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솟아나 앞섶에 뚝뚝 떨어지고

신정일의 '길 위에서'

2022-11-02     신정일 객원기자

한탄강을 걷다가 임진강을 따라 걸으며 황당하기만한 비보 때문에 하루 내내 마음이 무겁고도 심란하기만 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알 수 없고,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구나 가끔은 스스로에게 “너 지금 잘 살고 있니?”라고 물을 때가 있을 것이다. 무료하거나 내 삶의 이정표는 과연 제대로 서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그때마다 정신은 짙은 안개처럼 흐릿하기만 하고, 나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쯤 가고 있는가, 분간조차 할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때도 아닌데, 나는 슬프고 슬퍼서 이 한 밤에 자다가 일어나 쓸쓸하고도 슬픈 글을 쓰고 있으니, 그대는 마음 비우고 눈물 글썽이며 눈물이 뚝뚝 떨어져 종이에 번져가는 편지를 써본 적이 있는가? 나는 진정 누구를 위해 하염없이 내리는 봄비처럼 울어본 적이 있는가.

연암 박지원이 안의 현감으로 있을 때 함께 어울렸던 벗들을 생각하며 <어떤 사람에게> 쓴 편지 속에 그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슬픔이 가득 담겨져 있다.

"심한 더위 중에 여러분들 두루 편안하게 지내시는가? 성흠(聖欽) 이희명은 근래 어떻게 생활하며 지내고 있는지? 항상 마음에 걸려 더욱 잊혀지지가 않네. 중존(仲存) 이재성과는 가끔 서로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지? 백선(伯善)은 총교(청파교)를 이미 떠나고 성위(이희명의 형 이희경)도 이동(지금의 운니동)에 없다고 하니, 이와 같은 긴긴 여름날에 무엇을 하며 소일하고 지내는지 모르겠네.

듣자하니 재선(在先) 박제가는 이미 벼슬을 그만두었다는데, 집에 돌아온 뒤로 몇 번이나 서로 만나보았는가? 재선이 이미 조강지처를 잃었고, 무관(懋官) 이덕무 같은 훌륭한 벗을 잃었으니, 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외롭고 쓸쓸한 외톨이로 지내고 있는 것은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상상할 수가 있네. 그것 또한 하늘과 땅 사이에 의지가지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 

박지원은 이어서 아내를 잃고 쓸쓸해하는 박제가를 위로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지었다. 

"눈물을 드리운 채 눈을 들어 바라보노라면 텅 빈 산에 사람 하나 없는데, 물은 절로 흐르고 꽃은 저절로 피어 있네. 누군가가 물었을 것이네. 네가 백아를 보았느냐고? 암, 보았고말고.”

<연암집>에 실린 글이다.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이것은 죽음만도 못한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날을 당신은 살아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피를 토하듯 피투성이의 영혼이 통곡하는 듯한 글을 써 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에게 인생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그들이 인생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는 사이에”라는 세네카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느 곁에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버리고, 우리에게는 볼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만 남아 있다. 문득 구양수의 <그리움만 쌓이네>라는 시의 일절이 떠오른다.

"노래 한 곡 부르며 술잔 앞에서 그림 그려진 부채를 펼치니 문득 그가 가깝게 온 것 같다가는 다시 또 멀어져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네. 계속해서 그리움만 쌓이고 볼 길이 없으니 천금도 보기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네." 

일찍 떠나간 모든 분들에게 노란 꽃을 바치며 남은 가족들에게도 슬픔의 위로를 건넵니다. 부디 저승에서는 마냥 행복하시기를.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