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투고

<전북의소리> 독자가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의 칼럼에 대한 반론의 글을 투고해왔다. 비록 다른 언론사(한겨레)에 실린 칼럼에 대한 반론의 글이지만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를 고정적으로(매주 월요일) 게재하고 있는 <전북의소리>를 통해 반론을 게재하고 싶다는 독자의 진정성 있는 문제 제기를 존중해 투고를 소개하기로 했다. 다음은 광주시에 거주하는 독자 이일 씨가 지난 3월 6일에 이어 투고해 온 두 번째 반론 내용의 전문이다. /편집자 주

[첫 번째 반론 글] ‘강준만 칼럼'에 대한 반론: '지역주의 투표와 합리적 유권자'


혼네와 다테마에

강준만이 민주당에 올인하는 호남의 표심을 비판한 저의는 무엇일까. 강준만은 한겨레 칼럼(‘정권장악을 위해 착취당하는 호남’)을 통해 호남의 민주당 편향을 비판한다. 호남이 과거의 원한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민주당만 선택해 정당 간 경쟁을 말살한 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무주공산이 된 호남에 무혈입성을 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호남을 도외시하고, 호남은 점점 더 낙후된다는 게 강준만이 내세우는 논리이다.

호남 유권자를 맹목적인 반감에 휩싸여 자신의 이해관계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한 유권자로 보는 오만한 시각은 차치하고, 강준만이 주장하는 논리가 타당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호남 시민들한테 석고대죄 해야 할 사람은 바로 강준만 본인이다. 호남의 민주당 쏠림이 어제오늘 일인가? 아니다. 87년 김대중의 평민당 창당 때부터이다. 그런데 강준만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열렬히 지지한 과거가 있다.

지역 내 정당 독점이 지역을 피폐하게 만드는 악이라면 강준만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결코 옹호해선 안됐다. 되레 김대중과 노무현이 호남을 망치고 있다고 맹렬히 비토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건 호남 스스로를 망치는 첩경이라며 호남의 민심을 강력히 성토해 호남의 표심이 보수정당으로 분산되도록 노력을 경주했어야 했다.

그런데 강준만은 호남의 민심을 그대로 반영해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했다. 한마디로 강준만 본인이야 말로 호남의 민주당 편향에 단단히 기여한 셈이다. 그러니까 강준만의 논리대로라면 호남을 낙후시킨 주범은 김대중과 노무현이고 종범은 바로 강준만 본인인 셈이다. 놀라운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강준만은 지금 스스로가 전혀 앞뒤가 안 맞는 일관성이 없는 언행을 펼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셈인가?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호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비판의 지점과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강준만은 호남의 선택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유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밝혀야 한다.

핵심에 도전해야 한다. 강준만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정치학자 김만흠은 <폴리뉴스> 2022년 12월 27일 자에 게재한 ‘이런 정당정치 국고로 지원해야 하나?’라는 칼럼에서 민주화와 개혁의 첨병 역할을 했던 민주당이 오늘날 그 정신과 역사성을 상실했다고 개탄하며 현 민주당의 뿌리를 2003년에 창당된 노무현의 열린우리당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즉 노무현 이전의 민주당과 이후의 민주당이 완전히 단절됐다고 본 것이다. 이게 바로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이 대목이 바로 강준만의 비판이 개입할 지점이다.

사실과 믿음 간의 괴리가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현 민주당에 대한 호남 시민들의 평가이다. 호남 시민들의 믿음 속에서 노무현·문재인·이재명은 김대중을 계승한 민주 세력의 당당한 리더들이다. 이게 호남 시민 주류의 인식이다. 그러나 강준만은 김대중과 그들은 다르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 바로 여기서 대화는 출발해야 한다. 강준만은 이 핵심을 호도하지 말고 왜 노무현 이전과 이후의 민주당이 다른지, 그 차이를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왜 호남 시민들이 노무현을 기점으로 다른 시각과 태도로 민주당을 대해야 하는지를 역설해야 한다.

강준만은 지적 성실성을 보여야 한다. 다수의 지배적인 신념과 싸우는 게 지난하고 부담스러운 작업이라해서 그걸 외면하면 안 된다. 그게 호남을 대변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지위와 명예를 누리는 지식인의 도의이다. 아마도 강준만은 민주당에 대한 호남 민심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민주당에 대한 거부반응을 직관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쉬운 논리로 우회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게 바로 호남 내 정당 독점이 호남 스스로를 낙후시킨다는 진부한 통념을 답습하는 방식이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논리인가? 그러나 소수파를 향한 왜곡된 편견까지 아전인수로 동원해 본인이 내세우는 주장의 설득력을 강화하는 방식은 비판이 아니라 얄팍한 선동에 불과하다. 대중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지필 수 있는 이런 방식은 얼른 써먹기 좋을지 모르겠지만 문제의 핵심에 근본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강준만 본인의 능력 부족만 드러낼 뿐이다. 그러니까 지적 성실성이 없다는 얘기다. 지식인이 지적 권위를 내려놔야 대중과 접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소신으로 대중적 글쓰기를 지향하는 게 강준만이지만, 글을 쉽게 쓰는 것과 글을 함부로 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정당 독점 때문에 호남의 경제 사정이 어렵다는 강준만의 논리대로라면, 호남이 낙후된 게 호남의 정치적 선택이 야기한 인과적 결과란 말인가? 보수정당이 호남을 지속적으로 소외시키니까 호남이 울며 겨자 먹기로 민주당만 선택하는 건데, 호남이 보수정당을 외면해서 호남이 소외되는 거라고 인과관계가 전도된 엉터리 주장을 펼치는 건 지식인으로서 자질마저 의심케 한다. 이는 지역주의의 책임주체가 누구인지와 연계되기에 대단히 중요한 논점이다. 호남이 보수정당을 외면하니까 호남이 소외되는 거라면, 지역주의의 책임주체가 호남이란 말인가? 강준만은 정녕 이런 결론을 원하는가?

한겨레신문 2008년 9월 24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한겨레신문 2008년 9월 24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강준만이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유가 무엇인가. 2008년 9월 24일자 여러 언론보도에서 드러나듯 생전 노무현은 호남의 정치적 단결이 지역주의를 초래한다는 식의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호남한테 먼저 지역주의를 풀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주의에 대한 인식과 해결방식의 차이가 강준만이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와선 자신이 반대했던 노무현의 노선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오해받을만한 논리를 펼치는가. 보수정당과 그 지지층이 호남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는데 왜 호남이 먼저 변해야 하는가. 강준만은 지금 자신의 입장이 자신이 과거에 극렬히 거부했던 혐오의 논리에 근접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셈인가. 

보수정당이 변하지 않는다면 보수정당을 거부하는 호남 민심의 방향성 자체는 기본적으로 옳다. 이걸 부정하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망발이며, 목욕물 버리다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격이다. 이걸 인정하면서 호남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고언을 해야 한다. 호남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좀 더 자각과 책임감을 갖길 바란다. 

/이일(30대·광주시민·유칼립투스 광주농장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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