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선거보도의 편향, 무엇이 문제?(11)

미디어의 여론 조작력은 한 나라의 정치 체제가 정보 유통의 자유를 어느 정도 허용하고 여론 형성 과정에서 반대 과정을 얼마나 용인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일방적 메시지만을 하향적으로 전달하는 정치 체제에서는 미디어의 여론 조작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특히 미디어가 존립하는 형태, 즉 자유 경쟁적 상황에 있느냐, 당이나 정부에 예속되어 엄격한 통제를 받느냐에 따라 미디어의 여론 조작력은 달라진다. 이 같은 여론 조작은 선거의 본질은 물론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기도 한다. <특별 기획, 선거보도의 편향, 무엇이 문제?> 열한 번째 편으로 '여론 조작 저널리즘(manipulation of public opinion’s journalism)'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지난 기획 기사들] 

⑩ 후보들 정책·공약, 정치적 특성보다 흥미 위주 곁가지만 보도...경마 저널리즘 '함정' 

⑨ 선거 과정 공정성 ·중립성 해칠 수 있는 지나친 '해석적 저널리즘' 

⑧ '딱 걸렸어'...가차 저널리즘, 독자·시청자 세뇌, 개인에 심각한 영향 

⑦ 언론사와 이념 성향·지향점 다르면 벼랑 끝으로...'공격 저널리즘' 

⑥ 예측할 수 없는 선거 결과, 비정상적 사회구조 낳게 하는 '선전 저널리즘'  

⑤ 독점·담합 ·왜곡...사라지지 않는 '패거리 저널리즘' 

④ '망국병' 부추기는 '지역주의 저널리즘' 

③ 민주주의 위협하는 '정파성 저널리즘', 선거철 더욱 '기승' 

② '정치 냉소주의' 부추기는 '틀 짓기 저널리즘' 경계해야 

① 미디어 선거보도의 잘못된 관행과 편파적 보도 원인  


미디어의 여론 조작이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지역에서 언론들이 실시하는 여론조사가 여론 조작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전북지역에서는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 이전을 통해 여론 조작이 일고 있다는 제보가 이어지면서 사법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지난 2010년과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둔 ‘유선전화 착신전환’ 논란의 악몽을 떠오르게 했다. 또 농촌 마을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휴대 전화기를 돈으로 매수해서 여론조사에 임하는 여론 조작의 방법도 등장했다. 

휴대전화기(자료사진)
휴대전화기(자료사진)

 

흔히 '의견이나 여론의 형성은 어떤 사실이나 문제를 개인이 지각하면서 비롯된다'고 많은 학자들은 주장해왔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정치적·경제적 생활환경이 확장된 사회에서는 주위 환경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적 의견이나 여론은 어쩔 수 없이 미디어가 보도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미디어가 수로화한 방향을 따라 형성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이 복잡할수록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그 사건을 분해하여 재구성해야 한다. 보도 기사의 취사선택과 보도 과정의 재구성 및 단순화도 결국 소극적 조작이 된다는 것이다. 미디어는 사건을 수용자의 기호에 맞도록 단순화할 때 사용하는 일정한 틀을 가지고 있다. 가령 '미디어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을 사용하여 편견을 만든다"는 주장은 바로 그 같은 지적을 뒷받침해준다.

미디어가 만든 스테레오타입은 수용자의 눈에 끼워진 색안경과 같아서 사건을 왜곡되게 인지하도록 할 뿐 아니라, 수용자의 준거 기준(frame of reference)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미디어의 조작에는 의도적 조작과 비의도적 조작이 있을 수 있다. 

