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오늘 아침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한 달을 채우는 날입니다. 일터에서 서서 근무하는 1시간은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는데 1주일, 한 달은 금방 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제 저녁에는 조금은 늦은 퇴근 시간에 동네 지하철역 인근에서 여성 정치인 두 분과 식사를 겸해서 술도 한잔 같이 했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지역 주민과의 만남이라 해야 더 맞는 말 같습니다.

한 분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저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지난 2020년 4·15 총선과 2022년 6·15 지방선거 당시 제가 출퇴근하면서 지하철 역사에서 자주 뵙게 되어 인연이 된 분들입니다. 정치인들이야 진보나 보수를 가려서 정당에 가입하여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유권자로서 지역사회 일꾼을 뽑을 때는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만한 분을 정당에 관계 없이 찍었습니다.

당시에도 퇴근길에 오늘 함께한 분들이 유권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여 다가가서 저는 속도 없이 "왜 이리 어려운 길을 가시냐"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랬더니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누군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속도 없이 "짧은 인생살이 주어진 대로 남들처럼 대충 그저 그렇게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웃으면서 말을 건네며 집으로 향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후보가 어떤 분이신가 싶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전주의 명문 사학 출신으로 저와 동향에다 서울대 사범대학을 다니다 제적을 당한 분이었습니다.

저 같았으면 서울대에 들어갔으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교수 등과 같은 꿈을 꾸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당시 기억으로는 이 분의 말씀이 "대학 입학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사회 부조리와 모순에 저항하며 오롯이 노동자, 서민의 편에서 동고동락하였고, 앞으로도 불의에 맞서고 정의를 세우는 길을 걸어갈 것"이라니 제가 이런 분에게 소중한 한 표를 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지난 6·15 지방선거에서 우리 동네에서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활동을 하셨고, 우리 지역이 3등까지 당선되는 ‘3인 선거구’ 지역이라 당연히 당선될 줄 알았는데 유권자들의 기호 1번과 2번에 대한 기울기가 너무 심하여 아깝게 낙선한 분입니다.

2020년에는 구청에서 수백억원의 잉여금이 발생하자 코로나19 이후 고통 받는 주민들은 위한 재난지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한 겨울에 보름 이상 구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여야 했고, 당시 주민투표까지 실시하여 그 결과를 구청에 전달했음에도 당시 집권 여당 소속의 구청장이 외면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선거에서는 한 정당에 몰아줄 게 아니라 의원과 정당 투표는 서로 다르게 분산시켜 중용의 도(道)를 추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코로나 사태로 개인은 물론 가정과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심각한 우울과 갈등, 방역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도산, 빈부 양극화 심화 등으로 나라 전체가 갈등의 한계점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정권교체 이후에도 정치권은 또다시 정쟁으로 치닫고 있는 이 나라를 보면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동서남북 상하좌우’라는 것도 고정된 자성(自性)이 있는 게 아니고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좌향좌’나 ‘우향우’ 또는 ‘뒤로 돌아’하면 바로 ‘동서남북과 좌우’라는 것도 바로 바뀝니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 서면 ‘상하(上下)’ 즉 ‘하늘(天)과 땅(地)’ 마저도 360도 바뀌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모두 다 잠시 인연에 따라 ‘동서남북 상하좌우’도 바뀌는 셈입니다. 한 생각 돌이키면 중생이 부처가 되고 부처가 중생이 된다는데, 이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중생구제가 우선이지 ‘중생’이냐 ‘부처’냐, ‘좌’냐 ‘우’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금강삼매경’이라는 경전에는 “비록 사바세계가 머물 곳이 못 되어도 세세생생(世世生生) 다시 이승에 태어나 중생구제(衆生救濟)를 한 연후에 성불하리라"라는 사리불의 서원이 나옵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보살도입니까.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처럼 권력 만을 탐하지 말고 민생부터 챙기는 모범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 정치권에서는 통일신라 시대 원효의 화쟁론(和諍論)을 통한 갈등의 해법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원효 화쟁론의 핵심은 '열반경'이라는 경전에서 인용한 ‘개시개비(皆是皆非)‘라는 겁니다. 즉 "모든 주장이 다 옳다. 그러나 모든 주장은 다 틀리다."라는 겁니다.

내가 옳으면 네가 그르고. 네가 그르면 내가 옳다는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옳으면 너도 옳고, 내가 그르면 너도 그르다는 생각을 가질 때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문제 의식입니다. 그리고 의견이 다르다고 논쟁을 하더라도 상대를 미워하지는 말자는 겁니다. 물론 우리 사회는 기회와 조건의 불평등으로 인하여 항상 불신과 갈등이 존재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평등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사진: 이화구(CPA 국제공인회계사·임실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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