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MBC ‘PD수첩’ 임다솔 PD

육사 교장의 운전병이었던 한 일병이 어느 날 아침 사체로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당 군인은 전날 육사 교장의 차와 권총을 탈취했다. 그리고 그날 밤 냇가 옆에 차를 세운 후 차 안에서 자신에게 총을 쏜 후 냇가로 내려가 옷을 벗고 다시 차로 올라와 또 자산에게 쏴 사망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조사 결과를 누가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지난 11일 MBC <PD수첩>에서는 ‘군 의문사: 내가 죽은 이유’ 편이 방송되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군 사망사고진상규명위가 조사한 3가지 의문사들을 중심으로 진실을 추적하고 군 사망사고진상규명위 종료 순간도 담았다. 취재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해당 프로그램을을 연출한 임다솔 PD를 지난 12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임 PD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임 일병 사망 기록 의심...사건도 빠르게 마무리”

MBC ‘PD수첩’ 임다솔 PD
MBC ‘PD수첩’ 임다솔 PD

- 군 의문사에 대한 걸 취재 하셨잖아요. 이건 어떻게 하게 됐나요?

“ 제보자의 제보로 시작한 거죠. 제보자분께서 예전 의문사위에서 일 하셨는데 그 당시 가지고 계셨던 군 사망 사고 기록을 저희한테 주셨어요. 저희가 봐도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그걸 가지고 취재하게 됐고요.”

- 처음에 취재는 뭐부터 했나요?

“제보 온 사건 중 임재홍(가명) 일병 사건부터 시작했어요. 총 5개의 사건이 있었거든요. 모두 자살로 처리된 것으로. M16과 권총으로 숨진 사고들이에요.”

- 그러면 제보를 받았을 때 어땠나요?

“저는 총에 대한 관련 지식이 없으니까, 자신의 신체 부위를 쏘고 다시 또 쏠 수가 있는가라는 정도의 가벼운 의문이었어요. 그런데 M16 사건의 경우 총상 위치만 보고도 다들 이상하다고 하고, 권총도 일병이 안 다룬다고 하길래 이거 자살 아니겠다고 생각했죠. 취재 중 법의학자분들이나 전문가분들이 봤을 때 그게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고 너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놀라기도 했고요.”

- 임 일병 사망에 쓰인 총이 육사 교장 거라고 나오던데 육사 교장과는 무관한가요?

“일반적으로 권총은 사병이 접근하기 어려운 총이라고 해서, 저희도 취재 처음 시작할 때 의심했는데 교장의 전속 부관 등의 인터뷰 통해서 들어보니 관련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당시에 출장 중이었고, 전속 부관의 기억에 교장이 돌아가서 보고받으셨을 때 굉장히 화를 냈다고 하더라고요. 왜냐면 자기 차를 끌고 자기 총이 사용된 사건이니까 자기를 죽이려고 한 건가라고 생각해서 더 수사하라 했는데, 자신을 노린 게 아니니까 빠르게 마무리됐다고 얘기해 주셔서 교장과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임 일병이 권총 훔친 걸까요?

“일단 기록상으로는 훔친 거예요. 왜냐면 그건 본인의 총이 아니잖아요. 그분이 당번병이었잖아요. 그분이 당번병이어서 총에 접근이 가능하셨대요. 그리고 몰고 나긴 차도 당번병이다 보니까 교장이 심부름시키잖아요. 그래서 그 차도 일단 접근이 가능했다는 거예요. 휴가 때마다 차를 쓰셨대요. 그래서 사실 총과 차에는 접근이 가능한 분이셨던 거죠. 그래서 총과 차만으로 의심하기보다 발견이 됐을 때 시신은 차에 있는데, 거기서 7.8m 떨어진 냇가에 혈흔 묻은 옷들이 있었다는 게 가장 의심스럽죠.”

- 방송에 보니 냇가에서 자신에게 총을 쏘고 올라와 또 쐈다고 나오던데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요?

“기록상으론 ‘차 안에서 머리 부위에 총을 쏘고, 차 밖으로 나가서 냇가에서 옷을 벗고, 다시 차로 돌아와서 가슴 부위에 쏘고 죽었다’고 나와 있어요. 근데 머리에 총을 맞은 채로 헤매고, 옷도 벗고, 다시 돌아와서 쐈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일단은 맨 처음에 현장을 1번으로 보잖아요. 현장에서는 차 안에 총과 탄두 2개가 있었고 시신이 옷 벗은 채 차 안에 있었어요. 근데 혈흔이 묻은 옷이 차 안에 없고 냇가에 떨어져 있었어요. 머리와 심장을 쏴서 죽었는데 어디가 먼저 쏜 건지 법의학적으로 밝혀보니까 머리부터 쐈대요.