미디어, 각종 조작의 불가결한 수단·속성 

의도적 조작이란 선전 · 홍보와 같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조작하는 경우를 말하고 비의도적 조작은 뚜렷한 목적 없이 이루어지는 조작이다. 그러나 비의도적 조작도 조작임에는 틀림없다. 이와 관련해 배런(Barron)은 "언론의 자유가 진정한 여론의 형성을 보장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론 형성의 일차적 요건으로 '매스미디어의 접근 가능성(accessibility)'을 들었다. 여론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었다고 해도 개인의 의견이 다수의 타인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면 여론으로 발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대인 접촉을 통해 자기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다수에게 개인의 의견을 전달하려면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주MBC 2022년 4월 19일 뉴스 화면 캡처
전주MBC 2022년 4월 19일 뉴스 화면 캡처

그런가하면 밀스(Mills)는 "조작(manipulation)이란 숨겨진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비인격적인 권력의 행사이며,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인간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명백히 알지 못한 혼미한 상태에서 타인의 의견에 따라 행동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중 또는 그들의 다수가 자의적 결정에 따라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도록 만드는 심리적 착취의 체계를 조작이라고 했다. 

위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미디어는 각종 조작의 불가결한 수단이며, 미디어의 한 속성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른다. 

의사 사건(pseudo-event)과 여론 조작 

대중 심리의 메커니즘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적 방법의 도입을 주장한 라스웰(Lasswell)은 "대중의 무의식적인 요구가 상징 조작(symbol manipulation)을 통해 충족·통제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대중과 조작의 불가분리성을 설명한 것인데, 이때 대중조작의 일차적 수단이 매스미디어가 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여론 조작의 형태는 그 나라의 정치체제, 미디어와 정치권력의 관계, 국민의 경제적 생활수준과 교육수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리프먼(W. Lippmann)은 일찌기 그의 저서 '여론(public opinion)'에서 의사환경(pseudo-environment) 또는 의사 사건(pseudo-event)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하면서 매스미디어의 조작성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미디어를 정치권력이 장악하지 않고 개인으로 하여금 소유하게 하고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정보를 통제하지 않으면 이를 수용하는 공중은 자유스러운 토론 과정을 거쳐 옳은 여론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허구의 전제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준 것이다. 

정치권력과 언론이 상호 감시하는 대립적 관계에 있을 때 매스미디어를 통해 형성되는 여론은 권력의 독주를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언론이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하여 독자적 이해관계를 갖게 되면서부터 권력 감시의 기능이 약화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의사 환경 또는 의사 사건을 통한 조작의 폭은 더욱 넓어졌다. 

다니엘 부어스틴(D. Boorstin)은 “현대인은 매스미디어의 최면술에 걸려 정치의 본질(entity)보다 정치의 외형적 이미지(image)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경우 의사 사건의 중심인물이 되는 파워 엘리트는 좋은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교묘히 매스미디어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의사 사건을 통해 이미지를 조작해 내는 매스미디어의 접근이 가능한 사람만이 파워 엘리트가 된다는 것이다. 

언론들, 후보가 연출해 내는 의사 사건에 크게 의존

각종 여론조사 결과(자료사진)
각종 여론조사 결과(자료사진)

오늘날 매스미디어의 의사 사건에 대한 의존은 쉽게 줄지 않고 있다. 즉, 언론에 보도되기 위한 PR 활동이 극심해질수록 언론의 의사사건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선거 캠페인 보도는 각 후보가 연출해 내는 의사 사건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운동도 의사 사건에 의존하지 않고선 언론에 보도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의사 사건은 ‘예측성’의 장점이 있어서 더욱 뉴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의사 사건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고 재미있는 이미지로 보여 주기 때문에 대중에게 어필한다. 날이 갈수록 늘고 있는 미디어 이벤트도 일종의 의사 사건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기자들에게 딜레마적 상황을 야기하고 있다.

즉, 취재기자들은 자신이 의사 사건에 지배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감 시간의 압박 등과 같이 자신이 처해 있는 여러 제약 조건 때문에 의사 사건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의사 사건의 연출이 물적 조건이 유리하고 어느 정도 PR의 노하우가 축적돼 있는 취재원들에게 더욱 용이하다는 데에 있다. 

