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3)

숲이 좋아야 새가 날아 든다. 지구가 불덩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탄소를 흡수하는 나무와 숲 마을을 없애고 도시를 만들어 자연과 멀어진 탓이다. 살기좋은 마을의 기본요건은 자연의 아늑함과 좋은 이웃과의 따뜻한 관계이다. 주위의 산이나 언덕들이 포근히 안아주는 배산임수의 마을터는 겨울에도 따뜻하고 태풍같은 자연재해도 적다. 이에 더하여 자연조건이 부족한 곳에는 마을공동체가 울력하여 동네 숲을 조성하여 삶터를 개선하는 노력이 비보풍수의 지혜다.
동네 숲과 당산...마을 공동체·울력문화 살아 있다는 '증거'

주위에서 흔히 보는 숲정이, 동수, 동네숲, 방풍림, 비보림 등 인공림을 조성하면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새들과 사람의 보금자리가 된다. 필자는 정자나무, 당산나무, 노거수가 많은 마을을 명당으로 친다. 수백년의 역사가 그 나무에 새겨져 있고, 이웃과 마을공동체가 살아있다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나무를 많이 심어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자는 가르침을 마을 이름으로 삼은 곳도 많다.
숲이 좋으면 새가 살러오고, 숲이 좋으면 사람살이는 더욱 좋다. 이른바 숙조투림형(宿鳥投林形), 무림숙조형(茂林宿鳥) 마을이다. 고창 신림면 무림(茂林)마을, 임리(林里), 성송면 사내리(沙來里, 沙乃), 무장면 만화리 숙조림(宿鳥林) 등이 대표적이다. 사내마을과 임리마을은 유서깊은 높을고창에서도 눈에 띄게 마을 주위에 비보숲 조성에도 애썼지만, 현재도 마을 당산과 당산제가 가장 잘 보존전승되고 있다. 동네 숲과 당산은 마을 공동체와 울력문화가 살아 있다는 증거의 하나다.
자원순환형 사회 만드는 길, 자연과 함께 상생하는 길만이 사람 살리는 '외길'


성송 사내마을은 숲이 좋아 새가 날아 온다는 새나지, 새나리를 한자화하여 날비 새조 비조리(飛鳥里)로 불려왔다. 이왕 새를 맞으려면 귀한 인재를 뜻하는 성스러운 봉황새가 오기를 기대하면서 문사철에 조예가 깊은 학자가 봉황사 올래자를 써서 사래 (沙來)라고 썼다. 일제강점기 행정동명으로 사내(沙乃)라 잘못 표기된다. 봉황사를 모래사로 잘못 해석해서 왜 갑자기 새가 모래가 되었냐고 묻는데, 이 경우는 모래사가 아니라 봉황사로 새겨야 한다. 큰 옥편에는 봉황사로 실려 있고, 왠만큼 한문을 배우면 봉황사 용례를 알 수 있다.
신림 무림리 임리 마을은 마을 뒤로 장엄한 방장산이 감싸주고, 멀리 갈곡천 너머 불화살봉인 화시산이 먼산인 조산이다. 화시산의 불기운을 숲으로 막고, 앞뜰과 허전한 곳을 메꾸고자 사방에 비보숲을 조성한다. 마을 뒷편 천룡당산으로 심은 소나무 숲은 명품 신목이 되었다. 마을어귀 당산에도 솟대를 세워 새가 날아오기를 기다린다. 새에게 모이를 주면 한번은 새가 오리라. 계속해서 새가 깃들도록 하려면 새가 살 수 있는 환경조성, 즉 숲을 무성하게 해야한다.

퍼주기정책으로 돈 한번 퍼준다고 관광객이나 주민이 늘어나겠는가? 마을이든 나라든 1회용 시책을 버리고, 긴 안목으로 살기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백년대계로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다. 우리가 탐욕과 1회용을 줄이고 최소한의 소비습관으로 자원순환형 사회를 만드는 길, 자연과 함께 상생하는 길만이 사람 살리는 외길이다.
착한 사람의 도가 숲처럼 왕성하길 염원한 신림면 도림(道林)마을, 왕림(旺林)마을, 덕으로 세상을 교화시키는 덕화(德化)마을에 착한 세상을 꿈꾸는 갱정유도 도인들이 선한 농생명 삶터를 만든 것은 우연일까?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