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서평

노벨문학상 선정 소식이 서점가를 부산하게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 초반, 그때는 분명히 그러했다. 수상자의 이름과 작품이 발표되기만 하면 낯선 이름의 외국 작가가 쓴 소설 또는 시집이 금세 전국의 모든 서점에 좌악 깔렸다. 그리고는 몇 달 동안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좀 달라졌으나 노벨문학상이 갖는 특권적 지위는 여전하다. 연전에 선정위원회에 모종의 비위가 발각되어 시상이 없었던 해도 있었다. 그러나 인류사회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이 워낙 높은지라, 노벨문학상 자체는 하루아침에 폐지되고 말 정도로 가벼운 대상이 아닐 것이다.
노벨문학상이 제정된 것은 1901년이었다. 그로부터 지난 120여 년 동안 약 120명의 작가가 수상의 영광을 맛보았다. 우리로서는 그들의 작품 세계가 궁금하기도 하고 또, 그것이 그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일목요연하게 그 많은 수상 작가의 삶과 작품을 설명해준 책자가 없었다.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하여는 정보가 많은 편이나,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요려 있게 묶은 책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산책>>은 그런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26명의 노벨상 수상 작가를 골라,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폭이 넓으면서도 깊이 있는 해설을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이 책의 문장은 평이하다. 누구라도 지치지 않고 쉽게 즐길 수 있는 책이라,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사실이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분들이 모두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수상자의 대부분은 물론 소설가, 희곡 작가 또는 시인이었다. 그렇지만 드물게는 역사가와 철학자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것은 정말 특이한 일이었으나, 1953년에는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가지고 이 큰 상을 받았다. 처칠은 멋진 역사책을 기술한 공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셈이었다.
나는 역사가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노벨상을 수상한 역사가에 매우 주목하였다. 1902년 제2회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누린 독일 역사가 테오도르 몸젠이란 분을 알 것이다. 그는 러시아의 대문호인 레프 톨스토이와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 등을 제치고, 이 상을 따냈다. 독일 역사가 몸젠의 수상작은 <<로마사>>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산책>>에 따르면, 몸젠에게는 독특한 ‘역사적 네러티브’가 큰 장점이었다(최호근). 과연 내가 보아도 그 말은 옳은 판단인 것 같다. 문학작품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몸젠은 문학의 세계까지 깊이 파고드는 ‘역사적 네러티브’를 구사했다. 그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몸젠은 전 4권이나 되는 <<로마사>>. 본래는 5권으로 기획되었으나, 제4권은 끝내 완성되지 못하였다. 이 책에서 몸젠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역할에 생동감을 부여한 것으로 정평이 있다. 그 일절을 직접 읽어보자.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제)의 (통치기간의) 절반도 안 되는 5년 반 동안 로마 왕으로서 변속장치를 가동했다. 모두 합해야 채 15개월도 자기 제국의 수도에 머물지 못했던 (카이사르였으나) 일곱차례의 전쟁(을 치르는) 사이에 카이사르는(, 로마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세계의 운명을 정돈했다(=새로 정했다는 뜻).
문명과 야만 사이의 경계선을 확정하는 데서부터 수도의 도로에서 빗물 웅덩이를 제거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그때마다 그는 충분한 시간과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극장의 가격표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승자에게 즉석에서 만든 시문을 부여했다(=헌정했다는 뜻). 계획을 수행할 때(마다) 카이사르가 보여준 신속성과 확실성은 그가 (모든 문제를 사전에) 오랫동안 숙고했고, 모든 부분에서 구체적인 확인을 거쳤음을 입증한다. .... 이처럼 카이사르는 그 어떤 유한한 존재(=인간)도 할 수 없는 것을 전무후무하게 실행하고 창조했으며,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실행가(=실천가)와 창조자로서, 여러 민족의 기억 속에 (로마) 최초의 황제였을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의) 유일한 황제 카이사르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 (괄호 안은 문맥에 어울리게 보충해 넣은 것-백승종)
20세기 초, 한 사람의 역사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적어도 이만큼의 웅장한 서사를 펼쳐야 하였던 모양이다. 이것이 지금도 유효한 기준인지는 모르겠다. 여러분은 시를 가장 좋아하시는가. 아니면 소설, 희곡 또는 철학인가. 각자가 애호하는 분야와 시대는 다를 법도 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노벨문학상 작가가 어떤 삶, 어떤 가치관과 문장력의 주인공이었을지가 궁금하다면 <<노벨문학상 수상작 산책>>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마음 내키는대로 수상 작가를 골라내, 그의 삶과 문학을 관토하는 특징을 우리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