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블라인드(Blind) 면접’
‘피면접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하는 면접’을 부르는 말이다. 보통 학벌이나 스펙 등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채택하는 채용 방법이다. 일명 ‘무자료 면접(無資料 面接)’이라고도 할 정도로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하기 위한 선발 방법이다. 최근 관공서나 학교, 개인 기업들도 대부분 이러한 채용 방법을 선호한다.
대학의 입학전형에서도 이러한 블라인드 채용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겉으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 같아 보이지만 함정이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취하면서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맞춤형 채용인 '편법 블라인드' 방식인 경우가 있다.
정보 가렸지만 얼굴과 특징 훤히 알고 마주하는 '블라인드 면접'이라면?

이른바 피면접인을 미리 알고 치르는 방식의 블라인드 채용이다. 특정인을 반드시 채용해야 할 경우이거나 임직원들로부터 채용 청탁을 받았을 경우, 또는 직장 상사의 강요에 의한 선발 과정이라면 블라인드가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이 때문에 블라인드 채용이 오히려 '맞춤형 특별 채용'이라는 지적을 받는 경우가 있다.
최근 내부 임직원들의 친인척 채용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한 대학병원의 국회 국정감사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다른 곳도 아닌 가장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이 이뤄져야 할 대학사회에서 이러한 의문이 제기됐다. 지역의 거점국립대인 전북대학교병원에서는 최근 4년간 직원들의 친인척이 141명이나 채용된 것으로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특히 친인척 채용은 최근 5년 사이에 4배나 증가한 것이어서 ‘친인척 꽂아주는 전북대병원’이란 오명까지 받게 됐다. 병원장을 비롯한 병원 관계자들은 국정감사장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해명했지만 상황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지난 17일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집중 제기됐다. 전북대학교병원의 교수가 전공의를 폭행한 사건과 더불어 비상식적인 직원들 채용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날 국민의힘 권은희 의원은 전북대병원의 채용 과정에 서 드러난 실상과 문제점들을 질타했다.
권 의원은 "전북대병원 직원의 아들 A씨가 2021년 채용된 과정에서 33명 중 12등으로 필기전형을 통과했는데 실무 면접을 거쳐 2등으로 올라섰다"며 "최종적으로는 8등을 해 턱걸이로 합격했다"고 채용 사례를 밝혀 주목을 끌었다. 더 가관인 것은 이어진 다음 질문에서 드러났다.
이날 권 의원은 "합격을 견인한 실무 면접 위원의 면면을 보니 A씨 아버지와 동일 과에 동일 직이거나 하급자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며 "전북대병원의 채용 공정성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라고 지적한 뒤 정식 감사를 교육부에 요청했다.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한 대목이다.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거점국립대병원의 반복되는 친인척 채용 '논란'

권 의원이 이날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채용된 전북대병원 임직원의 친인척은 모두 189명이다. 이 중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간 채용된 임직원의 친인척은 48명에 불과했으나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임직원의 친인척 채용은 141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41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1년 만에 무려 4배나 증가했다. 이후 지난해 29명의 채용이 이뤄졌고 올해는 30명으로 10년 동안 채용된 친인척이 190여명이나 됐다.
이러다가 전북대병원은 직원들의 친인척들로 가득 구성원을 메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지적한 권 의원 외에 다른 의원들도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며 ”이 문제를 확실하게 감사하라"고 교육부를 향해 이구동성으로 주문했다.
그러나 이날 전북대병원 측은 전혀 의심을 하지 않거나 긴장하지 않은 듯한 태도여서 더욱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유희철 전북대병원장은 "직원 채용은 블라인드로 진행되고 면접 위원도 외부 위원 위주로 편성된다"며 "여러 가지 사항을 살펴보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교과서적인 답변으로 피해갔다.
그러나 합격한 직원 자녀의 실무 면접위원 중에는 외부 인원 4명 모두 다른 국립병원 및 의료기관의 동일한 과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일부 위원들은 A과 상급직원과 직책까지 동일했다는 점에서 제식구 감싸기식 발언이란 빈축을 샀다. 누가 봐도 의심과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대학병원 책임자로서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 문제가 다른 곳도 아닌 국정감사에서 지적됐음에도 여전히 안일한 태도를 드러냄으로써 전북대병원의 채용 공정성을 더욱 의심하게 했다.
전수조사·엄중한 감사 통해 투명성·공정성 확보 시급
애초부터 의심을 살만한 면접위원 구성을 하지 않도록 사전 지도와 감독을 했어야 할 병원장 책임도 크다. 더구나 블라인드로 실시했다는 점을 강조한 전북대병원은 그동안 직원 채용 과정의 문제점이 종종 제기돼왔다. 지난 2021년에도 78명의 친인척 채용으로 도마에 올랐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또 지적을 받은 만큼 친인척 자녀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채용 비리를 알았다면 중대 범죄이고 몰랐다면 직무 유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북대병원은 또 다른 문제까지 이번 국감에서 드러났다. 권 의원실이 제공 받은 자료에는 채용된 A과 상급자 아들의 친인척이 2명 근무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었으나 유선으로 재확인한 결과 실제로는 3명이 근무하는 등 친인척 채용 통계 관리도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전북대병원장은 유감을 표명하고 향후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기회에 공정하고 정의롭지 않은 인사 관행을 뿌리 뽑아야만 한다. 다른 곳보다 투명하고 공정해야 할 대학, 그 중에서도 지역의 거점국립대병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개선을 요구하는 주문이 비등하다.
전북대병원 외에도 전북대 내에서도 이러한 비상식적인 채용 관행이 자행되고 있는지 철저히 감사해야 할 것이다. 철저하게 교수 중심의 사회인 대학 내 구성원들이 서로 얽혀 있는 조직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
불공정 채용=예비 취업자들 취업권 방해·박탈=불공정 조직 강화

대학병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대학 총장도 이번 직원 채용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른 예비 취업자들의 취업권을 방해하고 박탈했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크다. 더구나 비상식적인 채용으로 친인척들이 득실거리는 조직에서 과연 상식과 공정,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는가.
차제에 전북대와 전북대병원의 친인척 채용과 관련해 엄정한 감사와 함께 보다 투명하고 공정해지기를 도민들은 학수고대하고 있다. 나쁜 관행과 불공정한 병폐를 과감히 도려내고 일벌백계(一罰百戒)가 뒤따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 또 불공정한 채용이 반복되면 대학은 물론 병원 내부가 불공정으로 가득 메워질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