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114)

고을 원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려 백성이 고혈을 짜게 하지만 서당 훈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숨겨 학생들이 편히 공부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지리산 작은 고을에 서당 훈장이 살았다. 젊은 시절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고 서당의 훈장이 되어 청빈한 선비로 살고 있었다.

서당에서 공부를 하는 서생들은 훈장 스승이 무엇을 좋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스승의 생일이 되면 선물을 고민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학생이 훈장님의 조상 제사에 심부름을 가게 되었다.

제삿상에는 제물 대신 밥 한 그릇과 냉수 한 사발 그리고 된장과 풋고추 3개가 전부였다. 다음날 학생들은 훈장님에게 물었다.

"훈장님! 우리들 조상님들 젯상에는 무엇을 올려야 합니까?"

"자기 형편대로 정성껏 마련해서 올리면 되지만 그 정성이라는 것이 조상을 위한 것인지 자신들을 위한 것인지 살펴야 한다. 남들이 오곡백과 올린다고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조상님들이 생전에 무엇을 좋아했는지 그것을 올려 드리는 것이 합당한 일일 것이다."

"스승님의 조상님들은 무엇을 좋아 하셨습니까?"

"가난한 선비로 과거에 급제하여 고을 원님을 하셨으나 예전처럼 밥 한 그릇에 물 한 그릇 된장과 고추 몇 개를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살았지. 그래서 우리 제삿상에는 그 조상이 좋아하는 그것을 제물로 올린단다."

"스승님! 예전 가난할 때하고 훗날 부자가 되었을 때하고 좋아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자고로 관직에 나선 사람이나 훈장 같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겉으로 내 보이면 안되는 이유는 그것이 뇌물의 씨앗이 되고 백성들의 고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원님이 무엇을 좋아 한다더라'고 소문을 내면 원님 좋아하는 것으로 뇌물을 쓰려는 자가 많이 생겨나고 백성들이 원님을 만나야 할 때 그 뇌물 준비에 고혈을 짜내야 하니 그렇다. 훈장도 마찬가지란다."

생전에 가난하던 사람이 저승에서 부자 흉내 낼 일 없고, 생전 백성이 저승에서 권력자 흉내 낼 일 없으니 후손들의 조상 섬기기는 평소 조상의 생전 가치관을 살펴 내는 것이 도리 중의 도리이리라.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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