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지난 7월에 별세한, 현대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의식적으로 행한 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면, 머리가 많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애당초부터 모든 죄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인간만이 알 의무가 있네. 친애하는 플라이슈만 군. 인간은 자신의 무지한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지. 무지는 곧 죄를 뜻하네. 바로 그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죄에서 사해줄 수는 없다네."
'모르고 한 일이다, 기억이 없다'는 식의 변명은 역사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죄를 추궁하려고 쿤데라의 말을 꺼낸 것이 아니다. 나는 미래 세계의 진로를 염두에 두고 쿤데라를 인용하였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 세계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오늘의 청년도 20년 뒤에는 기성세대가 된다. 세월은 항상 흘러가기 마련이고 그러면 사물의 주인이 바뀌는 것,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필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형편은 어떠한가. 되돌이표이다.
회전문 인사라는 낡은 표현이 있었는데, 오늘의 윤석열 정권은 구태(舊態)를 재연(再演)한다. 새로운 방향 모색은 없고, 정권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가 과거의 조선 총독인지, 미 군정시절의 군정 장관인지를 알 수 없고, 이 나라가 지금 2023년인지 1960년대인지를 분간하기조차 어렵게 되어간다.
나중에 국정조사를 하고 청문회를 벌이면, 그때가서는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 나라가 잘되라고 한 일이었다', '그때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느냐!'라고 허튼 소리를 늘어놓을 사람이다.
우리 청년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그들은 과연 자신과 이 나라의 미래를 어떤 각도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오늘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