 경탄에 경탄을 거듭할 때가 있다. 다섯 시간 반, '파타고니아'를 횡단하는 버스를 타고 갔다가 만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푸른 호수 위에 우뚝 솟은 설산을 둔 이 지역을 보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지구상의 10대 낙원'이라고 평했고, 유네스코에서는 1978년 이 지역을 생태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시간관계로 다 보지 못해서 그런지 조금은 아쉬운 풍경, 그래도 가슴이 후련해졌다.

인간은 자연 속에 있을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을 소요하듯 걸을 때 진정한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이 자연.

파타고니아는 남미 대륙의 남쪽 끝에 위치해 있고 한반도의 다섯 배쯤 되는 넓은 지역이다. 이 파타고니아 빙원 남부에 모레노 빙하가 있다. 

이 빙하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 이유는 빙원 남쪽에서 떨어져 나온 이 빙하가 계속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2m의 거리로 움직이고 있는 빙하를 보러 가던 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바람아 바람아. 나는 네 앞에서 눈 앞이 캄캄해진다.'

박재삼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오르는 모레노 빙원이 햇살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탓인지, 파랗게 빛나는 것을 보면서 매 순간 변하는 사람의 마음도 저렇게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지구가 시작되면서 매 순간 빙원은 녹아 흘렀을 것이고 내가 그곳에 갔을 때에도 빙원은 녹아서 흐를 것인데. 어느 때에 저 빙원은 그 흐름을 멈출 것인가? 바람 몹시 부는 날에 찾은 '오레노 빙하' 모습이 활홀하기 그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 내 인생의 길, 아무도 대신해서 걸어주지 않는다. 햇빛과 달빛 받으며 걷는 길, 비바람을 헤치고 눈보라를 맞으며 걷는 길, 어떤 때는 기쁨에 겨워서 걷고 어떤 때는 아픈 다리 절룩거리며 시름에 젖어 걷는 길. 문득 길을 걸으며 이런 생각에 젖어 본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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