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왕선택 한평정책연구소 글로벌외교센터장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분들께서 오랜 기간 겪으신 고통과 아픔에 대해 깊이 공감하며, 고령의 피해자 및 유족분들의 아픔과 상처가 조속히 치유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행정안전부 산하의 ‘일제 강제동원피해자 지원재단’ 을 통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야당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굴욕 외교'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이 잘못한 걸 왜 한국 기업이 왜 돈을 내냐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고자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근처 커피숍에서 왕선택 한평정책연구소 글로벌외교센터장을 만났다. 다음은 광 센터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 정부, 일방적 양보안 발표...백기 투항 아니면 일본 완승 평가”
- 정부가 지난 6일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발표해서 야당과 피해자 등의 반발이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민감한 내용 포함한 외교 협상은 국민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추진하는 것이 표준이고. 당연하죠. 그러나 이번에는 국민적 공감대 충분히 조성되지 않고 정부가 전격적으로 협상 종료하고 일방적으로 강제 동원 문제 해결책을 발표한 상황입니다. 협상 수준으로 보면 백기 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민적인 굴욕감을 자극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강제 동원 문제와 관련해서 두 가지 쟁점이 있었는데 하나가 일본 전범 기업이 배상금 모금에 참여할 거냐 말 건지죠. 또 하나는 일본 정부가 강제 동원과 관련해 사실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느냐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두 가지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양보안을 발표했기 때문에 백기 투항이라는 평가, 아니면 일본이 완승했다는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 2015년 말에 위안부 합의가 있었잖아요. 그때도 비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그때와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어요. 비슷한 부분은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한일 갈등 사안에 대해 일 처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점은 문제의 구조입니다. 강제 동원 문제는 책임자가 한국 정부고,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책임 문제가 달라진 이유는 1965년에 한일 청구권 협정 때문입니다. 그때 강제동원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협상 대표들이 협상해서 합의 본 바가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이 나중에 달라지면서 오늘날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의 경우는 1965년에 다루지 않았고, 합의된 바도 없습니다. 합일 청구권 협상이 합의된 이후에 새롭게 문제가 발견된 거예요. 그래서 그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이 맞습니다.”
- 2018년 판결은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것 아닌가요?
“당시 대법원은 개인 청구권이 아직 살아있다는 취지로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1965년 한일 협정 때문에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청구권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취지의 판결이 한국의 각급 법원에서 채택된 바도 있습니다. 논란 속에서 대법원판결이 나오자, 한국 정부에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1965년 합의에 따라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관련 문제는 한국 정부가 떠안았는데, 일본 전범 기업이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기 때문에 행정부는 해당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을 따를 수도 없고, 거역할 수도 없어서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제3자 변제 방식이라는 절충안을 제시했고,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던 중에 이번에 갑작스러운 사태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 여권은 이게 문희상 국회의장 안이었다고 하던데요?
“제3자 변제는 2019년에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방안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문희상 법안도 일본의 전범 기업이 배상하는 건 현실적으로 관철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수용했습니다. 그래서 제3자 변제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기금 마련하는 방안을 수용했습니다. 일본의 전범 기업과 한국 기업 중에서 일본 청구권 자금 받아서 도움 받은 기업,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마련해서 피해자들에게 제공하는 방안입니다. 이 방안은 일본의 전범 기업이 직접 배상금을 내지 않아서, 일본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는 일본 기업이 돈을 냈기 때문에 배상금을 받았다고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일본 전범 기업, 제3자 변제 방식 참여하지 않으면 제3자 변제 방식 채택 의미 사라져”

- 하지만 국민이 받아들이기에는 일본이 잘못한 건데 왜 한국이 배상하냐는 생각이 있어요.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1965년에 일본이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게 사실상 배상금에 해당하는 각종 명목의 돈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것을 한국 정부가 일괄적으로 받아서 대신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책임을 지게 됐습니다. 한국 정부가 책임 지는 방식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 정부 이름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일본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위반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가 됐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한국 대법원이 2018년에 다르게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행정부는 1965년 한일 협정 결과도 준수해야 하고, 대법원판결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충족하는 제3의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게 제3자 변제 방식입니다.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양보안을 발표했기 때문에 백기 투항이라는 평가, 아니면 일본이 완승했다는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일본의 전범 기업이 제3자 변제 방식에 따른 기금 모금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3자 변제 방식을 채택한 의미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 지금 일본 기업은 배상하려고 하지만 일본 정부가 막았다는 주장도 있더라고요?
“2018년 10월에 한국 대법원판결이 나왔는데 그 대법원판결에 따라서 일본에 해당하는 기업이 미쓰비시하고 일본 제철 두 개입니다. 그 회사들은 위로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 판단한 결과 그렇게 되면 일본의 강제 동원 문제가 불법적인 것으로 인정 받을 수 있어서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합니다.”
- 강제징용은 불법 아닌가요?
“일본 정부의 입장과 우리 한국 국민이 보는 인식은 상당히 거리가 있어요. 일본 정부 판단은 1945년 패전 직전 2~3년 동안에 전시 총력 동원 체제 속에서 일본 국민에 대한 강제 징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인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일본 국민 전체에 대한 강제징용이었고 당시에 조선은 외국이 아니라 일본의 일부였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거죠. 그것에 대해 우리는 1910년에 강제 병합이 된 부분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고, 조선이 일본의 일부라는 주장 자체를 거부하는 거잖아요. 거기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거예요.”
