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지혜에서도 상책(上策)은 침묵하는 것이고, 중책(中策)은 말을 적당히, 적게 하는 것이며,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말이 아니더라도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프랑스 문필가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Joseph Antoine Toussaint Dinouart, 1716-1786)가 [침묵의 기술](1771)에서 한 말이다. 그는 수도원이 아닌 세속에 적을 둔 소위 ‘세속사제’로 활동했으며, [침묵의 기술]은 예수회의 전형적인 수사적 이론과 실제를 요약, 정리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침묵은 하나의 능력이다”며 14개의 필수 원칙을 제시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연다. 말을 해야 할 때가 따로 있듯이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따로 있다.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을 하는 것보다 입을 닫는 것이 덜 위험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침묵은 이따금 편협한 사람에게는 지혜를, 무지한 사람에게는 능력을 대신하기도 한다.”
침묵과 권력
“입을 열어 모든 것을 다 드러내기보다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바보처럼 보이는 편이 낫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의 말이다. “침묵을 경청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영국 소설가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의 말이다. “그들에게는 침묵의 의미를 상기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영국 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가 런던의 의사 합창단에 대해 쓴 비평에서 한 말이다. 이 비평은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금과 은은 순수한 물에서 잴 수 있듯이, 영혼을 시험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침묵 속에서다.” 벨기에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말이다. 그는 사람들은 소리의 부재를 죽음의 전조라 여기고는 그게 무서워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무의미한 소리를 지껄이는 데 낭비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침묵을 많이 지킨 대통령을 꼽자면 단연 제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1872-1933)다. 그의 침묵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하는데, 긍정 평가를 내린 언론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 1889-1974)은 이렇게 말했다. “쿨리지 대통령의 움직임 없는 천재적인 무(無)활동은 최고의 경지에 달했다. 이것은 게을러서 활동하지 않는 무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것은 엄격히 통제되고, 굳게 결심하고, 그리고 늘 신중한 판단에 따른 무활동이었다.”
“침묵은 권력의 최후 무기다.” 프랑스 정치가 샤를르 드 골(Charles de Gaulle, 1890-1970)의 말이다. 이와 관련, 불가리아 출신의 영국 작가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1905-1994)는 [군중과 권력](1960)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침묵의 힘은 언제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입을 열게 하려는 무수한 자극을 물리치고, 질문을 무시하며, 다른 사람의 말이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든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
침묵과 환상
‘부활한 마키아벨리’로 불리는 미국 작가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 1959-)은 [인간 욕망의 법칙](1998)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은 많이 하면 할수록 다 평범해지고 권위가 없어지는 법이다. 말로 인상을 남기려 할 때는 더욱더 그렇다. 진부한 이야기를 할 때조차도 모호하게 생각의 여지를 던지고 수수께끼처럼 만들어라. 권력자들은 말을 아낌으로써 강한 인상과 위협감을 남긴다. 말을 많이 할수록 후회할 말을 하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침묵은 사회 저명인사나 연예인에게도 최후 무기는 아닐망정 신바감을 불러 일으키는 주요 무기다. “침묵은 환상을 키우는 양분이다. 만일 재키가 토크쇼 진행자로 나섰다면, 틀림없이 대중 사이에서는 그녀를 추앙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미국 문화평론가 웨인 쾨스텐바움(Wayne Koestenbaum, 1958-)이 [나를 애타게 하는 재키(Jackie under My Skin: Interpreting an Icon)](1995)에서 한 말이다. 재키는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 1929-1994)의 애칭이다.
“케이트 모스는 논란에 휩쓸릴 때도 언론 앞에서 입을 열지 않은 덕분에, 진정한 아이콘—우리가 바라는 그 어떤 의미도 투사할 수 있는 이미지—이 되었다.” 영국의 패션 전문 저널리스트 알렉산드라 슐만(Alexandra Shulman, 1958-)이 [브리티시 보그(British Vogue)] 2007년 4월호에 쓴 기사에서 한 말이다. 패션 평론가 앤절라 바톨프(Angela Buttolph)는 “어딜 가나 사람들 눈에 뜨이는데도 어느 누구와도 말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는 그야말로 천재다”고 했다.
“현명한 머리가 무거운 입을 만든다.” “말해야 할 때가 있고 침묵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침묵은 반박이 가장 어려운 논법 중의 하나다.” “침묵하라.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을 철학자로 생각할 것이다.” 자주 인용된 이런 서양 격언들도 침묵은 무기일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그러나 언젠간 들통날 수밖에 없는 한시적 무기라는 점에서 침묵을 무기로 자주 쓰는 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