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큐레이터 시선
지난 4일 일본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안전 기준을 충족한다'는 내용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전달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석연치 않은 한국 방문은 비난과 조롱거리만 남겨 아쉬움이 크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과 관련해 이해를 돕고 설득하겠다고 잔뜩 벼르며 우리나라를 방문한 그는 많은 어록을 남긴 채 떠났다. 그 중 “나도 후쿠시마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 "그 안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 외에 특정 보수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이 우려해야 할 건 후쿠시마가 아닌 북핵”이라고 말한 대목은 가히 압권 중 압권이었다.
“IAEA 일본 맞춤 보고서 폐기하라, 그로시 고 홈"...시민들 '분노' 무시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일본 방문 일정을 후한 환대 속에 잘 마친 뒤 7일 밤 김포공항 국제선 터미널에 도착한 그로시와 그의 일행은 한국에서도 환대를 받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1층 귀빈용 출구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다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에 가로 막혀 비행기 도착 후 2시간가량이 지난 8일 오전 0시 50분께에서야 시위대와 취재진의 눈에 띄지 않는 화물청사 통로로 공항을 급히 빠져나가야만 했다.
시민들은 “IAEA 일본 맞춤 보고서 폐기하라”, "그로시 고 홈(go home)" 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더니 2박 3일의 한국 일정을 마친 그는 단 한 차례의 '공개 기자회견'도 열지 않고 9일 오후 조용히 출국했다.
이날 오후 인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뉴질랜드행 항공기에 몸을 싣고 떠난 그에게 왜 한국에 왔는지, 한국 국민들을 도대체 어떻게 보고 후쿠시마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고 설득하려 했는지 묻고 싶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IAEA 사무총장인 그의 가벼운 행동은 차치하고라도 그의 방한이 어떤 배경에 의해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유엔 산하 IAEA란 기구가 그렇게 한가한 곳이었던가? 씁쓸함이 절로 배어 나온다. 국제원자력기구라는 곳이 사무총장의 입김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고 설득되는 곳이었던가? 더욱이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 기준을 충족한다‘는 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하고 수많은 반대 여론은 왜 무시됐는지 등의 이유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설명도 없었다.
기자회견 없이 5개 언론사와만 인터뷰...나머지 언론사들은 알아서?

오로지 자신의 견해 위주로 말을 내뱉었을 뿐이다. 지난 4일 일본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안전 기준을 충족한다'는 내용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전달한 그로시는 여세를 몰아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여론이 많은 우리나라를 방문해 설득전을 펼칠 생각을 했던 모양인데 충분한 준비도, 설득 논리도 부족해 보였다.
국가 간 중요한 이슈임에도 공식 기자회견을 한 번도 하지 않고 특정 언론사 몇 군데와 인터뷰를 하고 돌아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앞서 일본에선 모두 4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기자회견을 개최했던 그로시가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차례도 공개 기자회견을 열지 않은 점은 참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국내에선 5개 언론만 선별해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고 떠났다. 그로시는 가장 먼저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중앙일보, 연합뉴스, 한국일보, JTBC 등 국내 5개 언론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머지 언론사들과 취재 기자들은 무시한 채 돌아갔다. 최근 우리나라 대통령의 대언론 소통 방식을 닮으려 했던 것이었을까?
나머지 언론사들은 그가 선택한 5개 언론사를 통해 전해 듣고 전하란 것으로 해석된다. 국가에 대한 예의도, 언론을 대하는 일말의 기초적 상식조차 갖추지 않은 자가 어떻게 유엔 산하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자리에 앉아 있는지 심히 우려스럽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