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요즘 기온이 올라 날씨가 따뜻해진 데다 봄비까지 내려주니 주변에서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있어 봄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느낌입니다. 산책로 주변으로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운행을 따라 사시사철 펼쳐지는 계절의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숲은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면서 생명의 순환을 반복하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감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론 자연의 계절 봄은 한번 갔더라도 금년에 새봄으로 다시 찾아오지만 인생의 봄날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떠나간 인생의 봄날을 아쉬워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중국의 어느 유학자 한 분은 인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긴 역사 속에서 한 세대는 거대한 사슬의 고리 하나에 지나지 않은 듯하다. 릴레이 경주처럼 앞 세대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인생의 트랙을 한 바퀴 돈 다음 후 세대에 바통을 넘겨준다, 이것이 인생이다.”
그런가 하면 고려 말 어느 선사는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이며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이라”고 했습니다. “천겁의 세월이 흘렀어도 옛일이 아니며, 만세의 세월이 펼쳐지더라도 영원한 지금(長今)일세”라고 말입니다.

두 분 모두 우리 인간의 삶은 영원한 현재를 사는 것이라는 점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산책길에 주변 광경을 보고 느꼈던 아름다운 순간도 지나간 현재일 뿐이고, 집에 돌아와 SNS에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마주한 현재일 뿐입니다.
비록 우리 인간들이 한 평생을 사는 일이 자연의 계절처럼 순환되지 않고 탄생(生)에서 죽음(死)으로 이어지는 직선이라 해도 현재 우리들의 삶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세상에 처음 출현했던 먼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는 이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의 삶은 중국의 어느 유학자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과거에 존재했던 선조들과 미래에 존재할 후세대들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와 같은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순환되는 계절의 자연처럼 계속되는 시간선상의 어느 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삶도 계속됨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시인들이나 문학을 하시는 분들은 자연에서 나무들이 꽃을 피워서 봄이 왔다고 읊습니다. 그러나 도력(道力)이 깊으신 분은 봄이 왔기 때문에 나무들이 꽃을 피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계절을 이기는 꽃은 없다고 말씀합니다.

도(道)의 세계로 보면 봄이 오니 나무들이 꽃을 피운 겁니다. 자연에서 꽃을 피워서 봄이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나무들이 꽃을 피워서 봄이 왔다면 봄꽃이 지면 봄이 떠나야 하는데 비바람에 봄꽃이 진다고 봄이 떠나진 않습니다.
우리가 가을이 오면 부르는 '과꽃'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과꽃이란 노래 가사에 보면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 꽃 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꽃 속에 누나는 없습니다. 과꽃 속에 가을도 마찬가지로 없습니다. 문학 작품 속에서나 나오는 은유적 표현일 뿐입니다. 그러나 가을에 과꽃이 피지 않고 과꽃 속에서 누나 얼굴도 볼 수 없다면 세상은 삭막해질 겁니다. 그래서 가을이라는 계절과 과꽃이라는 자연이 서로 합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게 ‘성신합도(性身合道)’의 세계입니다. 자연 속에서 순환하는 계절이라는 성(性)과 자연 속에서 피운 꽃(身)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이렇게 해야 세상 모든 인간사는 순리에 따라가게 되고 자연 속의 꽃들도 계절의 순환에 맞춰 때를 알고 꽃을 피워야 자연의 질서와 순환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만이 신성(神性)이나 불성(佛性)을 지닌 청정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산하대지와 일월성신 등 삼라만상도 모두 청정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이 산하대지를 종속물로 여기며 무분별하게 훼손하고 파괴해서는 안 되며, 만일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자연환경을 계속 훼손하면 언제가 인간들 스스로를 종말로 이끄는 과보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글·사진: 이화구(CPA 국제공인회계사·임실문협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