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 분리되는 현상.’
'유체이탈(遺體離脫)'의 사전적 의미다. 여기에 더해 신체에서 정신이 분리되는 유체이탈 상태처럼 자신이 관련되었던 일을 남 이야기하듯 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어처구니없는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는 것을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부른다.
친인척과 측근들이 각종 비리로 사법처리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정권’이라고 당당하게 외쳤던 대통령이나 대형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전혀 책임지지 않고 ‘구경꾼 정치’를 하듯 유체이탈 화법을 반복하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래서 유체이탈 화법을 마치 구경꾼처럼 제3자의 위치에서 말한다고 해서 ‘구경꾼 화법’이라고도 부른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등과 같이 수많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을 보듬으며 달래주기는커녕 아픔과 고통을 더 안겨주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치인, 심지어 최고 국정 책임자의 책임 회피성 유체이탈 화법은 귀도 눈도 씻고 싶게 할 정도다.
도민들 자존심에 상처 안기며 공분 자아내게 하는 ‘유체이탈 화법’들

이런 유체이탈 화법이 새만금세계스카우트잼버리(새만금잼버리) 파행과 실패 이후 우리 지역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전북도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안기며 공분을 자아내게 하는 새맨금잼버리 주무 부처 장관을 비롯한 많은 공동조직위원장들, 집행위원장과 사무총장 할 것 없이 잼버리가 열리기 전에는 번듯한 기자회견을 열어 성공 개최를 자신하고 장담하던 것과는 달리 막상 시작부터 파행으로 치닫고 결국 실패로 막을 내린데 대해선 누구도 전면에 나서서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마치 구경꾼처럼 뒷전에 숨거나 '네탓' 공방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들이 유체이탈 화법으로 악담이나 추담을 하는 것을 들으면 분노가 치솟는다. 지난달 24일 전라북도에 대한 국정감사가 4년 만에 현지에서 열렸지만 이번에도 새만금으로 시작해 새만금으로 끝나 실망만 안겨줬다. 게다가 새만금잼버리 실패 원인과 책임 규명은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샅바싸움만 하다 끝나고 말았다.
새만금잼버리 파행과 실패 원인을 놓고 여야 국회의원들과 새만금잼버리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전북도지사 간 팽팽한 신경전과 고성이 오갔을 뿐 규명은 고사하고 정작 중요한 지역 현안들조차 뒷전으로 밀려 '맹탕 국감'이란 지적을 받았다. 새만금잼버리 파행 이후 발생한 새만금사업 관련 정부의 내년도 예산 삭감을 놓고 ‘보복성 삭감이냐’, ‘전북도의 무능이냐’를 놓고 험한 말싸움을 벌이며 아까운 시간을 모두 허비했다.
모두가 구경꾼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넘기지 말라는 공방은 가히 꼴불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처럼 새만금잼버리를 둘러싼 유체이탈 화법은 계속 국감장에서 이어지더니 2일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감에선 그 절정판을 드러냈다.
“책임을 다했다”...“무풍지대, 커튼 뒤에 숨어있는 두 사람이 가장 책임을 져야”

잼버리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여가부) 김현숙 장관은 새만금잼버리 파행 원인을 부지 선정 잘못과 태풍 외에도 실무자 부실보고 등으로 떠넘겨 따가운 시선을 내내 받았다. 그는 이날 국감에서 "잼버리 폐영식과 K팝(콘서트)으로 저는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부 부처와 전라북도 등 지자체, 민간 기업이 합심해 빠른 시일 내 대회 운영이 사실 거의 정상화됐지만 태풍 예보가 있어 불가피하게 비상 대비를 하게 된 것"이라고 말해 국민들의 정서 및 감정과는 전혀 동떨어진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그러더니 부실 운영과 파행 책임에 대해 "현장에 있던 시설본부장과 사무총장이 부실보고를 했다”면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는데 저는 책임을 다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새만금잼버리 기간 동안 “현장을 지키라”는 총리의 지시를 받고도 잼버리 야영장에서 약 18㎞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변산반도 생태탐방원에서 머문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이날 국감장에서는 “제가 현장에 있었지 그럼 어디 있었느냐?, 거기(부안군 국립공원공단 변산반도 생태탐방원)도 부안군이었다”고 당당히 맞설 정도였으니 더는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더 가관인 것은 이날 국민의힘 한 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공동조직위원장이었던 김현숙 장관과 집행위원장이던 전북도지사에게 책임을 많이 묻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두둔했다. 그러면서 “가장 책임져야 할 두 사람은 지금 무풍지대에서 커튼 뒤에 숨어 있다”며 “그 두 사람은 민주당 의원인 김윤덕 공동조직위원장과 최창행 사무총장”이라고 거명함으로써 김 장관의 유체이탈을 부추기며 도왔다.
물론 이날 일부 의원이 지적한 대로 김윤덕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전주(갑) 지역구 출신으로 새만금잼버리 준비위원장을 거쳐 조직위원장과 공동조직위원회가 구성될 때까지 여가부 장관이 네 차례 바뀌는 동안 붙박이 위원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파행과 실패의 책임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결과적으로 약 3개월간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리게 됐다?"

그럼에도 김 의원은 잼버리가 끝난 후인 지난 8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시간을 다시 돌린다면 여성가족부는 잼버리 조직위원회에 참여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결과적으로 약 3개월간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리게 됐다"고 말했으나 조직위위원장으로서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형태를 보여 역시 유체이탈 화법이란 빈축을 샀다.
최창행 사무총장도 연봉이 부총리급 수준(1억 4,000만원)보다 많은 1억 8,000만원이란 사실이 이날 공개돼 많은 도민들이 깜짝 놀랐다. 그런 그가 잼버리 준비 기간에 많은 기자회견을 통해 얼굴을 보이더니 파행과 실패 이후 책임지겠다거나 사과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 국감에서 일부 의원들은 다음 상임위에서 이 두 사람을 참고인으로 부를 것을 제안했지만 이들은 또 어떤 유체이탈 화법으로 책임을 모면하려 할지 자못 궁금하다.
"이유 불문하고 제 잘못"...진정한 사과 한마디,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전북도민과 국민들은 "이유 불문하고 제 잘못입니다"란 진정한 사과 한마디를 기대하고 있는데 잼버리 정부지원위원회 위원장인 국무총리는 물론 실무위원회 위원장과 공동조직위원장까지 맡았던 여가부 장관 외에 그 많던 공동조직위원장들도 책임과 사과는 자신들과 전혀 무관한 것처럼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
특히 여가부 장관을 비롯해 행정안전부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윤덕 국회의원,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등 공동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전북도지사,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중 누구 하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최종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란 사과 한 마디 듣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자칫 덤터기를 쓸까 봐 온갖 유체이탈 화법을 동원해 가며 책임 떠넘기기에만 여념이 없으니 상스러운 언어가 뇌리에 남는 걸 막기 위해 옛적 선비들이 했다던 ‘세이(洗耳, 귀씻이)'와 '세목(洗目, 눈씻이)'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