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맹꽁이들은 낮에는 흙을 파고 들어가거나 틈에 숨어 있다가 밤에 나와 먹이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비가내린 후에 물웅덩이로 암수가 모여 들어 수컷들이 울어댄다. “수컷들이 암컷을 부르는 구애의 소리다.”고 시어머니 정정숙으로 부터 들었던 기억이 났다. 영심을 찾지 않은 사위를 원망하며 “맹꽁이의 연가”란 시를 읊었다.

맹꽁이의 연가

맹꽁 맹꽁 맹맹꽁...

땅거미가 내려앉자마자

맹꽁이 신랑이

신부를 찾아 울어댄다.

울음소리를 들은 신부가

먼 길 떠난 신랑이 그리워

보고 싶다는 마음을 실어

한없이 속울음을 울어간다

간절한 사랑을 꿈꾸며

울음소리가 스러질 때까지...

지는 밤을 아쉬워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맹꽁이는 일반적인 개구리의 형태와 매우 다르게 생겼다. 몸통이 찐빵처럼 둥글게 부풀어 있고, 머리는 작으며, 네발은 매우 짧지만 힘이 강하고, 등은 노란색 또는 진한 갈색을 띠며, 여기저기 검은색 반점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몸빛과 모양으로 볼 때 암수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번식기에는 수컷의 몸빛이 검게 변하고, 울음주머니 때문에 턱이 약간 검은색을 띤다. 암컷의 턱은 얼룩이 뚜렷하다.

시어머니 정정숙에게 들었던 맹꽁이에 대한 옛날부터 내려온 이야기가 생각났다. 시어머니 정정숙은 “조선조 세종대왕의 뒤를 이어, 첫째 아들인 문종이 왕위에 올랐다”“문종은 평소부터 몸이 약해, 재위 2년 4개월 만에 일찍 승하했다”고 한다.

단종대왕의 어머니인 현덕왕후는 단종을 출산하고, 그 후유증으로 하루 만에 승하 하여 버렸다. 단종은 아무도 돌봐 줄 수 없고 의지 할 곳이 없는 혈혈단신이 되어 버렸다. 큰 아버지였던 세조(수양대군)가 조카의 왕 자리를 빼앗으려고 했다.

세조는 그 유명한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대왕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 민심이 두려워 차마 죽이지는 못했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육지속의 작은 섬이라 부르는 청령포로 유배를 보내버렸다. 유배지인 청령포가 여름철 홍수로 잠겨버리자, 영월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가 옮겨졌다. “1457년 10월 24일 17세의 어린나이에 금부도사가 가져온 사약을 끝까지 거부했다. 그러자 노끈으로 목을 졸라 죽였다.”한다.

 매일 매일 지켜보고 있던 칠복, 영심을 위로해주고 싶었으나...

단종대왕은 유배지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 씨를 그리워하며 망향탑을 쌓았다. 탑 앞에서 왕비의 건안을 기도한 후에 노산대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 통곡소리를 들은 청령포 맹꽁이들이 단종의 슬픈 곡소리에 따라 “맹꽁, 맹꽁, 맹맹꽁 하며, 슬픈 마음을 위로해 주려고 떼 창을 했다.”한다.

송화자가 송광사에 다녀 온지도 어느덧 석 달이 지났다. 고석병은 아무 연락도 없이 무심한 나날만 지나가자, 영심은 툇마루에 홀로 앉아 하늘의 구름만 쳐다보고 있었다. 식사도 거르면서 점점 더 쇠약해져가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매일 매일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칠복은 걱정이 커졌다. 영심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칠복은 위로해줄 방법이 없어서 안타까워하며 며칠을 망설였다. 하는 수 없이 영심에게 다가가 “혹시 고석병의 집에를 가 보고싶냐?”고 물어 보았다. 이에 영심이 “가보고는 싶지만 몸이 불편해서 갈 수가 없다”고 슬픈 얼굴로 대답을 하자, 칠복이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휠체어에 태워 데려다 주겠다.”고 영심을 달랬다.