- 그럼, 윤석열 정부는 왜 그렇게 했을까요?
“한국과 일본이 관계 개선과 협력 해서 할 일이 많은데 강제 동원 문제 때문에 관계 개선도 안 되고 협력도 안 되니까 이 문제를 빨리 끊고 가자는 그런 입장이라고 알고 있어요.”
- 그게 맞나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죠. 미래를 향해서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미래를 향해서 협력하기 위해서는 과거 문제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야 돼요.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적인 감정이 해결이 안 됐어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해결한 다음에 미래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조치는 미래만 봤지 과거를 포기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백기 투항이라고 비판을 하는 것이죠.”
- 일본은 과거 총리의 사과문을 계승한다는 정도로 발표했는데요?
“1998년 김대중 오부치 공동선언에 보면 통절한 반성이란 대목이 있는데 그건 과거사에 대한 종합적인 내용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갈등 현안은 강제 동원 관련 문제입니다. 강제 동원 자체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이 필요해요. 그런데, 그 부분이 안 된 거죠.”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아 국민이 분노했는데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과 연결된 거겠죠?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고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준 게 3·1절 기념사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협상을 통해 절충하는 과정 생략하고 한국 정부가 먼저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문제를 돌파하나는 입장이 표출됐습니다. 그런 대통령 지침에 따라서 이제 한국 외교부는 협상을 중단하고 일방적인 양보안을 발표한 것이죠.”
“다자 안보기구 만드는 것이 미국의 패권 유지·관리에 도움 된다고 생각”
- 이게 결국 미국이 뒤에서 압박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는데.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가 국내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관계 개선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갈등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그냥 공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관계 개선하면 좋지만, 국내 정치적으로 부담이 많아서 못 하는 거예요. 그런데 미국은 한일 간의 관계 개선 해야만 하는 거예요. 인도 태평양 지역에 미국이 중심이 되는 다자 안보기구를 만드는 것이 미국의 패권 유지, 패권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그걸 만드는 것이 미국 외교의 목표예요.”
- 여권은 야당이 반일 감정을 이용하는 거라고 주장하는데.
“현재 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 운영 책임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야당은 문재인 정부 때의 반일 감정을 국내 정치에 활용한 부분을 이어받았고, 한일 관계를 최상의 수준으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도 이어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야당이 윤석열 정부의 이번 강제 동원과 관련해서 비판하는 것은 반일 감정 조장 차원이 아니라 외교 협상 문제에 대한 상식적인 판단과 대다수 국민 여론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새로운 문제가 나와도 우리는 일본에 문제 제기를 못 할 거라는 주장도 있어요?
“이번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해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이미 논의가 됐고 협의가 됐고 한국 정부가 합의한 사안이에요. 그런데, 상당한 세월이 지나서 한국 대법원이 해석을 다르게 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거예요. 그러나 1965년 한일 청구협정에서 다루지 않은 문제는 상황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위안부 문제라든가 사할린 동포들의 피해를 보상하는 문제라든가 또 일본에 원폭 투하가 됐을 때 거기에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들 그중에 피해를 본 사람이 많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향후에도 논의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거 말고 독도 문제라든가 역사 교과서 문제 또 일본 제국주의 시절 유적과 관련해 국제사회에서의 선전 문제 이런 것들은 청구권 협정하고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거는 계속해서 논의되고 우리는 우리 입장을 관찰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한 조치 다시 취소해야만 하는 상황 올 수도”
- 2015년 말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지만, 정권 교체 후 합의가 파기되었잖아요. 그 전철을 밟을 거라는 의견도 있던데요?
“저는 약간 다른 문제라고 봐요. 말씀드렸지만, 위안부 문제의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어요. 그리고 조금 아까 파기라고는 단어를 쓰셨는데 파기되지는 않았어요. 문재인 정부가 사문화시키는 쪽으로 처리한 것은 맞지만 파기됐다고 볼 수는 없어요. 무엇보다도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는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서 서명한 거예요. 미국이 보고 있는데, 한국이나 일본,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파기를 선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강제 동원 문제는 한국 정부가 해야 되는 문제예요. 한국 정부가 일 처리를 잘하고 한국 국민의 공감대를 잘 얻어내면 원만하게 종결이 가능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건 앞으로 윤석열 정부가 어떻게 하는지를 좀 봐야 합니다. 정권 교체가 돼도 이 문제를 다시 되돌리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위안부 문제하고는 다르다고 봐야 됩니다.”
- 한국 전경련과 일본 게이단렌이 기금 모아 한국 유학생 지원하겠다는 건 어떻게 보세요?
“저는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서로 협력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 차원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에서는 전경련이 참여하고 일본에서는 게이단렌이 참여해 기금 만들고 유학생들을 도와주고 한다는 건데 그거 자체는 저는 좋다고 봐요. 그런데 이번에 강제 동원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와 연계 지어서 처리한다는 것은 무리하다고 봅니다. 연결이 잘되지 않습니다.”
- 앞으로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당분간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가 있고 가장 걸림돌이었던 강제 동원 문제를 우리가 대폭 전격적으로 양보하면서 해소하고 넘어가겠다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한일 관계는 걸림돌이 장애물이 제거됐으니까 빠른 속도로 관계가 회복되고 개선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문제는 대한민국 국내 정치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 외교에 대한 불만이 가중되는 거죠. 그렇게 됐을 때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중심으로 국내 정치 전반의 위기가 올 수가 있어요. 윤석열 대통령은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한 조치를 다시 취소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이영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