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박정환의 현장’ 책 출간한 박정환 CBS 기자
CBS 박정환 기자가 기자 생활 10년을 되돌아보며 지난 9월 <박정환의 현장: 다시, 주사위를 던지며>란 책을 출간했다. ‘출판공동체 편않’에서 기획한 언론·출판인 에세이 시리즈 중 하나인 <박정환의 현장>은 박 기자가 세월호, 탄핵 정국, 조국 사태 등 현장을 취재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 출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지난 23일 박 기자가 현재 출입하는 서울 경찰청 내의 커피숍에서 만나 책 이야기와 함께 언론 이슈에 대해 견해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박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기자의 역할이 있고 정치인의 역할이 있지만 기자의 역할이 더 좋다고 생각”

- 지난 9월 기자 생활을 담은 <박정환의 현장>이란 에세이집을 출간하셨잖아요. 첫 책인 것 같은데 소회가 어때요?
“제가 기자 생활을 2012년부터 시작했는데 어느덧 10년이 됐어요. 그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더라고요. 크게 보자면 세월호 참사도 있었고 대통령 탄핵도 있었고요, 마침 10년 차 정도 됐을 때 출판사에서 제안이 왔어요. 그래서 저로서도 지난 10년의 기록을 남기는 게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제가 지금 경찰팀 부팀장으로 있어서 사건팀에 있을 때는 후배들을 계속 가르치거든요. 그래서 후배들한테도 ‘내가 10년 동안 버텨냈는데 지금 힘들더라도 나 같은 기자도 있으니까 좀만 버텨라’라고 들려주고 싶은 말들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도 그렇고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죠. 제 기자 생활도 돌아볼 수 있게 됐고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책 쓰면서 많이 또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 지각 인생이라고 쓰셨더라고요. 지각을 많이 하셨나 봐요?
“저는 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진짜 지각을 많이 했어요. 멋 부리는 거 좋아해서 학교 다닐 때는 맨날 머리 만지느라고 맨날 지각했거든요. 그것뿐만 아니라 진로를 정하는 것도 사실 고등학교 때 이과로 시작했다가 대학교도 공과대학으로 진학했어요. 기자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사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생각을 했던 거고 사실 남들이 생각하기에 그게 지각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항상 뭔가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게 조금씩 늦었던 것 같아요.”
-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도 하셨던데 학보사 기자 생활은 어땠나요?
“저는 디지털 미디어 학과로 전과하고 나서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근데 뭘 하든 약간 갈증이 있더라고요. 취재해 보고 기사도 써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 학보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때는 제가 이미 군대 다녀오고 나이가 좀 있을 때였거든요. 학보사 선배들이 저보다 나이가 다 어리고 심지어 편집국장도 저보다 두 학번이 낮은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저한테 선후배 떠나서 다 정환 씨라고 불렀어요.
제가 그동안 언어 영역도 잘하고 일기도 많이 쓰고 나름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기사 쓰는 건 정말 다르더라고요. 책에도 썼지만 출근하고 나서 제가 처음 맡았던 기사 원고가 ‘파발마’라는 짧은 풍자 코너인데 패러디 하면서 사회 현상을 빗대서 지적하는 건데 그거 하나 마감하는 데 밤을 새웠어요. 결국 그게 신문에도 안 들어가요. 그래서 그때 정말 기사 쓰는 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생각을 많이 했죠.”
- 책에 보니 어릴 적 꿈이 대통령이었다고 나오더라고요. 그럼 정치권에 대한 생각이 있나요?
“예전 고등학교 때 사실 정말 쓸 게 없어서 그렇게 장래 희망을 쓴 건 맞는데 지금은 사실 정치권에 간다는 생각 전혀 없어요. 국회를 출입하면서 많이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인들 취재하며 근접에서 보잖아요. 근데 기자의 역할이 있고 정치인의 역할이 있는 거 같아요. 지금은 기자의 역할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그런 점이 있어서 정치권은 크게 생각 없어요.”
- <일요신문> 첫 르포 기사로 남성 도우미에 대한 것이던데 관련 내용 재밌어요. 위장 취재인 거잖아요. 그렇게 하기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제가 주간지 일요신문 있을 때 썼던 기사인데 어느 일간지 보는데 짤막한 기사가 있었어요. 그 기사가 뭐냐면 아주머니들이 명문대 앞을 정문 앞을 서성이면서 잘생긴 학생이 나오면 고액의 아르바이트 제안한다는 거예요. 근데 알고 보니까 그게 남자 노래방 도우미였더라는 기사였어요. 근데 그 짤막한 기사를 보고 내가 직접 일을 해보고 기사 쓰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이 기사를 쓴 기자한테 전화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학교가 혹시 어디냐고 물으니 전화 받는 기자 입장에서 너무 황당하잖아요. 왜 묻냐고 하더라고요, 사정해서 겨우 그 학교를 알아내고 그 학교 직접 가서 저 섭외하라고 서성였어요. 근데 아무도 안 오는 거예요.”