다음날 일찍 아버지 김병만에게 “휠체어를 타고 칠복이와 함께 조성국민학교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조성역으로 가, 벌교로 가는 기차를 타고 고석병에게 향했다.

기차가 조성역을 출발해 긴 굴을 지나,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가 벌교역에 내렸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고흥에 있는 장수저수지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장수저수지 둑에는 장애인의 몸으로 임을 찾아온 영심을 위로하려는 듯, 수많은 야생화가 형형색색으로 피어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들이 반갑다고 손을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중에 노랑선 씀바귀, 뱀딸기, 꽈리, 꽃무릇, 나팔꽃, 괭이밥, 벌개미취, 민들레, 토끼풀 등이 유난스레 예쁜 모습으로 피었다.

장수저수지 아래쪽에 살고 있는, 고석병의 집을 찾아갔다. 볏집을 이엉으로 엮어 만든 담장이 보였는데, 차마 대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담장사이로 들여 다 보았다.

안방의 앞에 있는 나무로 만든 마루에 고석병과 부인이 앉아 있었다. 마당에는 딸 셋이 닭을 잡으려고 뒤를 쫓으며, 웃으면서 뛰어 놀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장면을 보고난 영심이 칠복에게 “고석병의 집에 들어가면 화기애애하게 살고 있는 가정에 불화가 올 것 같다. 그냥 돌아가자”고 했다. 말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봄이 되자 고석병이 영심을 찾아와...어느날 드디어 영심이 임신을

추수가 끝나고 초겨울에 접어들고 있는 어느 날 밤, 갑자기 고석병이 찾아왔다. 송화자가 깜짝 놀라, 씨암탉을 잡아 저녁을 대접하고 나서 영심에게 대려다 주었다.

영심도 갑자기 찾아온 고석병이 반갑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은 섭섭함에 말을 잃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머니 송화자가 술상을 보아가지고 찾아왔다.

이렇게 별 말도 없이 사나흘을 지내던 고석병이 말없이 떠나갔다. 봄이 되자 고석병이 영심을 찾아왔다. 몇 달이 지난 어느날, 송화자가 바라던 영심이 임신을 했다.

영심은 임신을 해, 밥도 먹지 못하면서 자꾸 토했다. 송화자는 “혹시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잘못 될까?” 노심초사하며, 임산부에 좋은 한약을 지어다 먹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부처님께 아이가 복중에서 잘 자라 무사히 순산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다음에 관세음보살께 빌고, 정화수를 떠놓고 조왕신에게 빌었다.

송화자는 걱정이 되어 덕촌부락에서 산모들의 순산을 가장 잘 도와준다는 금숙 엄마를 데려왔다. 금숙 엄마는 영심을 보자마자, 송화자와 행낭어멈을 불러놓고 “임신과 출산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통증과 고통은 관리할 수 있으니 규칙적으로 운동을 시켜주고, 중요부위를 주물러주면 효과가 크다.”고 방법을 일러 주었다.

“고통이 덜할 때 가급적 식사를 하도록 해 체력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몇 달 후에 출산이 가까워지면 다시와 아기를 받아주겠다.”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빌면서 8개월이 지나갔다. 영심의 배가 남산처럼 불러와 기어 다니기도 불편해졌다. 화장실에 갈 때에도 행낭어멈이 휠체어에 앉혀 대려다 주어야 만 했다.

아예 앉을 수가 없어 밥도 거의 먹지 못하게 되었다. 칠복이 나무를 잘라 조그만 식탁과 의자를 만들어, 밥을 먹을 때마다 행낭어멈이 의자에 앉혀놓고 먹여주었다.

영심, 전생에 겪었던 수많은 지옥들 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나날을 

배가 불러올수록 식사도 거의 못하고, 몸도 가누지 못해 가족들이 걱정스럽게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인 고석병은 영심의 임신 소식을 듣고도 나타나지 않았다.

