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의 신간 ‘정치 무당 김어준 그 빛과 그림자’란 책이 세간에 화제를 모으고 있다. 책 제목만큼이나 자극적인 반응들이 줄을 잇고 있다. 마치 대중의 원시적 본능을 자극하고 호기심에 호소하는 ‘센세이셔널리즘(sensationalism)’을 연상시킬 정도로 책 제목과 표지 편집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기 때문일까?
책이 본격적으로 출판되기도 전에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이 책의 내용은 이미 특정 매체에 여러 차례 소개됐던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다시 편집해 출간한 것임에도 자극적인 반응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주요 언론사 인터넷판 등에서 들끓고 있다.

그 반응이 대부분 분노와 저주로 가득차 있다는 점에서 이 책 표제와 관련된 인물의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가 얼마나 높은지 가히 실감케 한다. ‘팬덤 정치’와 ‘강준만 저널리즘’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센세이셔널리즘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팬덤 정치’는 대다수 국민들의 민심이나 상식에 의한 정책, 입법행위가 이루어지는 정치 행위가 아니라, 극성 지지자들의 입김과 이득이 반영되는 정치 행위를 뜻하는 말로 불과 1~2년 전에 대중화된 단어다. 하지만 '콘크리트'라는 단어와 조합을 이룰 정도로 지지층이 견고하고 결속력도 강하다.
‘빛과 그림자’, ‘전기와 후기 분석’ 생략하면 곧바로 ‘무당’, ‘선동가’로 해석
강 교수가 ‘인물과사상사’를 통해 펴낸 이 책의 제목은 엄밀히 말하면 ‘정치 무당 김어준 그 빛과 그림자’이다. ‘10일 출간 예정’이라고 출판사는 밝히고 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달한 듯하다. 일부 언론사들은 이 책을 소개하면서 ‘정치 무당 김어준’으로 소개한 경우가 많다.
‘그 빛과 그림자’란 뒷 부분을 싹둑 자르고 보도하는 언론들도 눈에 띈다. 그러니 더욱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아예 ‘김어준은 증오·혐오 정치의 선동가‘란 제목으로 책을 소개하면서 센세이셔널리즘을 더욱 부추기기도 했다. 당연히 독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제목들이다.
물론 이 책의 내용들 중에는 자극적인 표현과 선동적인 주장들도 있다. TBS 방송 진행자였던 김어준 씨를 가르켜 “‘팬덤 정치’를 극단으로 밀어붙여 사실상 한국 정치를 타락시켰다”고 혹평하기까지 했다. 다만, 이 책에서 정치에 개입하기 전의 김어준 씨 활동을 ‘전기 김어준’, 정치에 직접 개입한 시기를 ‘후기 김어준’으로 구분하여 분석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김어준 현상’이 한국 정치에 남긴 명암을 조명하고 고찰하고자 한 의도가 엿보인다. 특히 김어준의 ‘닥치고 우리 편’ 주문에 열광하는 '친문 팬덤'과 그를 ‘브레인’으로 높게 평가하는 것을 넘어 심지어 ‘김어준 중독’ 현상까지 보이고 있는 정치인들에 혹독한 평가를 던졌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과거 김어준, 즉 ‘딴지일보’ 시절 김어준의 독보적인 가치에 찬사를 보냈던 사람”이라고 고백하며 “그러나 김씨가 정치에 뛰어들려고 했을 때 제발 그러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간접적으로 말렸다"고 했다. 그 이유로 "정치는 그를 타락시키고, 그는 정치를 타락시킬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강 교수는 주장했다.
‘퇴마 정치’ 이어 팬덤 자극, 들끓는 비난...왜?
특히 이 책에서 강 교수는 “‘후기 김어준’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씨가 지명도와 정치적 영향력에서 거물로 성장했지만, 그의 영혼은 피폐해졌다”며 “‘전기 김어준’이 부르짖었던 ‘명랑 사회’ 구현은 사라지고 온갖 음모론이 판을 치는 정치 무속의 세계가 열리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감한 현실 정치를 비판한데 대해 반응은 매우 빠르고 뜨겁다. 앞서 강 교수는 지난해 12월 같은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 ‘퇴마 정치, 윤석열 악마화에 올인한 민주당’의 책에서도 표제에서부터 '팬덤 정치'를 자극했다.
이 책에서 강 교수는 “2022년 대선이 윤석열의 승리로 끝나자, 민주당은 새로운 퇴마의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윤석열 탄핵’까지 거론하는 ‘퇴마 정치’에 목숨을 걸었다”며 “어느 대학교수는 ‘윤석열은 악마’라고 규정했고, 민주당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라거나 ‘민주주의를 악마한테 던져주는’ 등 ‘악마 타령’을 앞세워 윤석열을 공격했다”고 일갈했다.
전체적인 맥락 흐름 속에는 ‘민주당이 그 어떤 성찰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내용이 핵심인 듯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자극적이고 현란한 수사, 가령 ‘퇴마’와 ‘악마화’ 등의 표현은 지나친 센세이셔널리즘이란 지적과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에도 책보다 훨씬 자극적인 분노와 저주의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불과 한 달여 만에 다시 '팬덤 정치'를 자극시킨 모양새가 됐다. 당시는 ‘악마화’에 분노했다면 이번에는 ‘무당’이란 표현에 팬덤 정치가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분노하는 형국이다. ‘정치 무당 김어준 그 빛과 그림자’의 신간이 소개되자 6일 페이스북과 일부 언론사 인터넷판에는 금세 수많은 댓글들이 올라왔다. 강 교수의 책을 소개한 페이스북에는 욕설과 부정적인 댓글이 주를 이뤘다.
물론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하는 성향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성향의 사람들도 있다. 열성적인 의사 표현을 하는 뉴스 이용자들 중에는 분이 덜 풀렸던지 전화로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이 책 내용과는 전혀 다른 강 교수의 고정 글을 연재한 <전북의소리>에도 이날 항의 전화와 함께 그의 글들을 삭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책 내용 읽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 흥분하는 건 아닌지...위험한 팬덤 문화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의문이 드는 건 ‘과연 강 교수가 펴낸 책을 끝까지 잃어본 후 표출된 분노와 항의일까?’란 점이다. 무수히 많은 비판 댓글들을 보며 머뭇거려지게 되는 이유이다. 강 교수의 주장을 편들거나 자극적인 책의 제목 그리고 편집 방향 등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책이 나오기도 전에 책 내용을 이미 통달한 듯이 비난과 저주에 열을 올리는 것이라면 이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강 교수나 출판사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표제 등에서 드러난 센세이셔널리즘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공분이라면 그보다 더한 센세이셔널리즘이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진영 논리를 내세운 ‘팬덤 정치’ 마니아나 극렬한 선동가들의 표현과 항의 행태를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제발 책이라도 좀 읽어보고 난 후에 비판 대열에 참가하는 것이 성숙한 팬덤 문화를 꽃 피울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아무리 편을 갈라 진영 전쟁을 벌인다 해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있는 법이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선 역지사지를 해야만 한다.”
‘정치 무당 김어준 그 빛과 그림자’란 신간에서 강 교수가 주장한 이 말은 강 교수 자신은 물론 센세이셔널리즘에 기댄 출판사와 언론사 그리고 팬덤 정치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읽힌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