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휴가 중 마주한 무주 덕유산 '입춘 설경'

1989년 전북지역 일간지 취재 기자로 첫발을 내디뎌 2023년 1월까지 34년 동안 지역기자로 살아온 박용근 경향신문 국장은 최근까지도 전북주재기자였다. 긴 지역기자 생활을 접고 올 2월부터 공로휴가에 들어간 그가 찾은 곳은 무주 덕유산.
마침 긴 휴가를 반겨주기라도 하듯 절기상 입춘임에도 하얀 눈꽃으로 온통 뒤덮힌 덕유산 자락은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일깨워 주는 듯 깊고 고요하기만 하다. 그가 보내온 사진들 속에 가득 묻어난다.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난 건 30여년 전인 1990년대 초반이다. 지역 일간지에서 만나 춥고 배고픈 기자 생활에도 불구하고 늘 ‘올곧은 기자 정신만은 잃지 말자’며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여주던 동료였다. 힘들 때마다 흉금을 털어놓고 지내던 몇 안 되던 뜻 맞는 지역기자였다.
대학시절부터 신문방송 '한몸'...새전북신문 창간 멤버 맹활약 후 경향신문 이직 ‘훨훨 날아’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대학 재학시절 교내 방송사에서 국장까지 지낼 정도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그가 전라일보에 처음 입사해 주재기자 생활을 하기엔 너무 아까울 정도였다.
본사에 발탁된 그가 2000년 새전북신문 창간 멤버로 자리를 옮겨 언론인으로서 발군의 역량을 발휘하다 다시 발탁된 곳은 경향신문이었다. 경력직으로 2003년 경향신문 전국부로 자리를 옮긴 후 그는 지역 곳곳을 누비며 정론을 펼치기로 유명했다. 경향신문으로 가자마자 녹색언론인상을 수상하는 등 취재 현장을 훨훨 날며 누비고 다녔다.
그는 2003년 12월 19일 전북환경운동연합으로부터 ‘2003 전북환경인상 녹색언론인상’을 받았다. 당시 전북환경운동연합은 “박용근 기자는 '부안 사태(방폐장)' 보도에서 편향적인 일부 언론과 달리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보도를 통해 사회적 약자인 부안군민을 옹호하는 등 '부안 투쟁'에 대한 사회적 분석을 시도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 인정된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귀갓길 강도상해범 검거 '화제'...지역기자들 사이 ‘유명 일화’

이 밖에 그는 ‘강도 잡는 기자’로도 널리 알려진 적이 있다. 2009년 11월 26일 당시 경향신문 전북주재기자였던 그는 취재 후 늦은 귀갓길에 20대 강도상해범을 맨손으로 검거해 화제를 모았다.
전국은 물론 지역 언론들은 그를 ‘현직 기자 강도상해범 검거’, ‘맨손으로 강도 잡은 지역기자’ 등으로 제목을 달며 “40대 현직 기자가 20대 강도상해범을 맨손으로 검거했다”고 큼지막하게 보도했다.
당시 나이 46세였던 그는 새벽 1시 50분께 귀가하던 중 전주시 송천동 한 아파트 이면도로에서 2명이 넘어져 몸싸움을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후 "강도를 잡아달라"는 다급한 택시기사(당시 나이 60세)의 도움 요청을 받고 기사를 폭행하고 있던 A씨(당시 나이 25세)를 제압했다.

처음 강도와 정면으로 마주친 그는 위험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허리띠를 풀어 대응하다 도주하는 그를 쫓았다. 그러다 갑자기 그를 향해 돌진하던 범인을 노트북 가방으로 방어한 뒤 대로로 도주하는 범인의 뒤를 다시 쫓으며 112에 신고를 해 경찰과 함께 범인을 붙잡았다.
범인 A씨는 이날 택시를 타고 내린 뒤 택시비를 내지 않고 도주하려다 이를 붙잡는 택시기사의 머리를 휴대폰으로 내려쳐 상처를 입히고, 다시 기사를 바닥에 넘어뜨려 폭행했다. 전북경찰청은 박 기자에게 범인 검거 표창장을 수여했다. 지금도 지역 기자실 등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지역기자’ 어느덧 60세 정년...34년 외길 '귀감'

이 외에도 많은 특종과 일화를 남긴 그가 이제는 60의 나이가 되어 정년을 앞두고 있다. 2022년 국장으로 승진한 뒤 올해 공로휴가에 들어간 그는 34년 동안 기자를 천직으로 여기며 지역 기자들에게 귀감이 되어왔다.
올 1월까지 주재기자 역할을 다른 후임 기자에게 인계하고 휴식과 정리의 시간을 갖는 그가 설경에 듬뿍 취해 여러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그의 얼굴이 담긴 몇장의 사진 속에서 문득 그와 함께 젊은 시절 기자생활을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혈기 왕성했던 시절 지역 신문사에서 1990년대 초반 무렵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근무했던 기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가난한 신문사 시절을 함께 하면서도 올곧은 기자 정신과 예리한 필봉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경쟁자이자 훌륭한 동료였다. 그런 그가 항상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2016년 그의 모교인 원광대학교로부터 '제7회 원광언론인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2020년부터는 원광대 언론인회(원언회) 회장을 맡아 최근까지 활동할 정도로 지역과 모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지역기자의 외길을 34년 달려오며 그동안 못 누렸던 자유를 맘껏 누리고 제2의 새로운 길을 모색할 소중한 시간을 갖기 바란다. 아울러 오랜 기자생활을 하며 챙기지 못했을 가족들과 자신의 건강도 함께 챙기며 뜻있는 남은 인생의 여정을 준비하길 기원한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