미디어를 장악하거나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권력 엘리트들은 그들의 현재적 지위를 위협하는 메시지를 유통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메시지를 더욱 조작하려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론이란 집단적 의견을 전제하기 때문에 집단적 의견이 창출되려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관심을 표명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공공의 문제가 있어야 하며, 이 경우 특정한 문제를 공공의 중요한 문제로 클로즈업시켜 그 문제를 규정하고 정의 내리는 역할을 미디어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하향적으로 전달하는 정치 체제, 미디어 여론 조작력 상대적으로 높아 

그런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미디어를 통한 조작(manipulation)은 있었다. 정치적 체제와 수용자의 특성 그리고 미디어의 형태가 조작 가능성의 정도와 그 효과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일체의 정보를 통제하고 검열하는 정치 체제하에서의 조작 가능성과 반대자의 의견이 자유스럽게 개진되는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의 조작 가능성은 다르지만, 미디어를 쉽게 조작할 수 있는 나라에서 미디어 효과와 반대적 과정(adversary process)이 허용된 나라의 매스미디어 효과가 같을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미디어의 여론 조작 능력은 그 나라의 정치체제, 미디어 형태, 여론 조작의 대상이 되는 문제, 조작의 지속성, 조작된 메시지를 수용하는 수용자의 특성 등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미디어의 여론 조작력은 한 나라의 정치 체제가 정보 유통의 자유를 어느 정도 허용하고 여론 형성 과정에서 반대 과정을 얼마나 용인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일방적 메시지만을 하향적으로 전달하는 정치 체제하에서는 미디어의 여론 조작력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또한 미디어가 존립하는 형태, 즉 자유경쟁 상황에 있느냐, 당이나 정부에 예속되어 엄격한 통제를 받느냐에 따라 미디어의 여론 조작력은 달라지는데, 정치 엘리트가 모든 미디어를 장악하고 권력 상층부의 결정을 선전하는 데 합일된 노력(concerted effort)을 경주하는 한편 대인 커뮤니케이션의 조직과 채널이 모두 이를 보강할 때 미디어의 여론 조작력은 상승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여론 조작을 위해 어떤 문제와 방법을 택하느냐에 따라 미디어의 조작력은 달라진다. 여론 조작의 목표가 하나의 정치적 이념으로 귀착되는 상황에서 미디어의 여론 조작력과 사안별로 그 목표가 달라지는 상황에서의 조작력은 다르다. 그러나 정치권력 엘리트들이 대중을 조작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조작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파생되는 도덕적·윤리적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너무나 잘 알려져 왔다. 

여론조사가 여론 조작이란 소릴 듣는 이유 

선거에서 언론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로는 선거보도, TV 토론, 정치 광고와 함께 여론조사를 꼽을 수 있다. 여론조사는 본질적으로 한계를 갖고 있고, 때로는 여론조사가 선거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함에 따라 언론사의 권위를 실추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여론조사에 매우 지대한 관심을 잃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선거 때만 되면 언론사는 물론이고 모든 유권자들이 현재 어느 후보가 앞서고 있으며, 과연 최종적으로 어느 후보가 승리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인 궁금증을 여론조사보다 더 정확하게 풀어 줄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언론은 여론조사에 매달리는 것이다. 

선거에서 여론조사는 유권자들의 후보 선정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유권자들은 여론조사의 정보를 통해 좀 더 유식한 유권자(informed voter)가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될 때 민주주의의 건강성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 후보들이 난립할 때 그중에서 경쟁력 있는 소수의 후보들을 압축해 주는 여과 기능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여론조사는 유권자들에게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와 가능성이 없는 후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유권자들의 후보 선택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문제점들을 노정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여론조사의 정확성에 관한 논란이다. 여론조사는 자칫 정치 과정 자체를 방해할 수 있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여론조사가 활발할수록 부정확한 조사가 양산되게 되며,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같은 시점에 실시한 여론조사들은 그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올 수 있는데, 이는 유권자들의 판단 준거점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 

여론조사를 이용해 뉴스를 창조하는 것인지, 단순히 보도하는 것인지...'논란'  

