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직의 축구 이야기

한국 프로축구의 우승 경쟁을 주도하고 있는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의 ‘현대가 더비’가 뜨겁게 펼쳐졌다. 8월 19일 저녁 7시 울산문수축구경기장.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두 팀이 ‘하나원큐 K리그1 2023’ 27라운드를 치렀다. 이날 3만 756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 시작 전부터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함성으로 경기장이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좋은 장면을 많이 만든 원정팀 전북이 아쉽게 0:1 패배를 당했다. 승점을 추가하지 못한 전북은 선두 울산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말았다.
올 시즌 두 팀의 세 번째 맞대결이었다. 홈팀 울산은 시즌 개막 이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단독 선두를 질주하는 중이다. 하지만 최근 다섯 경기에서는 1승 1무 3패로 성적이 좋지 않아 반전의 계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단 페트레스쿠 감독 부임 후 상승세를 타며 리그 3위까지 치고 올라온 전북으로선 선두 울산과의 격차를 좁혀야 하는 경기였다.
울산의 홍명보 감독은 4-2-3-1 전형으로 나섰다. 조현우를 수문장으로 세우고 이명재 김기희 정승현 설영우가 수비라인을 형성했다. 김민혁 이동경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바코 황재환 루빅손이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최전방 공격수는 마틴 아담이었다. 단 페트레스쿠 전북 감독은 4-4-2 포메이션을 꺼냈다. 김정훈이 골문을 지키고 김진수 페트라섹 정태욱 정우재가 수비를 책임졌다. 문선민 박진섭 보아텡 한교원이 중원과 날개 위치에 서고 백승호 박재용이 맨 앞에서 골을 노렸다.
뜨거운 ‘현대가 더비’...수준 높은 경기에 3만여 관중 '열광'

두 팀의 핵심 중앙 수비수인 김영권과 홍정호가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했다. 울산의 헝가리산 탱크 마틴 아담과 2미터가 넘는 체코 태생 전북의 장신 센터백 페트라섹의 맞대결이 관중들의 시선을 끌었다. 전북의 왼쪽 수비수 김진수는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7분, 문선민의 크로스를 한교원이 헤더로 가져가며 전북의 첫 슈팅을 기록했다. 조현우의 선방이 돋보였다. 22분, 홍명보 감독이 이른 시각에 선수를 교체했다. 황재환이 나가고 엄원상이 들어왔다. 30분, 전북의 코너킥 공격을 끊어낸 울산이 빠르게 역습에 나섰지만 골로 이어지지 못했다.
33분과 36분, 전북은 김진수의 연이은 슛이 울산의 수비벽에 맞거나 골대 맞고 튕겨 나와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37분, 울산 설영우의 슛을 페트라섹이 몸으로 막아냈다. 팽팽한 흐름 속에 추가시간 2분이 주어졌으나 골이 나오지 않은 채 전반전이 마무리됐다. 후반 초반 울산이 계속해서 맹공을 퍼붓고 김정훈이 놀라운 슈퍼 세이브를 선보였다. 13분, 전북의 선수교체가 있었다. 문선민과 박재용이 빠지고 송민규와 하파 실바가 투입됐다. 전북이 수세에 몰리는 흐름을 끊는 적절한 교체 타이밍이었다. 두 선수는 들어오자마자 연계 플레이에 이은 슈팅으로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21분, 이동경의 멋진 왼발 슛을 김정훈이 다시 쳐냈다. 25분, 이동경을 대신해 이청용이 경기장을 밟았다. 1분 뒤 이청용이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줬고 엄원상의 발끝에서 결승골이 터졌다. 이청용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장면이자 장신의 페트라섹을 따돌린 엄원상의 빠른 발이 빛을 발했다.
질 경기가 아니라 최소 비겼어야 하는 경기

29분, 전북의 페트레스쿠 감독이 세 장의 교체카드를 사용했다. 이동준 아마노 준 박창우가 경기장에 들어왔다. 반드시 골을 넣겠다는 공격적인 교체였다. 34분, 이번엔 울산의 홍명보 감독이 역시 세 장의 교체카드를 꺼내 들었다. 임종은 조현택 이규성이 잔디를 밟았다. 한 골을 지켜 팀의 승리를 굳히겠다는 뜻이었다.
전북이 파상공세를 퍼부었지만 울산의 골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백승호 보아텡 하파 실바 등의 날카로운 슈팅은 골문을 살짝 빗나가거나 조현우의 선방에 막혔다. 경기를 1분여 남겨두고 양 팀 선수들의 충돌 상황이 발생했다. 이청용과 김진수 등 베테랑들이 나서서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경기장이 터질 것처럼 달아오른 가운데 추가시간 6분이 주어졌다. 전북의 막바지 공세를 막아낸 울산이 결국 1:0으로 승리하며 승점 3을 가져갔다. 울산 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가라 ‘잘가세요’ 노래를 불렀다. 관중들이 밝힌 휴대폰 불빛이 문수경기장에 은하수처럼 흘렀다. 멀리 울산까지 원정 응원을 왔던 전북 팬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비록 골은 단 하나에 그쳤지만 이날의 경기는 K리그의 수준과 열정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감독의 치열한 지략 대결과 선수 지휘가 90분 내내 이어지고, 국가대표 자원이 즐비한 양 팀의 선수들 모두 팀의 승리를 위해 사력을 다해 뛰었다. 페트레스쿠 감독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전반에 찬스가 있었는데 살리지 못했다. 질 경기가 아니라 최소 비겼어야 하는 경기다. 잘하고도 질 수 있는 것이 축구다. 다음 경기를 잘 준비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병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