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치안 컨트롤 타워' 마비가 끔찍한 거리 참사 키웠다...국가는 무엇 하나?

뉴스 초점

2022-11-05     박주현 기자

‘국민 누구나 걱정과 불안 없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을 약속합니다.’

3개월 전 대한민국 경찰의 총 책임자에 오른 윤희근 경찰청장이 '경찰청 홈페이지'에 소개해 놓은 글이다. 지난 8월 10일 취임한 직후 윤 청장은 "실력 있고 당당한 경찰, 현장 문제 해결력을 가진 경찰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청장으로서 버팀목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데 취임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그가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시민들이 압사 참사를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한 그 시간에 연락이 닿지 않아 참사를 더 키운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 사고 이후 행적 함구하다 언론 취재 시작되자 당일 ‘제천에 있었다’ 확인” 

경찰청 홈페이지 갈무리.

대한민국 치안의 컨트롤 타워가 마비된 상태에서 150명이 넘은 시민들이 무참히 사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사고 이후 사과와 책임 있는 자세보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정부와 국가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더욱 확산되는 이유다. 

5일 오마이뉴스 등 일부 언론들은 '윤희근 경찰청장이 이태원 참사 이후 행적을 함구하다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 참사 당일 2시간이 지나서야 충북 제천에서 첫 보고 받고 조치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언론들의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윤 청장은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난 10월 29일 충북 제천의 한 캠핑장에서 개인 친목모임에 참석하고 있었으며 참사 발생 후 2시간이 지난 30일 새벽 0시 14분에 경찰청장에 첫 보고가 이루어져 초기 대응이 소홀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마이뉴스는 이날 ‘윤희근 경찰청장, '이태원 참사' 당시 캠핑장에 있었다’의 기사에서 “경찰청은 오마이뉴스가 4일 오전 취재를 시작하자 ‘윤 청장이 당시 충북지역에 머물고 있었다’라며 구체적 장소는 공개하지 않다가 반론 취재 등을 요청하자 친목모임인 등산 후 캠핌장에 있었다고 행선지를 뒤늦게 언론에 알렸다”고 전했다.

또한 기사는 “윤 청장은 29일 오후부터 제천 월악산을 등산 한 후 한 유명 캠핑장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경찰 직원들과 모임을 가졌으며 이날 캠핑 모임은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 가운데 윤 청장은 이태원 참사 발생 사실을 모른 채 오후 11시께 취침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참사가 발생한 이후 윤 청장의 지휘 라인 보고 지연 및 초동 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참사를 더 키웠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경찰 지휘 라인 부재...참사 더 키워" 

윤희근 경찰청장 관련 기사 모음(포털 '다음' 갈무리)

오마이뉴스 등 언론의 관련 보도를 종합하면 경찰청 상황담당관은 사고가 발생한 당일 밤 11시 32분 이태원 참사 발생 보고 문자를 보냈지만 윤 청장이 확인하지 못했고, 20분 후인 밤 11시 52분 다시 상황담당관이 전화를 했지만 받지 못했다. 

결국 참사 당일인 29일을 넘겨 30일 새벽 0시 14분이 돼서야 윤 청장은 상황담당관의 전화를 받고 참사 발생 사실을 처음 인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청장은 첫 신고가 이뤄진 지 2시간이 지나서야 최초 보고를 받은 것이어서 지휘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후 윤 청장은 서울로 출발했고, 5분 뒤 서울경찰청장에게 전화를 통해 총력 대응을 지시했지만 이미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뒤였다. 오마이뉴스는 관련 보도에서 "결국 윤 청장이 상경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30일 오전 2시 30분이 돼서야 경찰청에서 지휘부 회의를 주재할 수 있었지만 이 역시 참사 발생을 인지한 지 2시간 16분이 지난 후였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경찰청장의 이러한 지휘 라인 이탈 외에 사고가 발생한 당일 용산경찰서장도 사고 현장에 늦게 도착해 지휘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 경찰청 특별감찰팀에 의해 확인됐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경찰청 특별감찰팀은 3일 “사고 당시 현장을 관할하던 이임재 용산경찰서장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 임무를 수행하던 류미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이 업무를 태만히 수행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에 대해 “사고 현장에 늦게 도착해 지휘 관리를 소홀히 하였으며, 보고도 지연한 사실이 확인되었다”며 “2일자로 대기발령했고 수사의뢰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 서장은 사고 당일 사건 발생 5분 뒤인 오후 10시 20분에 현장에 도착했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1시간 10분여 뒤 뒤늦게 전화 보고한 점이 문제로 제기됐다. 