영심은 전생에 겪었던 수많은 지옥들 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아기 아버지인 고석병의 얼굴을 보고 싶어 했으나 한 번도 다녀가지 않았다.

아무튼 남자들은 송화자가 말한 대로 “자식을 보는데 만 급급하고, 임신한 부인이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겪는 고통에 대해 헤아릴 줄 모르는 이기적인 동물”이었다.

10개월이 지난 어느 날, 영심이 저녁을 먹고 나서 앉아 있다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송화자는 “혹시나 출산을 위한 산통이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했다.

지속적으로 배가 아프다고 신음을 하였다. 진땀을 흘리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송화자가 금숙 엄마를 불러왔다. 금숙 엄마는 “지금은 분만 초기의 단계로 조기진통이 시작되었다. 수축의 강도와 주기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어 고통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영심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출산의 고통이 매우 크고 어려울 수 있다. 최선을 다해 돌보도록 하겠다.”했으나 고통의 신음소리는 밤공기를 찢고 커져만 갔다.

진통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열이 심하게 올라 영심의 몸이 불덩이 같이 뜨거워 지기도하고, 메스꺼워 구토를 하기도 하였다. 송화자가 걱정이 되어 “괜찮겠느냐?” 고 금숙 엄마에게 물어보니 “애가 나오기 위해 수축이 더욱 심해지고, 다리나 몸이 불편해져 가는 등 진통이 활동적으로 진행된 결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산통을 계속하면서 밤을 새고 동이 터왔다. 영심은 거의 실신상태가 되어버렸다. 영심이 정신을 조금 차리자, 금숙 엄마가 영심에게 “수축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아기를 밀어 내도록하라”고 알려 주었다. 송화자가 걱정이 되 “상태가 어떤가?”하고 물어보니, 금숙 엄마가 “영심의 몸이 아기를 밀어내는데 도움이 될 준비가 된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나올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관세음보살님께 순산을 도와 주십사하고 치성을 드리라.”고 권했다.

하는 수 없어 송화자는 하얀 쌀과 정화수를 떠놓고 촛불을 밝혔다. 관세음보살에게 “영심이 순산하도록 도와 주십사”하고 밤 낮 없이 계속해서 빌고 또 빌었다.

영심이 실신한지도 어느덧 이틀이 지나고 밤이 찾아왔다. 갑자기 미의 여신을 상징하는 물고기자리별이 밝은 빛을 내며, 영심이 누워 있는 방안으로 스며들어왔다.

“태어난 아기만 생각하며, 아기에 의지해 살아가겠다”결심

이어서 축 늘어져 있던 영심이 갑자기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기가 탄생하고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헤치고, 메아리처럼 덕촌부락에 울려 펴져 나갔다.

눈을 감았던 영심이 정신을 차려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영심은 모든 힘들었던 일들을 잊어버렸다. 보고 싶었던 고석병도 잊어버리고 아기만 눈에 보였다.

“어머니는 임신한 순간부터 안전하게 출산을 마칠 때까지, 아기만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출산 후에도 모든 관심은 아기에게 쏠린다.”하는 서왕모 말이 맞았다.

아기를 낳은 후, 송화자가 고석병에게 영심이 딸을 낳았다고 기별을 했다. 그 시점에 고석병의 본처가 아들을 낳았기에, 대를 이었다고 만족해하며 와보지도 않았다.

벌교 아저씨로 부터 “고석병이 이제부터는 영심과 연락을 끊고 본처와 살아갈 것이니, 그 동안의 인연은 잊어버리고 앞으로는 찾지 말아 달라.”한다고 연락이 왔다. 고석병이“아들을 낳이 대를 잇기 위해 장가를 들었다.”했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막 태어난 어린 딸의 얼굴도 한번 보지 않은 채, 오지 않겠다.”는 인정머리 없는 고석병은 잊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태어난 아기만 생각하며, 아기에 의지해 살아가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했다.(계속)

/이용이 작가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