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추석 명철 아침에 고향을 생각하니 문득 생각나는 시가 있어 한편 소개합니다.
“그대를 생각하는 가을 밤에
홀로 거닐면서 흥얼거리네.
고요한 밤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
그대도 잠을 못 이루고 있으리.“

당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의 <가을밤에 구(丘)씨에게 부치는 글>입니다. 2023년의 추석입니다. 그새 1년 중 4분의 3이 흘렀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뉘라서 막을 수 있으랴 마는 금세 나뭇잎 지는 만추(晩秋)가 오고 눈 내리는 겨울이 성큼 다가올 테지요.
추석이 다가왔지만 너무 먼 고향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달려 갈 수 있는 고향, 내 유년의 시절과 어린 시절이 뒤엉켜 있는 고향이 이 아침에 몹시 그리운 것은 지나간 세월이 아리게 가슴 깊숙이 묻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 가는 세월만 탓하겠습니까. 가고 오는 우주의 질서 속에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 그것이 바로 푸르던 나뭇잎이 떨어져 내리고 그 위에 눈이 쌓이고, 다시 꽃이 피고 잎이 피어나는 것은 아닐까요.
“어젯밤엔 꽃이 핀 위아래 마을에서 자고
이 아침 꽃이지는 시내를 건너네.
인생은 흡사 오가는 봄과 같은 것,
피는 꽃 보고 나서, 지는 꽃을 보노라. “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여인이 지은 <낙화도(落花度)>라는 시 한 편이 문득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석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신정일 객원기자
jbsori@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