그래서 순서상으로는 일단 명백한 증거로는 차 안에 시체가 있고 탄두 2개, 그리고 총기가 거기 놓여 있었고 차 안에 신발-단화가 있었다고 나와 있고요. 그리고 총을 쏜 순서는 머리를 먼저 쏘고 그다음에 심장을 쐈다는 거죠. 근데 피가 지금 냇가에 있잖아요. 그러나 이분들은 자살로 마무리를 지어야 되잖아요. 제 생각에 그걸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차에서 총을 쏘고 냇가에 가서 어쩌고저쩌고하다가 다시 차에 돌아와서 심장을 쐈다고 증거에 맞게 짜맞춘 것 같아요.”

- 기록엔 차에서 머리에 총 쏘고 냇가에 가서 옷 벗고 올라와 심장을 쐈다는 거예요?

“맞아요. 수사 기록에는 차를 정차하고, 신발 벗고, 차에서 머리 쏘고 양말만 신은 채 내려가서 냇가에서 헤매다가 다시 올라와서 총을 집어 들고 심장을 쐈다고 돼 있는 거죠.”

“조사 결과, 뭔가 잘못됐다거나 기록이 이상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10월 11일 MBC 'PD수첩'이 방송한 ‘군 의문사: 내가 죽은 이유’ 한 장면(캡처)
10월 11일 MBC 'PD수첩'이 방송한 ‘군 의문사: 내가 죽은 이유’ 한 장면(캡처)

- 차에서 총 쏘면 차에 혈흔이 있어야잖아요.

“차에 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기록에 정확히 없어서 모르겠는데, 차에서 발견됐을 때 머리에 총을 맞은 상태잖아요. 부검 기록과 달리 그 목격자가 기억하기로는 얼굴이 깨끗했다고 해요. 총기라는 게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 충격이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분이 아직도 기억하시더라고요. 양말만 신고 있었고 상의는 안 입었었던 걸 기억하고 있고. 얼굴은 되게 깨끗했던 기억이라고 하셨어요”

- 일단 머리에 총 맞은 건 맞는데 왜 깨끗할까요?

“저희의 추측으로는 냇가에서 일이 벌어졌고 사실은 냇가니까 피 같은 게 씻겨 나갔고 그러고 시체를 끌고 와서 차에 누인 것 같아요. 왜냐면 끈 흔적이 몸에 있으니까요. 그러면 얼굴이 깨끗했던 게 말이 되죠. 왜냐하면 피를 굉장히 많이 흘렸다고 되어 있거든요.”

- 추측해 보자면 임 일명은 냇가에서 누군가로부터 가격당하고 총 맞은 걸까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시신, 수사 기록 그리고 사건 현장과 현장을 발견했던 목격자의 얘기인데요. 사실은 생각했을 때 그걸 다 추측하면 일단 말이 안 돼요. 무엇도 저희가 시나리오를 세울 수가 없고. 냇가에서 뭔 일이 있었고, 시신을 끌어서 가져왔다는 정도의 시나리오겠죠. 사실 다 맞는 가설이 불가능하더라고요. 그중에 하나가 뭔가 잘못됐다거나 기록이 이상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죠.”

“신원식 국방장관 중대장 시절 발생 사망 사고...당시 부검이나 폭발물 조사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MBC ‘PD수첩’ 임다솔 PD
MBC ‘PD수첩’ 임다솔 PD

- 신원식 장관이 중대장으로 있던 시절에 발생한 사망 사고도 나오던데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세요.

“승진훈련장이라는 곳에서 콥 스트라이크 훈련이라는 게 있었어요. 그 당시에 여러 부대가 참여하는 거예요. 근데 한 병사가 사망한 거죠. 당시 군 기록에는 M203 불발탄을 밟고 죽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근데, 지나고 나서 부대원들이 ‘그거 불발탄 아니었다 박격포가 날아와서 죽은 거다. 재조사해달라’라고 군 사망 사고위원회에 진정을 넣었고, 군 사망사고위원회에서는 조사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여러 부대원을 만나고 그 당시 승진훈련장도 가보고 무슨 일이었을까 조사했더니 너무 오래된 사건 38년 전이니 많이 사라졌는데 부대원들의 진술들이 다 동일해요.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게 포탄이 날아왔고 죽었다. 그리고 당시 남아있는 기록과 진술을 바탕으로 결정문을 냈죠. 당시 수사관은 불발탄 파편을 육안으로 비교했더니 맞았다는 기억인데, 당시에 불발탄이 많았으면 포탄이 날아와도 그 불발탄의 파편이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 파편에 대한 검사를 했었어야 되는데 그 당시에는 부검이나 폭발물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어요.”

- 부검하지 않았다고요? 원래 부검 다 하지 않나요?

