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미국은 사실상 타협을 숭상하는 헌법에 기초해 세워진 나라다. 작가 조너선 라우시(Jonathan Rauch, 1960~)는 [지식의 헌법](2021)에서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을 ‘타협의 천재’로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헌법은 많은 일을 수행하지만, 핵심은 타협을 강요하는 메커니즘이다. 의회는 입법을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법원은 그것을 뒤집을 수 있다. 의회는 거부권을 기각할 수 있고, 대통령은 새로운 법관을 지명할 수 있지만, 의회는 그들을 거부할 수 있다—기타 등등. 설계상 어떤 행위자도 다른 행위자의 동의 없이는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유권자의 주기적 개입에 의해 견제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공식적인 견제와 균형은 시작일 뿐이다....매디슨 체제의 정치는 균형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이다.”
이어 라우시는 “지금의 양극화한 분위기에서는 사람들이 타협을 기껏해야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원칙을 굽히고 진보를 저해해 모두가 불만족스러워지고 마는 불합리한 판단이라고 말이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협과 민주주의
“애석한 일이다. 왜냐하면 매디슨의 시각이 진실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타협은 절대선(絶對善)이다. 정부가 무너지지 않고 계속 전진하게 해주는 톱니바퀴이자 끊임없이 혁신·적응·포괄에 압박을 가하는 원천이다. 바꿔 말하면, 타협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하면 역동적인 동시에 안정적일 수 있을까 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난제에 대한 매디슨식 해답이다.”
매디슨이 타협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이었다면, 타협을 실천에 옮겨 미국을 야만의 수렁에서 건져낸 대표적 인물은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었다. 우선 다음 글을 감상해보면서 과연 누구의 주장일지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어떤 식으로든 흑백 양 인종 간의 사회적·정치적 평등을 추구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그러한 평등에는 반대합니다....저는 이제까지 검둥이 유권자나 배심원을 양산하는 데 찬성하거나, 그들에게 공직을 주거나 백인과의 혼인에 찬성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저는 흑백 양 인종 간에는, 제가 생각하기엔 앞으로 영원히, 서로가 정치적·사회적 평등을 누리며 함께 사는 것을 허락지 않는 신체적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흑백 양 인종이 평등하지 않으면서 함께 사는 이상, 분명 우월과 열등의 지위가 정해져야 합니다. 저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듯이, 백인종에게 우월한 지위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굴까? 누가 한 말일까? 웬 인종차별주의자의 망언이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노예해방의 영웅’으로 불린 링컨의 말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일리노이주에서 주 하원의원(1834~1842)과 연방 하원의원(1847~1849)을 지냈는데, 이 시절에 했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 게리 윌스(Gary Wills)는 “링컨은 만약 흑인들의 완전한 평등을 지지한다면 일리노이주에서는 결코 당선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 평등에는 일관되게 반대했다”고 말한다.
지도자와 리더십
‘타협의 귀재’였다고나 할까? 영국 작가 길버트 체스터턴(Gilbert K. Chesterton, 1874~1936)은 링컨의 그런 리더십 스타일을 비교적 일찍 알아본 사람이었다. 체스터턴은 “링컨은 노예제도를 용인하면서도 끊임없이 노예제도는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을 때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은 정치가들을 자극했고, 결국 이 이상한 논리가 가장 실용적인 것임이 증명되었다. 즉 결국 무언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 조치를 실행해야 한다는 데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그것은 마치 맑은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꽂히듯 명백한 일이었다.”
게리 윌스는 “링컨은 어떤 순간에 얼마만큼 강도 높게 대응해야 할지를 알기 위해서, 동료 시민들의 복합적인 동기와, 상이한 입장을 지닌 측들의 상호견제하는 힘과, 그것들이 변화하는 방향을 매순간 점검해야만 했다. 추종자들이 지도자를 이해하는 것보다, 지도자가 추종자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법이다. 따라서 리더십을 구축하는 일에는 많은 시간이 든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대한 사상가들이나 예술가들이 지도자가 되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 해결에 몰두하는 과학자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이해할 에너지나 인내심을 지니기가 어렵다. 더욱 중요한 점은, 순수 과학자는 자신이 영향을 끼치고 싶어하는 청중을 위해 견해를 다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링컨은 사람들을 노예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조금씩 순화시켜 말했지만, 과학자라면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없다.”
링컨식 타협의 문법에 따르자면, 링컨이 백인과 흑인의 결혼에 반대했던 이유는 그걸 가능케 하기 위해서였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미국 작가 앨버트 허바드(Elbert Hubbard, 1856~1915)가 말했듯이, 어차피 “인생은 숙명과 자유의지 사이의 타협”이 아닌가. 우리 모두 타협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건 그걸 두려워 하지는 말자. 그게 타협의 출발점일테니 말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