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서구사회는 그들의 고유한 전통을 계승하면서 역사의 고비마다 새길을 열어왔다. 중세의 기사도는 근세의 신사도로 거듭났고, 이것이 다시 시민 정신으로 승화되었다. 이 같은 역사적 변화가 있었기에, 서구사회는 다른 문명권보다 정의롭고 자유롭게 진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세의 기사도나 근세의 신사도 또는 시민 정신이라는 것도, 그 사회적 역할은 복합적이었다. 순기능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역기능이 오히려 두드러질 때도 많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기사도로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천한다고 하였으나, 봉건적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역기능이 더욱 컸다. 신사도 역시 유사한 점이 있었다. 

역사의 시곗바늘 

산업혁명기의 사회적 갈등을 신사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근대 시민사회가 자랑스럽게 내세운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란 것도, 산업혁명기 서구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극복하는 데 미치지 못했다. 신사도와 천부인권설로 무장한 서구인들이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19~20세기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의 식민지에서 얼마나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그러나 단점을 지적하는 데서 나의 이야기가 끝날 수는 없다.

역사의 시곗바늘이 현대에 가까울수록 서구사회를 수렁에 빠뜨렸던 모순과 역기능이 조금씩 극복되었다는 점, 이런 사실도 망각해서는 안 되겠다. 청동기시대부터 강화되었던 신분 차별의 족쇄가 점차 사라졌고, 남녀 시민들에게 보통선거권이 부여되었다. 새로운 사회문제도 적잖이 발생하였으나, 서구사회에서는 구악(舊惡)인 사회적 차별과 억압이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사라지는 기적을 연출하였다. 

오래된 문제의 해결과 생활환경의 변화, 그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었다. 서구 시민사회는 자신들의 긍정적인 문화전통을 의식적으로 계승했다. 그 바탕 위에서, 그들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해나갔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서구인들의 역사의식이다.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려는 태도가 서구사회를 특별한 모습으로 바꾸었다고 본다. 기사도의 성공을 칭송하는 것으로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까? 선비의 길도 새로운 결실을 낳아야 하겠다. 역사적 당위로서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이 촉구된다는 말이다.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역사를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지난 20세기에도 선비의 눈부신 역할이 있었다. 1910년 8월 29일, 조선왕조는 일제의 침략에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으나 선비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선비와 함께 춤을』(사우, 2018)에서 힘주어 말했듯, 20세기 한국 사회에도 청렴하고 고결한 선비들이 참 많았다. 현대 한국 사회는 조선왕조의 귀중한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물론이요, 민족시인 백석과 사랑의 김홍섭 판사, 정의로운 선비 심산 김창숙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문화적 전통을 온전히 계승할 수 있다면,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공정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낳고 길러준 문화적 토양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세상에는 '문화적 유전자'라고 불러 마땅한 공동의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우리가 역사 속 선비의 길을 논의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유산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역사를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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