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익산시 왕궁면 학호마을 축산단지 전경.(사진=익산시 제공)
익산시 왕궁면 학호마을 축산단지 전경.(사진=익산시 제공)

전북도와 익산시는 최근 '왕궁 축산단지의 마지막 농가와 매입 계약을 체결하고 소유권을 이전했다'고 밝히면서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보도자료 등을 통해 자화자찬했다. 그러자 일부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축산 악취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곳이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며 크게 반겼다.

오랫동안 ‘악취의 주범 마을’로 폄훼 받고 지금까지 ‘돼지 냄새 진원지’라는 낙인이 찍힌 곳은 다름 아닌 지난 1948년 정부의 ‘한센인 강제 격리 정책’ 일환으로 조성된 익산시 왕궁면 학호마을 인근 축산단지다. 그간 호남고속도로 악취와 새만금 수질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심지어 미국 언론은 물론 국내 언론들까지 가세해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운용본부를 향해 '돼지 냄새 나는 곳으로 이전해 이미지가 구겼다'고 비아냥과 조롱을 퍼부으며 손가락질하던 바로 그곳이다.

”국민 노후자금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돼지 우리 냄새’ 나는 곳으로?“

2018년 9월 1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북혁신도시 이전을 비판적으로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의 화면.(홈페이지 갈무리)
2018년 9월 1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북혁신도시 이전을 비판적으로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의 화면.(홈페이지 갈무리)

미국의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8년 9월 전북혁신도시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비하하는 보도를 해 논란이 거셌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우리나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자격 요건과 관련해 “돼지와 가축 분뇨 냄새에 대한 관용은 필수”라고 보도하며 조롱하는 뉘앙스의 돼지 삽화를 그려 넣어 주목을 끌었다. 국내 주요 언론들도 당시 이를 인용해 보도하며 함께 조롱에 가세했다. 

당시 600조원이 넘는 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7년 2월 서울에서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했다. 전북혁신도시에는 국민연금공단과 농촌진흥청 등 정부기관 12곳이 옮겨왔다. 그런데 배가 아픈 것인지 실제 냄새 때문에 취재하기 힘든 것인지 국내외 언론들은 이곳을 소개할 때면 ‘돼지 냄새’를 수식어로 사용하곤 했다.

올 3월에도 KBS 소속 기자가 전주시에 대해 ‘돼지 우리 냄새가 난다’는 등의 비하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는데 당시에도 논란의 진원지로 익산 왕궁 축산단지가 지목됐다. 이러한 돼지 냄새의 진원지를 차단하겠다며 그동안 전북도와 익산시 등은 지난 2010년부터 축사 매입 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매입비 부족 등의 문제로 난항을 겪다가 이제야 완료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애초 5년 안에 204개 축사를 모두 매입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8년이 지체됐다. 다시말하면 혁신도시에 기금운용본부 등이 들어서기 전에 매입을 완료하려던 것이 미뤄진 것이다. 그러나 바깥 세상으로부터 악취의 진원지로 꼽히며 온갖 편견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누구도 감싸거나 보호해 주지 않았다. 한센인들에 대한 차별과 소외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주민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이 ‘어둠에서 벗어났다’, ‘환경오염 지표가 달라지게 좋았다’, ‘냄새가 사라졌다’는 등의 앞서간 표현이 보도자료와 언론 기사들에서 자주 눈에 띈다. 이 곳에는 아직도 400여명의 한센인들이 살고 있다.

전국 8,100여명의 한센인들은 익산을 비롯해 남원 등 전북지역에만 770명이 살고 있으면서 전문치료와 재활서비스를 위한 의료시설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요원하기만 하다. 대부분 고령인 이들이 사라지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그동안 정부와 우리 사회는 그들을 강제로 격리시켜 놓고 그저 바라만 보아 왔던 것이다.

'문둥병'이라 부르며 신의 저주처럼 취급...접촉 꺼리게 만든 '사회'

익산시 왕궁면 학호마을 축사 내부 전경.(사진=익산시 제공) 
익산시 왕궁면 학호마을 축사 내부 전경.(사진=익산시 제공) 

'나병', '문둥병' 등으로 불리는 질병인 ‘한센병’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르웨이의 의사 '게르하르트 헨리크 아우메우에르 한센(Gerhard Henrik Armauer Hansen, 1841~1912)'이 나결절(Mycobacterium leprae)의 조직에서 세균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명명함으로써 '한센병'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피부와 말초신경계, 상기도의 점막을 침범하여 조직을 변형시키는 질환인 한센병은 한의학에서는 ‘가라(痂癩)·풍병(風病)·대풍라(大風癩)’라고 했으나 치료가 불가능했던 시대에는 ‘하늘이 내린 벌’이라는 뜻으로 ‘천형병(天刑病)’ 또는 ‘업병(業病)’이라고도 불렸다. 

'문둥병'이라 부르며 신의 저주처럼 취급해 환자들과의 접촉을 꺼리게 만드는 한 이유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혐오적인 표현으로 쓰여온 이유 때문에 한센인들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학살과 차별 속에서 살아왔다. 해방 이후에도 정부는 한센인들의 자활을 위해 이들을 이주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위한 강제 이주였다.