이와 관련하여 지난 1991년 캐나다 정부는 ‘캐나다에서 선거 여론조사와 언론의 역할’에 관한 보고서를 출간했다. 이 보고서를 만든 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에서 제기된 여론조사의 문제를 보면, ①권위적 표현 때문에 여론조사는 선거에 과다한 영향을 미친다, ②여론조사는 실수로 잘못될 수 있고 정교한 조작도 가능하다, ③여론조사는 적절한 질적 수준을 유지하지 않고서도 발표된다는 점 등이다. 이 위원회는 “이러한 강력한 정보원인 여론조사를 준비하고 보도하는 데 높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운동 기간에 특정의 요구를 충족시키도록 언론에 의무화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투표 전날 정오부터 투표가 끝날 때까지 여론조사의 공표를 금지했다. 그러다 신문사들이 대법원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3년 만인 지난 1998년 대법원이 여론조사 보도 금지는 위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캐나다 대법원은 “여론조사 보도 금지는 캐나다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며,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며 “여론조사의 보도 금지는 정보의 광고자가 아닌 보고자의 역할을 하는 언론이 정부에 의해 억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판결은 캐나다 유권자는 어느 정도의 성숙함과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내려진 것이다. 

이보다 앞서 브래디와 오렌(Brady & Orren)은 "본질적으로 여론조사의 윤리와 저널리즘의 윤리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는 잠재적 오류를 충분히 감안하여 많은 증거를 가지고서 결론을 내리는 반면에 저널리즘은 두드러진 사실에만 관심을 두고 보도하기 때문에 이들 간에는 불협화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바로 여기에서 여론조사의 근본적인 문제가 시작된다.

미디어가 선거 여론조사에 관심이 많고 또 이를 매우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은 보편적인 추세다. 그러다 보니 미디어가 여론조사를 이용하여 뉴스를 창조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치 있는 뉴스거리를 단순히 보도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여론조사가 미디어의 게임식, 경마식 보도를 더욱 강화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여론조사 자체가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논쟁도 뜨겁다. 

미디어가 선거 여론조사에 얼마만한 관심을 두고 있는지는 지난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ABC가 뉴스 시간의 절반을 선거 여론조사에 할애했던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ABC는 1992년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이 같은 보도를 반복했다. 그러면 왜 언론은 여론조사를 크게 보도하는가?

이에 대해 앨거(Alger)는 "선거 여론조사가 뉴스 가치가 높은 이유도 있지만, 언론사가 여론조사에 상당한 돈을 지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종의 본전을 뽑으려는 심리가 발동한 것인데, 특히 규모가 작은 지방 방송사와 신문사가 더 그렇다고 한다. 미디어의 선거 여론조사는 유권자의 이슈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정책 선택 등에 초점을 두기도 하지만, 주로 경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래드와 벤슨(Ladd & Benson)에 따르면 "1980년, 1984년, 1988년 선거 여론조사 질문의 60%가 경마식 보도와 관련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사이버 여론 조작 

자료사진
자료사진

오래전부터 많은 정치인들이나 학자, 언론인들은 선거 여론조사 보도가 투표 행위에 미치는 효과, 즉 우세자 편승 효과(bandwagon effect) 또는 열세자 동정 효과(underdog effect)에 대해 관심을 많이 기울여 왔다. 

우세자 편승 효과는 대세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Harvey Leibenstein)이 1950년에 발표한 ‘네트워크 효과’의 일종으로 서부 개척 시대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역마차를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던 현상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기업에서는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하고, 정치권에서는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는 선동 전략으로 활용한다. ‘될 사람 밀어 주자’는 전략인 셈이다. 

반대로 열세자 동정효과는 투견 경기에서 밑에 깔린 개를 말한다. 게임이나 시합에서 전력이 뒤처지는 사람을 언더독(underdo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열세자 동정 효과는 강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약자에게 연민을 느끼며 이들이 강자를 이겨 주기 바라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특별히 응원하는 팀이 없을 때 약자를 응원하거나 선거에서 불리한 후보에게 동정표가 쏠리는 현상을 언더독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 여론조사에서 실패한 여론조사 회사들이나 이를 보도한 언론사들이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사고를 치도록 놓아두는 우리 사회도 문제다. 이들이 국민들에게 던진 충격과 혼란, 그리고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켰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 조사 회사들이나 언론사들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왜곡된 선거보도·여론 조작이라는 소릴 듣게 되는 이유

무엇보다 언론은 조사의 신뢰도가 낮은 여론조사를 보도하지 말아야 하며, 정당한 조사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재정적으로 열악한 언론사들은 조사 경비가 싸다는 이유로, 때로는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여론조사의 질을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표본의 대표성이 거의 없거나 무응답률이 높은 여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보도하기 때문에 왜곡된 선거보도 또는 여론 조작이라는 소릴 듣게 된다.

