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지구온난화와 이산화탄소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날이면 날마다 우리는 미세먼지를 걱정하고, 오염된 지하수와 농약 묻은 먹을거리를 두려워한다. 산업화가 고도화될수록 실업률은 더욱 높아가고, 계층 간의 소득 차이도 갈수록 벌어진다.
이제 새로운 우주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외침도 여러 곳에서 들린다. 인간 중심의 사고는 오래전에 한계를 드러낸 상태다. 이대로라면 인간은 결국 지구의 파괴자로 전락하고 말 가능성이 크다.
'중용', 위기의 시대마다 늘 새롭게 해석
'중용'에 따르면, 하늘과 땅, 만물과 사람은 하나로 연결된 존재다. 그런데 우주만물에는 어디나 불가분의 도리가 있다. 인간이 이 도리를 깨쳐 정성껏 실천에 옮기면 천지만물이 제자리를 되찾고, 천지와 함께 평화를 누리며 사물을 온전히 기를 수 있다. '중용'은 그렇게 주장한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진정한 인간이 그립지 않은가.
'중용'이 선언적으로 명시한 사고방식을 내면화한 이가, 20세기 후반의 한국 사회에도 존재하기는 했다. 무위당 장일순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한 알의 곡식에 우주가 담겨 있다고 천명했다. 그의 길은 최시형의 발걸음을 따른 것이었다. 노자와 공자, 예수와 부처의 길도 그는 아울러 실천하려 했다고 생각된다.
장일순은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하나로 융합한 것,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사상을 길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장일순이 서슴없이 나아간 그 길은, 일찍이 유영모와 함석헌이 개척한 인생의 새 길과도 별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중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사람들이었다. 이로써 평화와 생명 운동이 출발할 전기를 마련했다.
지난 2천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하게 다가온다. '중용'은 위기의 시대마다 늘 새롭게 해석되었다는 점이다. 21세기라고 무엇이 크게 다를까. 새 시대의 중용 해석은 소수의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모든 이의 평화를 위한 헌장을 되새기는 작업이어야겠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