'돼지 냄새의 진원지'라며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멸시 받아온 익산 왕궁면 거주 한센인들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소록도에 강제로 이주당했다가 1948년에서야 요양소인 '소생원'이 설립된 이후 1970년대를 전후해 본격적으로 옮겨와 축산업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전국 한센인구(8,100여명)의 10%가량이 전북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20여명(등록 관리자)이 익산시 왕궁면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 한센인들은 1948년 정부의 강제 격리정책 일환으로 마을을 형성했으며 1950년대부터 조성된 정착 농원에 축사가 밀집되면서 악취의 진원지로 멸시 당하며 살아왔다. 전국의 한센인구는 가장 많은 전북 외에도 경북 480명, 경남 460여명 순이며, 정착 마을은 경남 24개, 경북 19개, 전북 11개, 전남 8개 순이다. 전북지역에는 익산시 외에 남원시와 김제시 등에 지금도 많은 한센인들이 집단촌을 이루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하늘이 내린 형벌’...강제 이주 40년 지나서야 정부 사과

2021년에서야 국민권익위원회(국민권익위)는 "40년 전 정부의 강압적인 집단 이주 이후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한 채 고통 받은 한센인들에게 정부를 대표해 사과를 한다“며 "이제라도 따뜻한 보금자리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쏟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그나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정부가 전국 68개 지방자치단체, 한국한센총연합회 등 관련 단체와 합동으로 전국 82개소 한센인 마을의 석면건축물 방치 현황 등 생활환경과 주민복지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는 것과 그동안 쉬쉬해왔던 현황 자료들이 일부 공개되기 시작했을 뿐이다.

​국민권익위가 파악한 국내 한센인들의 평균 연령은 80.5세로 고령이고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80.5%)로 유해물질과 악취 등에 노출된 열악한 주거환경과 난방 등 기본적인 생활 지원 시스템이 취약한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평생을 '문둥이'로 천시받으며 사회와 격리된 채 없는 사람처럼 숨어서 살아온 한센인들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지만 그들을 반기는 곳은 없다.

이들을 받아주는 의료기관과 요양시설도 사실상 없기 때문에 세상과 격리된 채 정착촌에서 제대로 치료도, 요양도 받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거나 맞이하고 있다. 병이 완치됐음에도 '병이 옮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 탓에 그들은 치료 받을 권리도 포기한 채 존엄한 삶의 마무리조차 차별과 편견을 감내하고 있다.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며 온갖 냉대와 차별, 낙인을 견디며 살아온 것도 억울한데 삶의 끝자락까지 차별과 편견으로 마감을 하는 한센인들. 그들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자신들의 2세와 3세들은 더 이상 멸시 당하지 않고 차별 받지 않는 사회,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다. 

‘소록도 천사’라 불리던 간호사 마가렛 피사렉(왼쪽)과 마리안느 스퇴거(오른쪽)가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모습.(사진=법무부 제공)
‘소록도 천사’라 불리던 간호사 마가렛 피사렉(왼쪽)과 마리안느 스퇴거(오른쪽)가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모습.(사진=법무부 제공)

지난 9월 전남 고흥군에서 '소록도의 천사'로 불리어왔던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의 선종이 큰 주목을 받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머나먼 타국인 대한민국 남쪽 섬 소록도 한센인 마을에서 간호사로 평생을 봉사하다 88세로 유명을 달리한 마가렛 피사렉은 폴란드 출생으로 마리안느 스퇴거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간호대학을 졸업 후 소록도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원해 1966년부터 2005년까지 40여 년간 봉사하며 살아왔다. 

특히 사랑과 헌신을 다해 한센인들을 보살펴 온 그들에게는 단순한 간호사가 아니라 따뜻한 이웃이고 엄마이자 소록도의 천사로 불렸다. 두 사람은 유럽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호소해 40여 년간 소록도에 정신병동, 결핵병동, 맹인병동, 목욕탕, 영아원(한센인 자녀)을 지어주고 한센인이 퇴원해 정착촌으로 이주할 때는 자립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도 돕는 등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한센인들 기나긴 편견·차별·고통은 찾아볼 수 없는 홍보·보도 ‘유감’

그런데 전북도와 익산시는 최근 '축산 악취의 진앙으로 지목됐던 왕궁 축산단지가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내용만을 부각시켜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을 뿐, 그 삶의 중심에 있었던 한센인들의 행적을 감추려는 분위기가 역력히 묻어나 아쉬움이 크다. 

지역은 물론 국내 주요 언론들도 ‘익산시는 최근 왕궁 정착 농원에 마지막으로 남은 농가와 계약을 체결, 소유권을 넘겨 받아 축사 매입 사업을 마무리했다’며 ‘익산시는 2010년 정부 7개 부처와 합동으로 왕궁 정착 농원 환경개선 종합 대책을 발표하고 왕궁면 일대 축사를 사들이기 시작, 204개 축사 매입을 완료했다’는 데 방점을 찍어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애초 5년 안에 사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농가 협의에 난항을 겪었고, 매입비 부족 등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장장 13년이 걸린 것’이라고 행정과 언론 모두 강조하고 있지만 그 축산단지 중심에 있던 한세인들의 편견과 차별, 그로 인한 오랜 고통의 보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담당 간부 공무원은 언론을 통해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게 협조해준 축산 농가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며 "왕궁 정착 농원을 녹색정원 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을 뿐 한센인들의 이주·지원 등의 대책은 누구도 입 밖에 꺼내지 않는 분위기다. 

400여명의 한센인들이 또 어디로 이주해 숨어 살고 있는지, 이들이 생계와 치료 대책은 마련했는지 등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차별과 편견, 고통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지금 어디서 더 이상 멸시 당하지 않고 차별 받지 않는 사회,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을까?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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