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명상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다.
멀리 설악산에서 시작된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고운 단풍이 지라산, 내장산, 무등산을 지나 한라산에까지 화려한 물결을 이루며 그야말로 장관이다. 가까운 지천에도 단풍이 마치 봄꽃 만개하여 떨어지듯 나뭇가지와 그 아래 대지 위에 흩뿌려져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금세 시들어 하강하여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단풍은 대부분 안토시아닌(anthocyanin) 색소를 가진 탓에 붉은빛이 감돌지만 나무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른 독특한 빛깔을 뽐낸다. 우리가 흔히 보는 단풍은 붉은색 위주의 강렬한 빛과 에너지를 뽐낸다.

그러나 단풍나무는 나뭇잎과 모양 등에 따라 모두 종이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고로쇠나무 등의 잎은 손바닥 형상을 띄며 5~7개의 갈래가 있지만, 신나무는 3개, 당단풍은 9~10개로 갈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산홍(山紅), 수홍(水紅), 인홍(人紅)의 내장산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고 있는 단풍나무 중 당단풍, 좁은단풍, 털참단풍, 고로쇠, 왕고로쇠, 신나무, 복자기 등 총 11종이 서식하고 있다. 내장산 단풍은 아기 손처럼 잎이 작고 진한 붉은 빛을 띄어 ‘애기단풍’으로 불리기도 한다.

충청지역은 복자기(나도박달, Acer triflorum Kom) 단풍이 유명하다.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복자기는 갈잎큰키나무로 키가 20여m까지 자라며 잎은 마주나는데 붉은빛 도는 길쭉한 잎자루 하나에 3장의 잎이 붙어 있어 보통의 단풍나무잎이 1장씩인 것과는 다르다.
화사하기로는 지리산 단풍도 유명하다. 햇빛과 비와 바람 그리고 토양과 공기의 조건들이 잘 맞는 해에만 화사하고 고운 단풍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인간 세상과 달리 자연 세계는 언제나 변함없이 순환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차만별이고 변화무쌍 그 자체라는 것을 단풍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단풍잎은 때가 되면 저절로 제 자리를 비워줄 줄도 안다. 한창 자태를 뽐냈다가도 계절에 순응하며 찬란했던 자리를 내어줄 줄 안다. 탐욕에 찌든 우리 인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꽃은 붉음이 열흘을 가지 못하고, 권력은 10년을 가지 못한다'는 뜻의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權不十年)’이 봄에 통용되는 사자성어라면 이 가을엔 ‘엽무십일홍 권불십년(葉無十日紅權不十年)’, 즉 단풍잎의 붉음이 열흘을 가지 못하고, 권력은 10년을 가지 못한다‘는 말로 대신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단풍잎이 요즘에는 빨리 떨어지는 것 같다. 아마 이상 기후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지금 지천에 붉은 꽃처럼 활짝 물들어 유혹하는 단풍을 잠시 바라보며 비움과 순응의 행복을 함께 나눠 봄은 어떨까?

/박경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