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내 소싯적에 성질이 급하여 고치려 해도 쉽게 고치지 못하였으나, 어느 날 아침에 깨닫자 어렵지 않았소이다. 마음이 노(怒)하였을 때는 참을 인(忍)자를 생각하면 노했던 마음이 자연히 없어지기에 이때부터 아홉 가지 글자를 써서 늘 보고 외우고 있소. 

그릇된 생각이 나면 문득 ‘바를 정(正)’자를 생각하면 사벽(邪辟)하기에 이르지 않고, 거만한 마음이 나면 ‘공경할 경(敬)’자를 생각하면 거만함에 이르지 않고, 나태한 마음이 나면 ‘부지런할 근(勤)’자를 생각하면 나태해지지 않으며, 사치스런 마음이 날 때 ‘검소할 검(儉)’자를 생각하면 사치함에 이르지 않으며, 속이고 싶은 마음이 나면 ‘정성 성(誠)’자를 생각하면 속이기에 이르지 않고,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날 때 ‘옳을 의(義)’자를 생각하면 이욕(利慾)에 이르지 않으며, 말할 때에는 ‘잠잠할 묵(黙)’자를 생각하면 말의 실수에 이르지 않고, 희롱할 때에는 ‘영걸 웅(雄)‘자를 생각하면 가벼움에 이르지 않고, 분노할 때에는 ’참을 인(忍)‘자를 생각하면 급하게 죄를 짓지 않게 되오.“

조선 후기 사람인 박두세(朴斗世)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에 실린 글이다.

과거에 떨어진 선비가 귀향길에 소사를 지나 요로원에 이르러 하룻밤 묵고 가려 했으나 먼저 와 차지한 양반이 있었다. 그 양반이 초라한 행색을 한 그 선비를 쫓아내려 했으나 선비가 기지와 해학으로 이겨 내고 하룻밤을 같이 지냈다. 서로 뜻이 통한 그들이 밤을 새워가면서 해학을 곁들인 문답을 주고받은 내용이다.

원래 가지고 있는 품성도 있지만 매 순간 일어나는 수만 가지 생각들이 있다. 그 속에 오만과 방종들이 도사리고 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정제된 삶을 살아나간다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 때마다 그 감정을 부드럽게, 때로는 엄혹하게 다스린다고 여기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라서 그 것이 저마다 다 다르다. 마음에서 정한 척도가 과연 ‘바른가’ 아니면 ‘그른가’ 조차 불확실한데 무엇을 가지고 판단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알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세상을 혼돈(混沌)이라는 말로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봄꽃이 피고 지는 계절, 지금 내 마음에 가장 필요한 글자는 도대체 무슨 글자일까?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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