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23)

인물도 자랑거리도 많은 고창 문화유산 중에 고창읍 화산리 호동마을에 있는 취석정(醉石亭)은 한국 전통역사문화의 보물단지다. 필자는 감히 한반도 제일 누정이라 꼽는다. 건물이 커서가 아니라 품은 뜻이 높고 크기 때문이다. 정암 조광조 학맥인 광산김씨 노계 김경희(蘆溪 金景熹 1515~1575)가 1546년에 세운 것을, 1871년 후손들이 중건한 앞면 옆면 각 3칸의 아담한 정자다. 조선전기 대표적 개혁정치가로 기묘사화 때 죽임을 당한 스승 정암 조광조와 선비들의 수난을 지켜보고, 광릉참봉을 하다 낙향하여 노산사 강학당에서 강학하던 부친 김기서에게 가학을 하고, 조광조와 문우이던 외삼촌 양팽손의 문하에서 본격 수학한다.

1534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뒤이어 문과에 급제하였건만, 간신들의 농간으로 부당하게 불합격 처리를 당하고 중종이 위로선물로 비단에 싸준 두보시집을 들고 내려와야 했던 김경희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다시 정적인 수십명의 선비를 죽이는 을사사화를 보고는 벼슬을 아예 포기하고, 강학과 교우로 풍류지사의 삶을 살았다. 도학정치와 입신양명의 청운의 꿈을 불의한 권력의 폭정으로 접어야 했던 마음의 깊은 상처를 싸매고서, 천상세계에서 우주의 주인으로 바른 뜻을 지키며 살고픈 김경희를 품격있게 살린 치유명소가 바로 취석정이다.

한국전통문화의 정수, 취석정에 어리다

벼슬길과 시절 인연이 없는 김경희는 주역의 천산돈(天山遯)괘 모양처럼 하늘만 보이는 산골에 아름답게 숨어서 바른 뜻을 지키기로 한다(嘉遯貞吉). 유학자의 근본 정신인 '하늘마음을 지키고 탐욕을 막으라는 존천리 알인욕(存天理 遏人慾)'을 팽개치고, 권력욕으로 정적 죽이기를 밥 먹듯 행하는 소인배들의 불의를 책망하면서도, 자신은 끝까지 천리를 지키는 군자의 길을 가고자 한다. 천상세계에서 우주의 주인으로 떳떳하게 살고 싶은 그의 속마음을 취석정 구석구석에 새긴 것이다. 

취석정 터잡기에 특이한 점은 북두칠성 고인돌, 칠암을 울안에 들인 점이다. 북두칠성바위가 있어서 정자 안은 천상세계가 된 것이다. 주변에 고인돌 14기가 있는데 담장안에 유독 천문대 고인돌 7기만을 들인 것은 북두칠성을 곁에 두고 천리를 따라 살고 싶었던 까닭이리라. 칠성고인돌은 국자모양의 네 별을 연결하면 하지, 춘추분, 동지의 일출방위를 맞춘 천문대다. 일년 사시 태양과 별자리 운행과 주요 지형의 방위각을 알 수 있다. 천지인 상생으로 하지축 고인돌은 방장산 벽오봉에, 동지축은 화산 등선봉에 각각 맞춰져 있다.

독특한 정자명 취석정은 도연명의 풍류 경지를 닮고 싶은 심정이 드러난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풍류객이 된 귀거래사의 도연명이 술에 취해 눕곤 했다는 연명취석(淵明醉石)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에서 노계는 선조대 대문장가로 꼽히며 송강 정철의 스승인 외사촌 양응정, 정철의 맏형인 정자, 송인수, 이만영 등과 교유한다. 고창현의 산간 벽촌 취석정이 호남 문인들의 교유 무대로 호남문학 중심이었던 셈이다. 사화와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겪어야 했던 쓰라린 상처를, 한잔 술에 취하여 북두칠성 위에서 별과 함께 노래하며 시문을 남겼다. 귀한 저술들이 불타버리고 현재 노계집 2권 1책만 남은 일이 애석하다. 

취석정에서 스스로 우주의 주인이 된 선비 '노계 김경희'

취석정의 건축구조는 팔작지붕에 우물마루 계자난간을 갖춘 전통 정자 양식이다. 특이한 점은 바깥은 둥근기둥, 안쪽은 사각기둥으로 하여 하늘땅 천원지방을 나타내며 음양을 조화시킨다. 전체 공간을 우물정(井)자 모양의 9등분한 9궁 한 가운데에 방 한칸을 들였다. 계자난간의 연잎 모양 부재인 하엽에 태극과 주역의 8괘를 새겨 놓아 우주를 형상화 한다. 노계의 우주를 취석정에 펼치고 우주의 중심에서 주인이 되어 천리를 지키며 노닌 것이다. 이곳에서 걸출한 호남문인들과 시문을 짓고 풍류를 즐기며 세월을 낚았다.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도운 사호 오익창, 경기전 참봉으로 전주사고를 보전한 도암 오희길 등 많은 제자를 기르기도 했다. 노계가 27세 당시 임인년 대흉년을 탄식하며 지은 <기민부饑民賦>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아아 슬프다 하소연할 곳 없는 백성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죽어간다. 가뭄과 돌림병으로 굶주려 죽어가는 백성을 보면서 한탄하지만, 외진 골짝 서생의 말을 그 누가 구중궁궐에 전해주리오"

이처럼 안타까운 심정으로 나라 걱정도 떨칠 수 없었던 선비의 고고한 삶을 배우는 취석정이다. 

전통 치유문화 되살려야 

정부의 문화도시지정을 준비하면서 2019년부터 치유문화를 소재로 연구조사에 착수하고, 2020년 6월에 <고창세계유산을 활용한 문화치유 콘텐츠개발 학술대회>를 열었다. 문화관광재단, 군민들과 전문가들의 집단지혜를 모으고 울력한 결과, 전국 최초의 문화치유, 치유문화를 핵심주제로 법정문화도시가 되었다. 과잉 경쟁과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은 온갖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쳤다.

문화의 여러 기능중에 치유문화를 선점한 고창에서, 일찍이 가슴이 찢어질 분노와 아픔을 스스로 승화하여, 신선처럼 풍류를 즐기며 바르게 살던 선비 김경희와 취석정은 귀한 치유문화 명소다. 때마침 모양성 동문개방과 노동저수지 수상길 개통으로 접근성도 좋아진 취석정을 치유문화유산으로서도 재조명하고 활용하면 좋겠다.

문화재청이 문화유산 안내판 정비 우수 시군으로 선정한 고창군이지만, 계속해서 쉽고 재미있게 바뀌면 좋겠다. 딱딱한 건축구조나 전문용어 위주 설명에서, 품은 정신과 사람이야기를 함께 설명하는 재미있는 안내판으로 개선되길 기대한다. 취석정에서 북두칠성 고인돌과 우주원리의 건축배치, 선비 김경희의 고고한 삶을 뺀다면, 담장 속에 작은 기와집 한 채만 보고 갈 뿐이다. 

/글·사진=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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