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20)

갑진년 새해가 밝아왔다. 새해 아침에도 지구촌에는 종교와 문명의 충돌, 전쟁지도자의 탐욕으로 죽어가는 애먼 시민들이 울부짓는다. 남북으로 갈라진 나라 안에서도 동서로, 이념으로, 내로남불로 갈라쳐서 사욕을 챙기려는 사이비 지도자들이 애먼 국민들 속 터지게 하는 새해 아침이다. 그래도 ㄱ자교회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아름다운 사람과 공생의 희망을 빌어본다.

고창 방장산 자락에서 작지만 큰 문학관 <책이 있는 풍경>을 운영하며 재능기부하는 문학평론가 박영진 촌장은 국민 애창곡 '봄날은 간다'는 그냥 노래가 아니라 '절창시'라고 평한다.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1위, 가장 많은 가수들이 다시 부른 노래 1위인 이 노래의 불멸의 매력을 그의 신간 <사랑의 인문학 번지점프하다>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재미있게 분석하여 문학계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노래의 노랫말에 녹아 있는, 유독 정이 많은 한국인 특유의 공감 정서가 불후의 명곡을 만든 근원적 힘이라고 생각한다. 동고동락,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해야 우리다. 이 노래의 1, 2, 3절에 들어 있는, 꽃을 봐도 별을 봐도, 새소리를 들어도, " 같이 웃고 같이 울던 ᆢ서로 웃고 서로 울던 ᆢ 따라 웃고 따라 울던 "이란 대목은 동고동락이 몸과 맘에 배인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정서가 세대를 초월하여 한국인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불후의 국민애창곡이 된 바탕이리라. 이웃사촌이 함께 웃어야 가장 잘 웃는 것임을 잘 아는 우리 겨레다. 

한국 목수, 문명의 충돌을 녹여내다 

일찍이 2차대전 직후부터 피어슨은 "문명에 바탕을 둔 국제질서 평화유지"를 강조하였다. 1990년대에 국제적 테러와 전쟁의 근원이 "문명의 충돌"임을 통찰한 사뮤엘 헌팅톤은 종교, 인종, 언어, 역사, 정치제도 등 차이로 인한 전쟁위험을 화해와 공존으로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한국사에서 가장 뚜렷한 문명의 충돌 한 장면이 유교문화 질서가 오랜 세월 강고하게 구축된 조선후기에 근본질서가 뒤바뀌는 사상과 신앙체계인 천주교와 기독교가 들어온 때이다. 하늘 뜻인 박애정신을 어떻게 베풀까 하는 근본문제가 아닌, 제사의례 같은 지엽적 문제로 수많은 순교자가 죽임을 당해야 했다.

천주교 박해이후에 들어온 기독교도 유교문화질서와 충돌이 많았지만, 한국인 특유의 포용과 창의 문화로 슬기롭게 해결한 아름다운 사례가 ㄱ자교회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철벽을 억지로 허물지 않고 잠시 우회하여, 남녀가 자리는 따로 앉되 예배는 함께 올리는 예배당을 구상한 것이다. 동서문화 차이가 줄 충격을 피하면서, 유교와 기독교 질서가 함께 공존하는 지혜를 찾은 것이 ㄱ자교회의 슬기다. 20세기 초에 시작된 ㄱ자교회는 한국인의 포용문화가 한옥건축 양식으로 꽃핀 것으로 한국 교회사나 건축사에 특기할 점이다.

귀한 문화유산인 ㄱ자교회들이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사라져버린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다행히 전북에는 김제 금산교회와 익산 두동교회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잘 보존되고 있고, 완주 되재성당에도 흔적이 남아있다. 미륵불교의 상징인 금산사 사하촌 용화마을에 들어선 ㄱ자교회 금산교회에서는 동서양 문명이 함께 손잡고, 영호남이 하나이고, 머슴과 주인이 상생하는 하늘마음 보자기로 모든 다른 것들을 다 감싸주고 공존하는 지상천국이 실현된다. 3대를 이어 사랑과 은혜를 주고받으며 함께 공존공영하는 아름다운 사람 이야기의 꽂밭이 된다. 

