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특화단지 지정' 남발, 실태와 문제점(1)
윤석열 정부가 공언했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약속은 미룬 채 대신 첨단전략산업과 소재·부품·장비산업의 밑그림이 나왔다. 정부는 20일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7곳과 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 5곳 등 모두 12개 지역에 나눠주는 지도를 드러내 보였다. 경기, 충남·충북, 전북, 광주, 경북, 대구, 울산, 부산 등 각 지역이 골고루 지정됐다. 그럼에도 지역 간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이 가운데 전북도는 새만금에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최종 선정돼 매우 고무적이다. 이차전지 후발 주자로 인프라, 인지도 등 열세를 딛고 이뤄낸 값진 결과라며 행정과 정치권, 경제계, 시민사회가 크게 반기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특화단지 밑그림을 놓고 보면 자화자찬하며 환영할 일 만은 아닌 듯싶다. 정부가 내놓은 특화단지 밑그림 실체와 지역 간 '명암', 전북의 이차전지 특화단지 향후 과제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이차전지 특화단지 5곳 신청에 4곳 선정...희소성 떨어져
2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열고 전북 새만금과 경북 포항, 울산, 충북 청주를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했다. 그동안 각 지자체들이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며 눈치를 봐왔던 정부의 첨단전략산업 밑그림이 던져진 것이다.
정부는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의 초격차 확보를 목표로 전국에 특화단지를 조성하고 세제·예산 지원, 인허가 신속처리 등 정책 지원에 나선다며 이날 전국 12개 지역에 고루 첨단전략산업을 나누어 줬다. 이 중 전북도는 새만금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최종 선정됐다. 이차전지 산업 후발 주자임에도 전북은 인프라, 인지도 등 열세를 딛고 이뤄낸 값진 결과라는 분석과 함께 지지·환영이 각계에서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전북이 사활을 걸고 유치에 나선 이차전지 특화단지는 전국에서 도전한 5개 자치단체 가운데 경북 상주를 제외한 모든 자치단체가 선정됐다. 김관영 도지사를 비롯한 전북 정치권이 총력을 펼치며 한 곳 또는 두 곳의 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았으나 무려 4곳이 선정됨에 따라 희소성이 떨어진 데다 특화단지 지정 남발로 인한 반감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후죽순 지정 속 경기도 용인·평택,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거점” 희색

정부는 이차전지 특화단지 4곳 중 배터리 광물 가공-소재-셀-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이차전지 밸류체인을 완성하기 위해 전북의 새만금은 광물 가공 및 재활용 분야를 지정했다. 또 포항은 소재, 청주와 울산은 셀 분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새만금 등 무려 4곳이나 지정되면서 '특화'라는 말이 무색해 보일 정도라는 지적과 함께 이차전지산업 선점을 위한 지역 간 경쟁을 정부가 부추키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차전지 외에도 이날 정부가 발표한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7곳, 소재·부품·장비산업(소부장) 특화단지 5곳의 전략 지도에는 경기, 충남·충북, 전북, 광주, 경북, 대구, 울산, 부산 등 전국 각지에 골고루 펼쳐졌다.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탄소소재·정밀기계 등 첨단산업 특화단지 밑그림 중에는 전북 새만금 외에 경기 용인·평택(메모리·시스템 반도체), 경북 구미(반도체 소재), 충남 천안·아산(차세대 디스플레이), 충북 청주(배터리 셀), 경북포항(양극재), 울산(셀, 소재) 등 7곳이 포함됐다. 또 소부장 특화단지는 충북 오송(바이오, 바이오의약품 원부자재), 광주(미래차, 자율주행차 부품), 경기 안성(반도체, 반도체 장비), 대구(미래차, 전기차 모터), 부산(반도체, 전력반도체) 등 5곳이 지정됐다.
‘반도체 탈락’ 광주·전남 “유감"..."특화단지 추가 지정" 촉구

특히 전국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반도체 분야에 정부는 경기도 용인과 평택을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거점으로 육성한다"며 손을 들어줬다. 정부는 무려 562조원에 달하는 민간 투자를 지원한다고 밝히자 그간 유치 경쟁을 벌여왔던 인근 광주·전남지역이 이날 탈락해 유감 표명을 하는 등 희비가 교차됐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350만 시·도민께서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를 간절히 염원했지만 정부는 이러한 희망과 기대를 철저히 외면했다"며 "정부에 반도체 특화단지 추가 지정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한편 '전남형 반도체산업' 육성 의지를 함께 밝혔다.
그러나 경기도는 용인이 2042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된다는 정부의 발표에 희색이 가득한 채 환호했다. 약 300조원의 대규모 신규 민간 투자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곳을 반도체 최대 생산거점으로 지정해 현재 가동 중인 이천·화성의 반도체 생산단지와 연계해 키운다는 방침이다.
반도체 '수도권' 집중...비수도권 경쟁 '치열'
이밖에 경기도는 용인 남사에 삼성전자의 첨단시스템 반도체 팹 5기, 용인 원삼에는 SK하이닉스의 첨단 메모리 반도체 팹 4기, 용인 기흥에는 삼성전자의 첨단메모리·시스템 R&D센터 등이 자리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평택 고덕에 이미 삼성전자의 메모리 및 시스템 팹 3기가 있어서 반도체의 수도권 집중이 더욱 공고해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반면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경북 구미에 반도체 핵심 소재인 웨이퍼와 기판 등의 대규모 생산라인을 확대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예상 투자 규모는 총 4조 7,000억원에 이른다. 구미에는 이미 SK실트론(실리콘 웨이퍼), LG이노텍(반도체 기판), 원익큐앤씨(쿼츠웨어) 등이 갖추어져 있다. 이 때믄에 더욱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및 경제안보 확보에 용이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밖에 충남 천안·아산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퀀텀닷(Q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혁신 거점으로 도약한다는 밑그림이다.
광주·대구 '미래차', 부산 '반도체 장비 국산화', 충북 오송 ‘바이오 자립화’...기대
이밖에 소부장 특화단지로 정부는 광주와 대구에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 미래차 관련 부품 생태계를 조성하기로 했다. 또 부산에는 고성능 화합물 전력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고, 경기 안성에는 반도체 장비 공급망 자립화에 집중하며 충북 오송에는 바이오의약품 제조용 원부자재 자립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광주에는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능과 관련된 인지센서, 제어부품, 통신 시스템 관련 밸류체인을 집적화할 계획이어서 현재 기아차, 광주글로벌모터스(GGM) 등 완성차 기업과 함께 LG이노텍, 현대모비스 등 주요 미래차 부품사와 약 70개 소부장 기업들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와 달리 대구에는 영구자석, 구동모터, 구동모듈 등 전기차 모터의 기능단위가 완결된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정부는 배양, 정제, 완제 등 바이오의약품 제조공정 전반에 활용되는 필수 바이오 원부자재의 공급망을 충북 오송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충북 오송에는 현재 LG화학, 대웅제약, GC녹십자 등 주요 수요기업과 바이오 원부자재 관련 약 70개의 소부장 기업이 있다.
이처럼 기존의 전략산업과 연계해 추가된 투자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장밋빛 청사진 뿐인 신규 투자 계획이 대부분이어서 향후 제대로 투자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제시한 모델의 성공 여부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팽배한 이유다.(계속)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