최근 들어 인터넷이 만들어 낸 휴먼 네트워크는 미디어와는 매우 다른 환경을 창조한다. 수많은 컴퓨터가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과 사람을 빛의 속도로 연결하고 쌍방향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의 힘은 텍스트만이 아닌, 어찌 보면 텍스트보다 더 강력한 수단일 수 있는 동영상, 플래시 등 다양한 형식의 정보를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무한정으로 소통시킨다.

이처럼 인터넷은 정보 검색과 의견 교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중매체와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을 모두 포함한다. 황용석은 이러한 인터넷이 매개하는 정치 참여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첫째, 개인이 정치 정보를 찾고 이용하는 일련의 정치 정보 추구 활동이다. 정보 추구 활동은 정치 참여의 전제 조건이다. 인터넷으로 정치 뉴스를 읽거나 정당과 정치인 사이트에 방문하는 행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표명한 댓글을 읽어 사회 여론을 인지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 좀 더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행위로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고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활동이다. 단순한 정보 추구 활동보다 더 적극적인 참여 활동으로 해당 이슈에 대한 높은 관여와 참여 동기가 작동한다. 정치적 의견 표명은 온라인 공간의 댓글이나 게시판, 블로그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에서 일어난다.

셋째, 공동체 참여 활동이다. 공동체 참여 활동은 특정 조직에 능동적으로 가입해서 집단적으로 정치 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공동체는 지리적 접근성에 기반한 것을 의미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지리적 공동체와 더불어 이슈에 기반한 이슈 공동체 활동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슈 공동체는 급변하는 정치적 이슈와 관련해서 공중을 형성하고 사회적 집단행동을 이끈다. 

넷째, 각종 정치적 항의나 저항 활동이다. 이는 인터넷을 이용하여 정부나 정당, 정치인을 비판하고 그에 항의하는 활동을 말한다. 게시판 서명이나 비판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다섯째, 인터넷에서 공직자와 직 · 간접적으로 접촉해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 활동은 시민이 문제를 제기하고 자발적으로 공직자나 정책 결정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진정서를 제출하고 조직체의 구성을 통해 관계 공무원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는 행위로서, 대표적인 예가 민원이다. 이른바 ‘행동 경고(action alert)’가 바로 적극적 대응의 예다. 

여섯째, 선거 관련 활동이다. 인터넷에서 투표 행위가 직접 일어나지는 않지만, 투표를 설득하거나 입후보자를 위해 능동적으로 설득 행위를 수행하는 것, 정치헌금을 모금하는 행위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인터넷 댓글 통한 선거 개입 논란, 인터넷 정치 참여의 '역기능' 

자료사진
자료사진

일반적으로 1997년 15대 대선은 TV 선거였다면 2002년 16대 대선부터는 인터넷 선거,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도 역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SNS 선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텔레비전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 인터넷과 SNS 등 새로 등장한 뉴미디어들의 정치적 힘이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매개하는 정치 참여는 위와 같은 순기능 외에도 역기능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인터넷 댓글을 통한 대선 개입 논란은 바로 이러한 인터넷 정치 참여의 역기능으로 볼 수 있다.

선거 기간 중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권력의 끊임없는 여론 조작 기도와 이로 인한 민주주의의 훼손은 실로 큰 역기능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하고 신속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이 ‘여론 조작’의 공간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 기간 중에 발생한 권력기관의 여론 조작을 위한 사이버상의 댓글 행위는 ‘여론 조작 저널리즘(manipulation of public opinion’s journalism)’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위 글은 필자가 저술한 <선거보도의 열 가지 편향(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중 일부를 시의성 있게 수정·보완한 기사임. 

/박주현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