아름다움은 모난 생각도 둥글게 안아준다 

우리말 '아름답다'의 어원은 포용하다, '안다'의 명사형 '안음'이 발음하기 쉽게 꽃다발 한 아름처럼, 아름으로 변한 것이다. 나와 종교, 정치적이념, 출신 배경, 사상이 다르더라도 안아주고 포용하는 것이 하늘 마음, 곧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다. 한자 아름다울 미美자는 큰 양을 상징한다. 하늘에 천제를 지낼 때 큰 양 가죽 옷을 입고, 제물로 희생양을 올린 것은, 하늘 뜻에 가장 순종하는 동물이 양이라는 데서 연유한다.

한자 아름다울 미의 기준도 결국 천도天道에 순응함이다. 불교 터전에 자리잡고, ㄱ자교회로 동서양 윤리의 차이를 넘어 공존한 초기 금산교회에는 유교의 하늘 뜻인 천도와 천리, 기독교의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한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경상도 남해 출신 고아로 배고픔을 면하려고 김제평야를 찾은 머슴 이자익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마부로 취업시켜 기독교 신자로, 장로로, 목사로 키우고 섬기던 아름다운 부자 주인 조덕삼 장로가 있었다.

장로회 총회장을 세번이나 역임한 이자익 목사는 머슴시절 주인 조덕삼을 신분을 초월하여 감동시킨 진정한 섬김과 하늘마음이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모난 생각도 사상도 이념도 빈천도 다 감싸안고서, 공생과 공존의 가치를 따른다. 우주는 공생공존의 하늘그물망이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자리이타의 마음이 모든 종교나 사상, 이념의 바탕이 되어야한다. 그래야만 나도 살고, 나라도 살고, 지구도 살 수 있다. 

이제는 합굿을 쳐야할 때...가방을 버리고 보자기로 싸보자

일본과의 항일독립전쟁,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을 겪고서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모범국가 대한민국이 되었다. 물질적 풍요와는 달리 가치관과 사상적 빈곤과 편협함이 심해지는 점이 우려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재발한 철지난 이념 논쟁, 집단 양극단화, 팬덤정치의 위험성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생각이 다른 상대와도 중간에서 만나서 대화하고 타협하는 게 정치의 본질이다.

ㄱ자의 꼭지점에서 동서양의 문명, 유교와 기독교도 다 공존하지 않았던가? 이제 합굿을 쳐야할 때다. 간이 잘 맞으면서도 흥겨운 우리 고창 농악놀이판에서도, 처음에 마을별로 온갖 재주자랑과 가락을 뽐내고 겨루다가 막판에는 모든 마을이 어울려 합굿을 치며 화합으로 마무리한다. 마을마다 조금씩 가락이 다르고, 합동연습을 하지 않아도 잠시만 함께 놀면 완벽한 한 패가 된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초청된 남미나 아프리카의 타악팀과 한국 농악이 함께 놀면 금새 어울림 가락을 찾아간다.

나만 잘 살겠다는 허튼 생각을 고쳐먹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공존하려는 하늘 마음을 가진 지도자들이 비룡승천하는 갑진년이 되면 좋겠다. 흑백논리와 탐욕으로 팬덤들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분열주의, 지역주의와 이념 논쟁으로 국민을 편가르는 저급한 정치 행태를 매섭게 꾸짓는 참언론과 어른들이 많아지게 하소서. 위대한 우리 겨레가 공존 공생의 아름다운 하늘 뜻을 섬기고,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 사상들을 다 품을 수 있는 너른 가슴을 주소서. 올 초파일에는 교회 앞마당마다 석가탄신 축하 글이 걸리면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 되리라.

/글·사진=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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