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제정신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한다.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흐릿한 세상이 어지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과 다른 부류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자기들의 말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나와 같은 사람은 군자(君子)이고 나와 다른 사람은 소인(小人)이라는 조선시대 당파싸움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일어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지도 않는다. 그것은 너무 놀랄 일들이 매 순간 터져 나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문(斯文) 변구상(卞九祥)'은 문학은 넉넉하였으나 이간(吏幹: 관리로서 충분한 재간)이 부족하였다. 한성참군(漢城參軍)이 되었을 때 문고 간독(簡牘)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소송이 모여들어도 갑(甲)이 호소하면 “네 말이 옳다.” 하고 을(乙)이 호소하면 “네 말도 옳다.” 하여, 마침내 그 가부를 가리지 못하니, 조정에서 그 소문을 듣고 이 사람을 갈아버리고 말았다.
당시 사람들이 세상에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 변구상공사(卞九祥公事)라고 하였다. 성현의<용재총화 제 6권>에 나오는 이야기 속에 변구상처럼, 스스로 재간이 부족한 것을 알기라도 했으면 그나마 나으련만 스스로의 깊이도 모르면서 날뛰다보니,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고통을 받고 있으니 모든 것은 단순하다.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인 것이다. 제발 복잡하고 서로에게 곤란한 일들을 만들지 말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하여간 이 세상을 어떻게 건널까? 눈 막고 귀 막고 사는 것이 방법은 아니고 또 다른 빙법을 알지 못하니 세상을 탓해야 하는가, 내가 나를 탓해야 하는가? 그 것이 문제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