또 경찰청은 “서울청 상환관리관은 상황관리를 총괄해야 함에도 이를 태만히 하여 상황 인지 및 보고가 지연된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에 류 총경을 대기발령하고 수사의뢰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청 상황관리관은 총경 계급으로 상황팀장(경정)과 함께 당일 서울 관내에서 발생하는 야간 사건 접수와 처리 등을 담당하기 때문에 매뉴얼상으로는 야간에 서울경찰청장의 직무대리 역할을 하게 되는 직급이다. 이처럼 사고 당일 경찰청장을 비롯해 수도 치안의 주요 지휘 라인이 줄줄이 마비됐음이 드러났다. 

서울시장·용산구청장 부재...행정도 ‘안일’, 책임은 ‘뒷전’ 

더구나 끔찍한 참사가 발생한 용산구는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곳이다. 그런데 경찰의 지휘부 마비로 많은 시민들이 무질서한 길거리에서 처참히 희생을 당해야만 했으니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경찰 지휘부뿐만 아니라 사고 당일 용산구청장도 부재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참사 당일 행보가 뒤늦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참사 발생 2시간 전에 현장을 지났으나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데다, 참사 현장은 박 구청장의 자택 근처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구청장은 당시 고향인 경남 의령군 축제에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구청장이 참사 직전 현장 주변을 지나고도 책임 언급은 없었다는 점에서 공분이 거세다. 용산구청장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는 이유다. 

3년 만의 '노 마스크 핼러윈‘인 만큼 인파가 많이 몰릴 거라고 예상하고도 정작 안전 인력은 한 명도 배치하지 않은 데다 사고 발생 이후 지난달 31일 그는 언론에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해왔고,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행사 주최가 없다는 점을 들며 “이건 축제가 아니다.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현상’이라고 봐야 되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게다가 사고 발생 전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해외 출장 중이었다. 이처럼 이태원 압사 참사는 대한민국 경찰과 서울시·용산구 등 행정이 뒷짐지며 지휘 라인이 마비된 사이에 더욱 희생이 컸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지자체 총괄, 행안부 장관 책임 회피성 발언...공분 더 키워 

KBS 10월 30일 뉴스 화면(캡처)

더욱이 경찰과 지자체 모두를 관할하는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수장인 이상민 장관의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는 책임 회피성 발언이 논란과 공분을 더욱 키웠다. 여기에 정부는 참사 대신 사고란 단어를 쓰고, 근조 리본 대신 검은 리본을 사용하라는 지침을 내린 사실이 알려지며 시민사회단체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책임론과 공분이 커지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번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사실 규명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결과에 따라 조치를 엄중히 취하고, 국민 여러분께도 소상히 설명드리겠다"고 말했지만 국민적 공분을 누그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경찰도 “사고 특별감찰팀은 앞으로도 이번 사건에 관한 경찰 대응이 적절하였는지 면밀히 확인하고 필요 시에는 수사 의뢰 등 엄정히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정작 사고 당일 지휘 라인을 이탈한 경찰총장의 행적이 드러난 바람에 오히려 따가운 시선을 받는 모양새가 됐다. 

“국민의 생명·안전에 무책임한 국가, 국민이 반드시 책임 물어야”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48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이 때문에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국가에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끔찍한 사고의 희생자 유족들과 이를 목격한 많은 국민들은 허망함 속에서 거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모두가 힘들어 하는 시간에 정부와 국가는 책임과 사과를 미루다 시간이 지나면서 컨트롤 타워에 문제가 있었음이 확인되자 '유감'에서 '사과'로 고개를 서서히 숙이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더욱 큰 고통과 분노를 동시에 감내하고 있다. 

"이번 참사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국가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책임한 국가를 국민들은 더 이상 참아주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이유다. 희생자들을 다시 되살릴 수는 없지만 같은 참사가 어디에서든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게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