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는 번식지와 추운 겨울을 나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어 철 따라 옮겨 다니며 사는 새를 '철새'라 부른다. 또 곤충인 '불나방'은 비교적 큰 나방으로 밤에 불을 향해 날아든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불꽃처럼 화려한 날개의 색상과 무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포유류인 '박쥐'는 다양한 동물군에서 갈라져 나와 독자적으로 진화한 동물이다. 새는 아닌데 그렇다고 쥐도 아닌 동물이어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야비한 동물’의 대명사로 취급을 받아왔다.
이밖에 심해에서 사는 바닷물고기인 '갈치'는 성질이 급하고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특징을 지닌다. 또 다른 특징으로 갈치는 ‘갈치의 주요 먹이’란 점이 특이하다. 이처럼 철새, 박쥐, 불나방, 갈치는 생태학적으로 분류가 다르며 특성 또한 모두 다르다. 그런데 선거철만 되면 정치판에 자주 호출되며 정치인 이름 앞에 붙여져 호명되는 이유는 뭘까?
‘철새’, ‘불나방’, ‘박쥐’, ‘갈치’...선거철만 되면 호출되는 이유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여기저기 붙기를 일삼는 기회주의자를 빗댄 정치인들 앞에 따라붙는 명칭이 바로 ‘철새 정치인’, ‘불나방 정치인’, ‘박쥐 정치인’, ‘갈치 정치인’ 등이다. 지역과 유권자들 사이를 파고들며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거나 기득권을 차지하려는 정치인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정치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 없이 극성을 부린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주광성(走光性, phototaxis)’을 들 수 있다. 정치판에서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조직을 자유롭게 향하거나, 피하는 공통적인 ‘주광적 습성’을 지녔다.
그동안 한국 정치사에서 ‘철새 정치인’과 ‘불나방 정치인’이란 표현은 많이 들어왔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이 당 저 당을 기웃거리며 옮겨다니는 정치인들을 철새 또는 불나방 정치인이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최근엔 ‘박쥐 정치인’과 ‘갈치 정치인’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할 정도로 비유가 격해지는 양상이다. 정당을 자주 옮기거나 동료들을 배신하고 자신만의 정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정치인들을 빗대어 부르는 명칭이다.
근래에 한 야당 정치인은 “4월 총선을 눈앞에 두고 정당 내부에서 어떤 지도부나 대표든 동료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욕하면서 자신의 정치적인 공간을 넓히는 그런 정치는 '갈치정치'”라고 표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쥐정치나 철새정치 보다 더 나쁜 갈치정치를 하고 있다”고 탈당한 옛 동료들을 향해 거칠게 비난했다. 그러나 모두가 구태 정치의 표본이다.
정치인마다 다른 ‘주광성’...총선 앞두고 화려한 ‘이합집산’

흔히 '정치인(政治人, Politician)'이라고 하면 정치적 권력 획득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지칭한다. 더 넓은 의미로 '정치인'은 입법·사법·행정 등의 작용에 관여하거나 국가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는 존재를 뜻하지만 국가와 지역, 사람마다 정치인을 개념 정의하거나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다. 이것은 바로 ‘정치적 주광성’이 정치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키며 집행하는 권한이 정치인에게 주어지고 있다.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선거에서 당선과 낙선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천당과 지옥’으로 구분될 정도다. 당선되면 하루 아침에 신분과 권력이 상승하지만 낙선하게 되면 그동안 지녀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합집산하는 정치인들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탈당’과 ‘창당’이 붐을 이루는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권이야말로 가장 화려한 '이합집산의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그들만의 빅리그·빅텐트 향해 '이합집산', 언제까지?
한 정당과 지역구에서 5선을 하며 무려 20여년을 함께 의정활동을 했던 동료들과 하루 아침에 등을 돌리며 탈당을 하자마자 다른 정당으로 옮긴 정치인을 바라보며 많은 유권자들이 실망과 충격에 휩싸인 것도 정치인의 ‘ 주광성’이 유권자들이 추구하고 바라는 ‘정치성’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배신자’라는 비난의 화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립적이며 때론 적대적 관계였던 정당의 옷으로 갈아입은 정치인의 놀라운 변신을 바라보며 많은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한편으론 이토록 정치 풍토를 어지럽힌 '제도'에 실망이 더 컸을 것이다. 어디 이 뿐인가. 심지어 24년을 한 정당에서 활동하며 당의 대표까지 지냈던 정치인이 당과의 결별 선언을 하는 과정은 더욱 착잡하고 혼란스럽게 했다. 어쩌다 우리 정치가 이 지경이 됐을까?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과 다원성은 사라지고 거대 양당의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정치권이 선거철만 되면 불공정한 공천 장사로 ‘그들만의 빅리그’를 펼치거나 정당의 리그에서 탈락·이탈한 정치인들은 또 다른 ‘빅텐트’를 향해 이합집산하는 양태를 언제까지 바라만 보아야 한단 말인가. 철새, 박쥐, 불나방 심지어 ‘갈치 정치인’이란 명칭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들을 이토록 만든 것은 기득권 대물림과 유지를 위한 각종 제도에서 기인한다.
기득권을 틀어 쥔 정치인들에 의해 유지되는 정치·선거제도가 대표적인 문제로 제기되지만 개선은 늘 요원하기만 하다. 국회의원 선거가 이제 겨우 3개월 남짓 남았는데도 선거구 획정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국회에서 선거구 획정안이 잠자고 있는 사이에 일부 지역의 정치 신인들은 어느 곳에 출마할지 결정도 하지 못한 채 깜깜이 선거운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지만 현역 의원들은 절대로 개선을 서두르지 않는다.
기울어진 제도, 정치인 역할 다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을 선택한 유권자 잘못 더 커

더욱이 4년 내내 한 지역구에서 선거운동을 하다시피 해 온 현역 의원들과 공천 경쟁을 해야 하는 신인들로서는 기득권을 뚫고 제도권에 진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 그만큼 제도적 걸림돌이 너무 많은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과 그에 못지않은 지위를 고려할 때 그들이 발생시키는 비도덕적 문제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작게는 박탈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물론 심각한 경우 혼란을 야기하여 엄청난 사회적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그들은 막대한 특권을 유지하려고만 한다. 이는 결국 정치인의 본질적 역할에 위배되는 상황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그 역할과 도덕적 기준이 엄격하고 상식적이어야 한다는 데 큰 이견이 없다.
결국은 정치인들의 제 역할과 도덕성 제고를 정치인들 스스로에게만 맡겨 놓은 채 공정과 상식이 통용되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이 깨어야 하고, 나서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철새·불나방·박쥐·갈치 정치인’의 무차별 양산도 기울어진 제도와 정치인 본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들을 선택한 유권자들의 잘못이 더 크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