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18)

고 최숙현 선수
고 최숙현 선수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엄마는 딸의 문자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 닥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딸 전화 좀 받아라. 뭔 일이야. 통화라도 해야 안심을 하지.” 하고 딸을 애타게 찾았다. 그런데 딸이 보낸 그 문자가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 시각 딸은 숙소 옥상에서 뛰어내려 이 지옥같은 세상을 하직했다. 고(故) 최숙현 선수의 한 많았던 22년 짧은 생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비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최 선수는 일기장에 그렇게 썼다. 얼마나 심하게 맞았으면, 얼마나 심리적 압박이 심했으면 이런 표현을 썼을까.

고 최숙현 선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과 훈련할 때부터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고인은 진정서와 변호인의견서에도 “2016년 2월부터 폭행을 당하고, 폭언을 들었다”라고 했다. 고 최숙현 선수는 2017년 경주시청에 입단했다.

MBC 화면 캡쳐
MBC 화면 캡쳐

2017년 2월 뉴질랜드 전지훈련일지에도 최 선수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이 담겼다.

2월 8일 훈련일지에 “오늘은 불완전 휴식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이날마저 욕먹을 수 있구나! 대단하다!”라며 “욕을 밥보다 많이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다. 뇌도 같이”라고 썼다. 그리고 훈련일지 뒷면에는 “왜 살까. 죽을까. 뉴질랜드에서 죽으면 시체는 어째? 아니 만약에 못 죽으면?…”라고 붉은 글씨로 써놓았다. 이 대목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부분이 결코 아니다. 이때부터 벌써 최 선수는 죽음을 아주 가깝게 뒀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토가 나올 정도로 겁이 난다. 죽어버렸으면, 길 가다 누군가 차로 쳤으면, 자는데 강도가 들어 날 찔러줬으면 이 생각이 수백 번씩 머릿속에 맴돈다. 진짜 내가 정신병자인걸까…”

오죽 현실이 견디기 힘들면 이런 생각을 다 했겠는가.

“예전 뉴질랜드에서 썼던 일기를 읽어봤다. 나 정말 열심히 했구나.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네. 근데 다 헛수고가 됐구나. 사람은 사람이 적인 게 맞는데 그만 상처받고 싶다. 너무 힘이 들어서 버틸 수가 없다. 솔직히 너무 힘들다. 내가 너희들이 했던 행동 때문에 힘들어라는 말을 하면 너희는 너희의 잘못들을 인정할까? 그냥 나만 피해망상 심한 미친년으로 볼까. 나 조금은 나아졌다 생각했는데 하루하루 버티고 있어.”

“왜 이렇게 서러운 마음인지 그만 좀 괴롭히라고 소리치고 싶다. 체중도 그만 스트레스 받고 싶다. 그만 그만 그만 제발 그만”

“내가 니들한테 무슨 죄를 졌길래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거니. 나한테 정말 왜 그러니”

최 선수는 일기에 이렇게 쓰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또 다른 훈련일지에는 “수영 잘하고 있는데 ○○오빠가 지나갈 때마다 뒤에서 발을 잡아당겼다. 욕은 내가 다 먹고 자기가 나에게 욕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덕분에 ○○언니랑 완전히 모른척하게 됐다. 어디 말할 곳도 없고…”라는 나지막한 호소가 담겼다. ‘○○언니’는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경주시청 선배다.

앞서 공개한 녹취록에서는 고인이 감독, 팀 닥터라고 부르는 치료사에게 폭행과 폭언에 시달린 정황이 담겨있다. 대한체육회와 협회에 제출한 진정서 등에는 선배 2명의 가혹행위 정황도 찾을 수 있다.

고교 시절부터 가혹행위에 노출(아버지는 중2때부터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말한다)됐지만, 어느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최 선수였다. 마침내 최 선수는 지난 6월 26일 오전에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웠을 이 세상을 저버렸다. 그 때까지도 절박한 호소이거나 간곡한 요청이었을 고인의 목소리에 어느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안이하게 대처했거나 방치했다.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는 나몰라라 하고 손 놓고 있었다. 게다가 경주시조차 천하태평이었으니 최선수 아버지 어머니는 최선수가 세상을 뜨기 하루 전 국가인권위에까지 진정을 하게 됐다.

녹취록에는 충격적인 대목도 있다. 최 선수 폭행을 이어가던 팀 닥터에게 이를 지켜보던 감독이 “선생님 한 잔 하시고, 제가 콩비지찌개 끓였습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둘은 음주를 해가며 최 선수의 뺨을 20회 이상 때리고, 가슴과 배를 발로 차고, 머리를 벽에 부딪치게 밀치는 등의 폭행을 계속했다.

감독은 “죽을래?”라는 말과 함께 “푸닥거리 한 번 할까?”라며 위협했고, 최 선수는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아닙니다”라고 연이어 답하기도 했다. 트라이애슬론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를 지낸 최 선수는 소속팀 감독에게 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지도를 받아왔지만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 가혹행위 등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기도 했다.

