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요즘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일부 종교인들이 특정 종교의 믿음을 강요하면서 믿어야 천당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식으로 선교나 포교를 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나를 천당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니 고맙기도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보니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천당이나 극락이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목사님이나 신부님 그리고 스님 같은 성직자 분들은 병에 걸려 죽게 되더라도 겁낼 것 없이 죽어서 천당이나 극락에 가면 될 터인데 많은 분들이 병원에서 치료로 연명하면서 이승에서 자신의 생명을 최대한 연장하면서 살다가 늦게 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분세락(轉糞世樂)’이라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이런 얘기가 전해오는 것은 천당이나 극락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독교에는 천당이 한 곳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가의 경전을 보다 보니 불가에는 제가 아는 바로만 해도 극락이 경전에 따라 다르게 네 곳이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서방정토 극락세계’는 ‘아미타경’에서는 말하는 극락이고,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은 ‘미륵경’에서 말하는 극락이고, ‘연화장세계’는 화엄경에서는 말하는 극락이고, 동방에 있는 ‘약사유리광세계’는 약사경에서 말하는 극락입니다. 이런 네 곳의 극락이 경전에 따라서 표현만 다른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극락이 네 곳에 각각 따로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저에게 극락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워진다면 저는 미륵불이 계시는 ‘도솔천’을 택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도솔천(兜率天)은 ‘만족할 줄 아는 천신’들이 사는 극락세계로 한자로는 지족천(知足天)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승이나 저승이나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보면 ‘지족지족(知足之足) 상족의(常足矣)’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만족할 줄 아는 만족이 진짜 만족이라는 말씀 같습니다. 그저 배부르다 하는 만족이 아니라 우리가 왜 만족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정신적인 만족입니다.

공자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교로 말하자면 ‘안회’라는 제자가 실천하며 살았던 ‘안빈락도(安貧樂道)’의 삶도 ‘도(道)’의 세계를 즐기기 때문에 아무리 현실이 구차하더라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천당이나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살아서 만족을 하며 살아가면 이곳이 천국인 것이고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산다면 이곳이 바로 지옥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공자의 가르침인 안빈낙도(安貧樂道)나 노자의 가르침인 지족지족(知足之足)은 같은 의미로 그러한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면 이곳이 바로 천당이고 극락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살면서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심을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죽어서 천국에 갈 생각하지 말고 이승에서 욕심을 줄여 만족하는 삶을 산다면 이승에서 천국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겁니다. 오늘 지금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사는 게 중요한 겁니다.

선불교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달마어록’에는 만약 한 생각 마음을 일으키면 선과 악 두 가지 업이 발생하여 천당과 지옥이 있게 되지만 한 생각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선도 악도 없게 되어 천당도 지옥도 없다고 말합니다. 천당이나 지옥은 그 자체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지만 범부에게는 천당과 지옥이 있고, 성인에게는 천당과 지옥이 없다는 겁니다.

지옥은 죽은 다음에 가게 되는 험악한 세상이 아니라 중생들이 너와 나를 가르고 분별하여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며 분노하고 사는 삶의 현장이 바로 지옥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분별없이 고요하나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시끄럽다 보니 어리석은 사람은 지옥을 겁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에겐 천당이나 지옥이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끝으로 죽어서 가는 천당과 지옥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이승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워야 죽어서도 천당에 갈 수 있고, 이승에서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죽어서도 천당에 가기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글·사진: 이화구(CPA 국제공인회계사·임실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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