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정치인들이 허구한 날 당파싸움을 벌이는 나라가 있다. 이를 보다 못한 학자들이 나서서 이런 해결책을 제시했다. 두 정당의 의원 100명을 골라내서 기술 좋은 외과의사가 이들의 뇌를 톱으로 반씩 자른 다음 반대편 정당의 사람들 뇌에 붙인다. 그러면 그들의 두개골 안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테지만 얼마 안 가서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며, 이제 정치인들의 뇌에서 국민이 원하는 중용과 조화가 나올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영국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이야기다.(주경철의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에서 재인용).

“인간이 역사에서 배운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정열과 당파성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따라서 경험이 주는 빛은 선미(船尾)의 등이어서 우리의 등 뒤에 일렁이는 파도를 비출 뿐이다.” 영국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의 말이다. 

당파성과 왜곡 

“당파성은 필터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앵거스 캠벨(Angus Campbell, 1910~1980)을 비롯한 학자들이 1960년에 출간한 [미국의 유권자(The American Voter)]라는 책에서 한 주장이다. 언론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의 해설에 따르자면 이런 이야기다. “당파성은 그 정당이 승인한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는 사실은 걸러버리고 일치하는 사실은 과장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몇몇 정치학자들은 이 책에서 기술하는 관찰 내용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여전히 캠벨의 결론, 즉 사람의 인식은 그 사람의 당파성에 의해 상당한 수준으로 왜곡된다는 명제로 돌아간다.”

미국 정치학자 샨토 아이엔가(Shanto Iyengar)는 2015년 약 1000명의 사람에게 장학금을 받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이력서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부탁하는 실험을 했다. 이력서는 세가지 측면에서 차이를 두었다. 첫째, 학점이 3.5거나 4.0일 수 있었다. 둘째, 두 학생은 젊은 민주당원 클럽 회장이거나 젊은 공화당원 클럽 회장일 수 있었다. 셋째, 그들은 전형적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름을 가진 동시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 협회의 회장이거나 전형적인 백인 이름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이력서에 정치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단어가 포함되자 민주당원들과 공화당원들의 약 80%가 자신이 소속된 당의 당원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학점은 상관이 없었다. 공화당원 학생이 더 자격을 갖췄을 때, 민주당원들의 30%만이 그를 선택했고, 민주당원 학생이 더 자격이 있을 때 공화당원들의 15%만이 그를 선택했다. 결론은 “당파성이 학업 우수성을 이겼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에서는 당파성이 인종도 이겼다. 후보자들이 동등한 자격을 갖췄을 때, 흑인의 78%가 같은 인종의 후보를 선택했고, 백인은 42%가 그렇게 했다. 다른 인종 후보자가 더 높은 학점을 받은 경우, 흑인의 45%와 백인의 71%가 타 인종 학생을 선택했다. 

당파성과 중독 

아이엔가와 논문을 같이 쓴 숀 웨스트우드(Sean J. Westwood)는 다른 인종을 폄하하는 데 전념하는 주요 미디어 채널은 없지만, 다른 당을 폄하하는 데 전념하는 채널들은 있다며 “언론이 부족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그들은 부족원들에게 어떻게 정체성을 확인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으며, 우리는 그 지시를 따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엔가 등의 정치학자들이 내세운 논지는 “오늘날 미국의 가장 중요한 단층성은 인종, 종교, 경제적 지위가 아니라 정치적 정당 소속감”이라는 것이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도 [업스윙: 나 홀로 사회인가 우리 함께 사회인가](2020)에서 “감정 온도계에서 측정된 정당 간 적개심은 오늘날 인종적·종교적 적개심보다 훨씬 강렬하다”고 말한다. 보통 미국인들 사이에서 당파주의는 공적 생활 뿐만 아니라 사적 생활에서도 점점 더 ‘우리’ 대 ‘그들’이라는 틀에 갇히게 되었다며 한 말이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 답이 없다. 그래서인지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가 유권자에게 퍼부은 폭언이 생각난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서 민주당 일색인 남부 지역에서 선거 유세를 하던 그는 일부 청중이 “나의 할아버지도 민주당원이었고 아버지도 민주당원이고 나는 민주당원이다”는 말로 자신의 기를 꺾으려 하자 발끈하면서 이렇게 쏘아붙였다. “글쎄요, 만일 당신의 할아버지가 민주당원이었는데 당신 아버지도 민주당원이라면 당신은 무엇일까요? 대답은 바로 나옵니다. 물론 ‘나는 바보천치지요!’라고 말입니다.”

물론 이런 식의 폭언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정열적인 당파성에 눈이 멀어 그게 무슨 타고난 운명이나 팔자라도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유권자들의 자세나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던 연예계 스타나 스포츠 스타가 자신이 증오하는 정당의 지지자라는 걸 알게 되면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돌아서는 사람들을 보면 어이 없다 못해 기가 질린 나머지 갑자기 숨 쉬기가 힘들어진다. 당파성 숭배자 또는 중독자들이여, 부디 내게 숨쉴 수 있는 자유를 달라!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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