“원래는 기본적으로 부검을 하는데, 그 당시에 유가족의 요청이 있었다면서 부검 안 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고 그 헌병 수사관 분의 말도 유가족이 요청해서 부검 안 한 거라고 하고 있어요. 근데 유가족분의 말로는 사실 그럼에도 의문이 있었다는 거죠. 근데 그 당시 군대 분위기라는 게 부검 부동의서를 냈어도 사실은 그럴 수 있잖아요. ‘부검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하면 ‘네,’ 하며 입 다물 수 있고, 부모 입장에서 부검을 꺼려하시는 분도 많고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겠지만, 일단 부검은 안 했다고 해요.”

- 당시를 기억하는 동료 군인들은 박격포로 인한 사망이라고 하는데 당시 수사는 불발탄으로 인한 사망으로 한 거 같은데 왜 다를까요?

“거의 40년이 지난 기억이라 저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저희는 공통적인 증언이랑 믿을 만한 증언을 기반으로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님이 보고하셨다고 생각해요. 특히 당시 수사관의 말과 위원회 결정문 두 개를 비교했을 때. 사실 근거 1번이 파편이에요. 가장 큰 건 그 당시에 파편이 있었는데 유탄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폭탄이 어디로 날아갔는지가 조사가 안 되었다는 게 문제가 있다고 봤어요.

그리고 포탄이 날아가서 죽었어도 M203 유탄이 발견될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 증언이 다르죠.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래서 양쪽 의견을 실어주려고 했고요. 대신 취재를 하면서는 이렇게 공통적인 증언이나 공통적인 기억들이 있는데 그리고 40년이 지나서 저희가 이것만 들은 게 아니라 그 당시의 기억들을 듣잖아요. 군대 얘기를 하시는떼 너무 잘 기억하세요.”

- 그 사람들은 어느날 모여서 말 맞춘 게 아닌 거잖아요. 그러면 어느 정도 신빙성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요?

“그래서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그렇게 판단 한 것 같고 특히 그 당시 서류들이 있잖아요. 남아 있는 서류가 조금 있는데 그거 플러스 군사방송하고 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조금 더 더 조사를 많이 하셨죠. 결정문을 봤을 때는 폭탄 전문가라든가 그런 분들한테도 물어보고 누구한테도 물어보고 하면서 긴 결정문이 나왔죠.”

- 신 장관은 말에 근거가 있나요?

“일단 신원식 장관이 당시 장관 후보였을 때랑 의원일 때부터 이 위원회 결정문에 대해서 입장을 굉장히 여러 차례 냈고 거의 100쪽이 넘는 입장문을 냈어요. 그중에 저희가 다 담을 수는 없으니까 신 장관님 주장의 핵심으로 본 게 13시에 포격이 끝났다길래 그 근거를 저희도 달라고 했죠. 그러니까 답이 온 게 남아있는 게 없대요. 기본적인 군대 돌아가는 시스템이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더 많은 일들과 증언들 있었는데 다 못 담아 아쉬워”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솔직하게 말하면 군대에 대해 잘 모르고, 옛날 일 아닌가 생각했어요. 군이라는 거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 조사관님들과 유가족들도 만나 뵈었죠. 형제자매들은 당시 기억이 있잖아요. 그 죽음 이후로 집에서 형 얘기를 꺼내지 않고, 혹은 모든 사진을 지워버리고. 이민하신 유가족들도 있고. 가족에게 너무 큰 상처로 남아있는 거예요. 근데 자기 자녀가 군대에 가게 되었다? 너무 걱정이죠. 군에 대한 신뢰가 있을 수 있을까요? 이게 과거가 아니라 현재 일이라는 게 와닿았죠.

그러면서 위원회 조사 과정을 보게 됐는데 너무 열심히 하시는 거예요. 어떤 유가족분은 그런 말을 하셨어요.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이상하다. 이렇게 진실이 밝혀지고 했을 때 망인이 살아 돌아오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진상규명을 원한다.’라는 거죠. 근데 살아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 유가족들이 명확한 진실을 알게 되는 거에 대한 의미가 있고 특히 이게 국가기관이 이걸 재조사해서 그리고 유가족들과 군인들한테 사과한다는 게 저는 와닿더라고요. 국가가 책임지고 말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을 취재하면서 많이 공감하게 됐죠.”

- 취재했는데 방송에 안 나온 게 있을까요?

“저희가 이번에 방송 쪽으로 너무 스텝들이 너무 많고 취재하기 너무 힘들어서 안 나온 부분이 많아요. 사실 그 M16 유가족분도 인터뷰했는데 안 나갔고 다른 사건 몇 개 더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 사건의 경우도 못 나가고 신원식 중대장 시절에 있었던 일병의 경우에도 더 많은 일들과 증언들이 있었는데 그것도 못 담아서 아쉬웠죠.” 

/이영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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