- 스스로 외모가 괜찮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 섭외가 안 들어오니 기분 상했겠네요(웃음).
“기분 안 좋았죠. 그래서 그걸 인정하지 못해서 몇 시간 동안 학교 정문 앞을 서성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직접 지원하려고 바로 PC방 가서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검색하니까 실제로 뽑는 데가 몇 군데 있어서 전화했어요. 어디로 오라고 해요. 가서 전화하니 그 앞에 있는 스타렉스 조수석에 타래요. 조수석에 타면 실장이 운전석에 앉아 있어서 그때부터 면접이 시작되는 거예요. 근데 제가 면접을 한두 군데 떨어졌어요.
제가 지금은 라식 수술했는데 그때는 안경 쓰고 모범생 콘셉트로 하고 학자금 대출과 또 집안 사정이 어렵고 급전이 필요해서 일하는 콘셉트로 반드시 내 일을 해야 한다고 실장한테 매달렸는데 실장은 제가 안 팔릴 얼굴이라고 해요. 스타렉스에서 면접 보잖아요. 뒤에 직원들이 타고 내려요. 엄청 화려한 거예요. 저도 절치부심 끝에 안 되겠다 싶어서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고 가발도 맞췄어요. 그래서 겨우 면접에 붙은 거예요. 그래서 일을 시작하는데 거기 실장이 여기 출근하면 머리랑 메이크업 미용실 가서 해야 한 대요, 근데 아차 싶은 거예요. 왜냐하면 저 가발인데 이거 취재하는 거 걸리겠다 해서 오늘 제가 사실 돈도 없고 좀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조금 어려울 것 같다고 했죠. 실장이 알아서 하라고 대신 너는 초이스 안 될 거래요. 그때 밤 10시부터 업소를 스타렉스 타고 거의 서른 군데 돌았어요. 하지만 초이스가 단 한 번도 안 되는 거예요.”
- 그럼 어떻게 했어요?
“선택받고 했으면 더 기사가 풍부할 수 있을 텐데 못 받았잖아요. 그래서 기사 쓸 수 있을지 걱정도 됐죠. 다만 서른 군데 다니면서 그 차에 탔던 다른 직원들과 얘기도 하고 그 직원들끼리 얘기하는 것도 있고 술집에 가서 어떤 사람들이 이걸 이용하는지 부분 위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고요. 또 한 가지는 이렇게 꾸몄는데 한 번도 안 되는구나죠(웃음). 실제로 거기에 있던 직원들이 다 잘생기고 약간 연예인 지망생도 있고 연극 영화과 학생들 대학생들 그리고 서로 막 성형 얘기도 많이 해요. 그런 거 보면 사실 돈에 눈이 멀어서 그런 일 한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 그럼 하루하고 안 한 거예요? 주위에서 이야기 들었더라도 직접 들어가서 경험하는 건 다르잖아요.
“물론 그런 생각도 있었는데 다시 한다고 해서 제가 선택받을 자신감이 사실 없었고 이건 성형하지 않고서는 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 또 그 일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빨리 기사를 써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팽목항 현장에 갔을 때 말 그대로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했죠”

- 기사 나가고 그쪽에서 연락받은 건 없나요?
“일단 업소 쪽에서는 연락은 안 왔어요. 그래서 왜 반응이 안 올까 생각했는데 일단은 밤에 일하느라고 신문을 잘 못 보나라는 생각도 있었고 또 한 가지는 굳이 연락해서 좋을 게 뭐 있나죠. 다만 <용감한 기자들>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그 기사를 보고 되게 인상 깊어서 연락했다. 사회부 기자 특집이 있는데 그 얘기를 좀 해줄 수가 있느냐’라고 해서 고민 끝에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죠.”
- 세월호 때 취재 이야기도 책에 나오던데 세월호는 국민들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지만 언론인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죠. 기자님은 당시 팽목항에서 취재하셨던데 어떠셨어요?
“그때 일요신문 사회부였어요. 사고가 터지니까 바로 팽목항으로 내려가라고 부장이 지시하셔서 그때 겨우겨우 팽목항에 도착했는데 이미 밤이 돼 있더라고요. 비도 내리고 그 천막에 부모님 계시고 하는데 정말 제가 그때 기자 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거든요. 이게 현실 같지 않았어요. 그때 현장에 갔을 때 말 그대로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했죠.”
- 당시 한국 언론의 민낯을 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언론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때 기자란 직업에 회의를 느낀 기자들이 떠나기도 했죠, 기자님은 그런 생각 안 들었나요?
“실제로 제가 되게 친한 기자가 세월호 사태 이후 더 이상 나는 언론계 있기 싫다고 그만두기도 했죠. 그런데 저 같은 경우 사고도 사고지만 사고 이후에도 굉장히 바빴어요. 그때 한창 세월호 실소유주가 누구냐부터 시작해서 사고 이후의 원인 규명 그리고 후속 보도 때문에 그거를 따라잡느라고 그만둔다는 생각도 못 했던 것 같아요.”
