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21세기 들어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를 ‘대공위(大空位)의 시대’라고 불렀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학자는 다른 분이나, 바우만을 통하여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요점은 정치 권력이 자본의 힘에 밀려 실종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과연 옳은 진단이다. 나라 안팎을 두루 살펴보아도 이렇다 할 정치적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독재자야 많이 있지만, 민주사회를 이끄는 동력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그 결과 정치 사회적인 문제가 미해결의 상태로 곳곳에 즐비하다. 이미 발등에 떨어진 기후위기의 해법은 뭔가. 국가 간의 무역 분쟁은 장차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4차 산업혁명의 와중에서 더욱 불거질 계층 간 및 세대 간 문제는 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역사야말로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양인의 정치 교과서
이런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 세종의 시대를 여러분과 함께 찬찬히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그의 역작 <<대변동>>(김영사, 2019)에서 강조했던바, 역사로부터 우리는 항상 “유용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세상사가 아무리 많이 바뀌어도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보편적인 원리는 있기 마련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창안했던 지도자를 손꼽자면 단연 세종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왕은 여러 분야에 걸쳐 당대 최고의 전문가를 기르는 데 성공했고, 지식의 창조적인 융합을 이룩해 당대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역사란 그대로 되풀이되는 법이 없다. 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위기와 기회는 몇 번이고 반복한다. 우리가 대변동의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반드시 역사에서만 구할 것은 아니지만, 역사야말로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양인의 정치 교과서란 사실을 기억하자.
'대공위의 시대'를 넘어 이미 '제3차 세계대전' 시작
하물며 지금 세계는 제3차 세계대전이란 화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상황이다. 유럽의 강대국은 지난해(2022)부터 사실상 ‘전시경제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미국과 중국은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인다. 일본은 국방비를 평소의 10배나 높이 책정하였는데, 이대로 몇 년만 지나면 실질적인 군사 강국으로 떠올라 단숨에 동아시아의 패권을 거머쥘 태세이다. 남북한의 긴장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제1차 세계대전이나 제2차 세계대전도 세상의 모든 나라가 한꺼번에 전쟁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디선가 국지전이 벌어졌고, 몇 년을 끌다가 확전 양상을 보였다. 내가 보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제3차 세계대전의 신호탄이었다.
인류사회는 확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유럽의 강대국인 독일과 프랑스 및 영국, 그리고 일본의 전투태세가 어느 정도 갖춰지기만 하면 큰 전쟁이 터질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본다. 그렇게 되기까지 과연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을까. 길어야 4~5년일 것이다. 그 시간 동안에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다져야 할 터인데, 과연 윤석열 정부가 그런 막중한 과제를 풀 수 있을까.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