YTN 화면 캡쳐
YTN 화면 캡쳐

“감독, 팀 닥터의 폭행, 언어폭행, 학대도 있었고 (감독) 모르게 빵을 사먹다 들켜서 선수 3명한테 빵을 20만원어치 사온 다음 먹고 토한 뒤에도 그걸 다 먹어야 재우는 가혹행위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 선수의 아버지와 동료선수의 증언이다. 치료를 이유로 가슴과 허벅지를 만진 팀닥터의 성추행에 수치심도 느꼈다고 동료선수는 증언했다. 팀 닥터는 심지어 “심리치료를 극한상황으로 몰고 가 (숙현이를) 자살하게 만들겠다”고도 했다고 동료선수는 국회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주장 선수가 선수들을 이간질하고 폭행과 폭언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줘 지옥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숙현이를 정신병자라고 말하며 정신병자 취급했다.” “주장 선수가 옥상으로 끌고가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더러 뛰어 내리라고 협박하며 죽을 거면 혼자 죽어라 라고 했다.” 동료선수의 회견 내용이다.

최 선수의 죽음 앞에 버젓이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낯 두껍고 뻔뻔하기 짝이 없다. 그 추악한 모습들은 참으로 눈뜨고 봐주기 어렵다. 의뭉과 내숭으로 치장한 교활한 자들, 일부러 몽매한 척 아둔한 척 하는 간교한 자들, 제 살길만 찾자고 숨어버린 약삭빠른 자들, 갖가지 가면을 쓴 채 최 선수를 억누르고 짓밟아온 이들을 과연 어찌해야 하는가.

죄를 밝혀 처벌한다고? 비슷한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그래 좋다. 처벌과 재발 방지책 마련도 필요하겠지. 하지만 이미 숨을 멈춘 스물 두 살 꽃다운 젊음은 어찌할 것인가. 궁지로 내몰려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최숙현 선수. 억울하고 숨 막히게 하루하루를 버텨오다 끝내 목숨줄을 놔버린 절망감과 아득함. 어느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의 마지막 끄나풀은 여러 기관에 낸 고소와 진정이었다. 그것이 곧 ‘왜 나를 가만 두지 않는 거야.’ ‘숨 막힐 것 같아 못 견디겠어. 나를 숨 쉬게 해줘.’라는 절규였다. 하지만 그 마지막 애원조차도 들어주지 않는 것이 ‘이놈의 세상’이다. 해서 그는 가엾게도, 불쌍하게도 그만 이 땅을 버렸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다 그런 것인가. 참 야박하고 몰인정한 세상인심이다. 최 선수가 이처럼 삭막한 이 땅에 어디 정붙일 곳이나 있었겠는가.

“주무장관으로서 철저한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겠다.” “철저히 조사해서 재발을 막겠다.” 국회에 나온 문체부 장관, 대한체육회장의 말이다. 이런 투의 말은 이제 고인의 억울한 목숨을 생각하면 아예 안 하는 것이 낫다. 이 따위 기계적이고 상투적인 어법이 어디 있는가. 그런 식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일처리 태도가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최 선수의 도움을 요청받은 공공기관만 해도 몇 군데인가. 경찰, 국가인권위, 대한체육회, 경주시, 대한철인3종협회, 이들은 지금껏 뭐하다 이제야 난리법석인가. 그 기관 단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진지하고 성의 있게 문제를 풀려고 해보기나 했는가.

“운동선수가 안 맞고 하는 건 한 개도 없습니다. 사고 안 날 땐 관계가 없는데 사고 나면 문제가 되는 거예요.”

경주시체육회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2월 팀 내 가혹행위가 있다는 진정이 경주시에 접수됐고 최 선수 측의 피해 호소가 있었지만, 경주시체육회는 최 선수가 이 세상을 뜬 뒤에야 감독에 대해 직무를 정지했다.

문제의 이런 발언이 체육회 내에 팽배한 정서라면 제2, 제3의 최숙현 선수는 언제든 또다시 생길 수 있다.

못되고 뒤틀린 심보의 인간 몇이서 젊은 인재를 사지로 몰았다. 그것도 국가대표 출신의 유망한 선수였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가장 먼저 최 선수가 일기장에서 너희라고 지칭한 팀닥터(알고 보니 가짜였다), 감독, 선배들은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거기에다 나는 관계없다고 방관한 우리 모두에게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이런 안타깝고 가슴 아픈 비극을 막지 못한 연대책임이다. 때문에 최 선수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가슴 아파해야할 사람들은 가족들만이 아니다. 세상인심을 이 지경으로 만든 우리들 모두가 진정으로 슬퍼하고 자책해야 한다.

삼가 고 최숙현 선수의 명복을 빈다. 부디 그의 영혼이 슬픔과 노여움을 거두고 안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강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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