- CBS로 이직해서 2019년 조국 사태가 났을 당시 정치부로 국회 출입하셨잖아요. 많은 압박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때 저는 자유한국당을 출입했었어요. 사실 CBS가 진보 성향이라는 얘기도 많이 듣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유한국당이 CBS라는 매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근데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때는 저희도 회사 나름대로 TF도 꾸려서 굉장히 취재를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조국 장관 의혹에 대해서 많이 검증했죠,
조국 장관이 기자 간담회 하러 국회에 온 적 있었잖아요. 그때 제가 차출이 된 거예요. 제가 차출돼서 가서 질문을 제가 기억하기로는 한 세 번째인가 겨우겨우 손들고 했는데 질문을 하고 나서 방송 생중계에 잡히니까 친척들이나 아는 사람들 다 연락이 오더라고요. 다른 건 질문한 내용과 사진들이 인터넷에 박제되어서 쭈욱 리스트업됐죠. 그래서 댓글 상으로도 욕도 많이 받았는데 사실 그게 압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다만 기자가 질문을 해서 리스트업이 되고 박제되는 시기가 왔다는 생각에 약간 섬뜩한 느낌도 좀 들긴 했었어요.”
- 기레기라는 말이 세월호 때 대중화됐잖아요. 세월호 때 기레기라는 말이 어느 정도 공감이 됐어요. 기사에 문제 많았으니까요. 근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기레기의 의미가 문제 있는 기사 쓴 기자를 칭하는 게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르면 기레기라고 하는 것 같거든요.
“정확히 보신 것 같은데 세월호 때는 기사를 두고 팩트에 어긋나거나 무리한 기사를 두고 기레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자기와 생각이 안 맞으면 기레기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현재 사회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언론 입장에서도 그 현상에 대해서 부인할 수는 없고 그 현상이 공고화됐지만, 나중에는 좀 더 서로 간의 이해를 위해서 언론이 역할을 해야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요.”
“기자들도 일할 때 슬리퍼...근데 그런 점으로 트집을 잡는 건 본질에 어긋난다고 봐”
- 지금 언론이 이슈 중심에 있죠. 정권과 특정 언론사의 갈등이 있고 또 언론사 개별적으로도 있는데 현직 기자로서 이 상황 어떻게 보세요?
“저는 이런 경우를 사실 거의 보지 못했어요.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고 해서 전용기를 태우지 못하게 하고 슬리퍼를 신었다고 해서 그게 예의가 없다는 건 이해 안 돼요. 물론 정식 인터뷰에서는 예의를 갖춰야겠죠. 근데 거기는 도어스테핑 자리고 기자들도 일할 때 슬리퍼 신거든요. 근데 그런 점으로 트집을 잡는 건 본질에 어긋난다고 보고요. 자기의 입맛에 안 맞는다고 취재 거부 하거나 전용기를 안 태우는 시각 자체가 나타나는 게 굉장히 우려스럽고 이렇게 하면 안 되죠.”
- 기자는 묻는 게 업이잖아요. 묻는 게 악의적이라서 묻지 말라고 하는 건 매일 밥 먹는데 밥 먹는 게 악의적으로 보여서 밥 먹지 말라는 거와 같은 거 같은데.
“그러니까 이게 현 정부의 그런 인식 자체가 굉장히 문제죠. 이게 기자 개인이 물어보고 회사 차원에서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시민을 대표해서 국민이 궁금한 점 물어보는데 그런 거에 대해서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안 받는다? 이거는 정말 상식에 어긋나는 거죠.
이번에 논란이 됐던 기자가 항의하는 동영상이 굉장히 많이 있잖아요. 그 영상 댓글 보니 하나같이 다 응원하더라고요. 그 영상을 제가 다른 지인들한테 받으면서 묻더라고요. 뭐냐면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다른 기자들은 왜 가만히 있느냐는 거예요. 그 질문에 대답을 못 하겠더라고요. 시민들이 원하는 건 언론이 정권 입맛에 따라 고분고분하게 취재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점을 대놓고 지적하고 속 시원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언론의 역할을 원하는 거거든요. 그런 점이 있어서 이 정부가 좀 더 언론 철학이나 언론관에 대해 고민을 하면 좋겠어요.”
- 책으로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일단 필드에 같이 뛰고 있는 현직 기자들에겐 저같이 약간 평범하고 하루하루 기사 쓴 기자도 10년을 버텼으니 앞으로 다 같이 잘 버텨보자는 거예요. 그리고 후배들에겐 나는 이렇게 걸어왔는데 나보다 더 좋은 취재 방식이 있고 생각이 있으면 한번 해봐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기자 지망생들에겐 기자가 되는 길이 다양한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책을 읽으면서 기자가 이런 일을 하고 이렇게 하면 기자가 되겠다는 걸 조금 알 수 있는 참고서 정도로 읽어주시면 되게 감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영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