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은 “대통령이 된다는 건 사형대에 오르는 것”,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화려한 불행",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1767~1845)은 "고급 노예생활", 8대 대통령 마틴 밴뷰런(Martin Van Buren, 1782-1862)은 "물러날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는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뭔가를 원하는데, 이것이 대통령직을 ‘외로운 자리’로 만든다”고 했고,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은 “백악관은 세계 최상의 감옥이다”고 했다. 트루먼은 “대통령 노릇은 호랑이의 등을 타고 달리는 것과 같다.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계속 달려야만 한다”는 말도 남겼다.

‘전 대통령직’이라는 비공식 직책 탄생하기까지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에선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보통사람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 정도로 으리으리한 대접을 받지만, 미국에선 트루먼 시절까지만 해도 대접이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었다. 이미 100년 전 제13대 대통령 밀러드 필모어(Millard Fillmore, 1800~1874)가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를 했음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이 돈이 없어 떠돌아 다니다가 생계를 잇기 위해 모퉁이에 식료품 가게를 차려야 할 지경으로 내몰리는 것은 국가적 수치다....우리는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 그가 정직한 사람이기를 기대하고, 또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직업을 포기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임기가 끝나면 그 사람을 은둔과 가난 속으로 방치해 버린다.”

대통령 퇴임 후 아주 궁핍한 상태로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 있는 자기 집으로 내려간 트루먼은 하원의장 샘 레이번(Sam Rayburn, 1882~1961)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주 가난합니다. 오줌을 눌 요강도 없고 그 요강을 비울 창문도 하나 없습니다.” 아무려면 그랬을까 싶긴 하지만, 잡화상을 하다가 대통령으로 변신한 트루먼에게 당시 제공된 건 육군연금 111달러뿐이었다고 한다.

트루먼이 우편물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자 의회는 마침내 행동에 나섰고 1958년에 ‘전직대통령법’을 제정하여 일정액의 급여와 소수의 직원, 여행 기금, 사무실 같은 특혜를 제공하기로 했다. 나중에 후속조치가 제정되어 경호 서비스가 추가되었고, 대통령에서 야인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이행 자금을 제공했다. 이러한 평생 지원 체계가 확립되면서, 전 대통령직(ex-presidency)이라는 비공식 직책이 탄생했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전직 대통령들의 경제 사정이 꾸준히 나아지자 이젠 이에 대한 상당한 저항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대통령 재임시 권력은 원없이 누릴 수 있는 걸까? 이 또한 결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많다. 대선이 있는 해인 1952년의 어느 봄날, 트루먼은 이미 군인 출신의 공화당 후보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가 자기 당 후보를 누르고 백악관 주인이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백악관 집무실 책상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젠하워는 이 자리에 앉을 거야. 그리고는 ‘이거 해, 저거 해’라고 지시하겠지.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대통령 자리는 군사령관하고는 다르거든. 가엾은 아이크. 그는 곧 이 자리가 심한 좌절감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게 되겠지.” 

퇴임 대통령, 눈살 찌푸려질 정도의 과도한 대접...왜? 

미국에선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그건 대외정책 중심의 관점에서 본 대통령 권력에 대한 우려였을 뿐 대통령 권력은 의외로 약하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곤 했다. 미국 정치학자 리처드 로즈(Richard Rose, 1933~)는 1991년 “워싱턴의 최고권력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최고권력자는 없다는 게 헌법상 정답이다”고 했다.

이와 관련, 영국 정치학자 아치 브라운(Archie Brown, 1938~)은 [강한 리더라는 신화: 강한 리더가 위대한 리더라는 환상에 관하여](2014)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미국 정치 체제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통령의 권력이 증가했다는 통념은 과도한 단순화다.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비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것만 봐도, 통념이 사실과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또는 그렇기 때문에 ‘강한 리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브라운의 주장을 더 들어보자. “미국에서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제약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도저히 불가능할 일들을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경향이 만연하다. 마찬가지로, 의회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최근 수십년간 정치 평론가 사이에서 총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경향이 대두되었다.”

그런 기대와 요구는 한편의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이 잘 지적했듯이, “우리는 대통령에게 도저히 한 사람이 해낼 수 없는 일과,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책임과, 도저히 한 사람이 견뎌낼 수 없는 압박을 주고 있다.” 이 코미디는 정파적 코미디다. 우리편 대통령은 무조건 옹호 및 추앙하고, 반대편 대통령은 무조건 비난 및 악마화한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대통령직이 ‘고급 노예생활’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에서 퇴임 후 대통령에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과도한 대접을 해주는 건 그런 노예생활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르겠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