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자 없는 자발적 행사엔 '안전 매뉴얼' 없는 대한민국...참여 국민들 생명·안전 누가 지키나?
뉴스 초점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대한민국'이란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새삼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주최자 없는 행사나 축제의 경우 안전 매뉴얼이 없다“는 정부 당국의 책임 회피성 발언과 안일한 안전대책에 국민적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김성호 행정안전부(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지난 31일 이태원 참사 관련 브리핑에서 “주최자가 없는 행사 개최는 유례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침이나 매뉴얼이 없었다”며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행안부는 "각 지자체가 주최하는 지역 축제 안전관리를 위해 지난해 매뉴얼을 마련했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처럼 주최자를 특정할 수 없어 이 매뉴얼을 적용하지 못했다"고 주장해 ‘사후 약방문식'에도 못 미친 대응이란 비난이 높게 일고 있다.
이태원 참사, 사과 없는 정부-들끓는 ‘민심’
가뜩이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책임 회피성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며 분노를 자극시켰다. 이 장관은 지난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회의 브리핑 과정에서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코로나19가 풀리는 상황이 있었지만, 예년의 경우하고 비교해서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고 밝혀 책임 회피성 발언이란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이 장관은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하고 있다”고 말해 공분을 키웠다. 행안부와 경찰, 지자체 등은 현행 재난안전관리법 66조 11의 '‘지역 축제를 개최하려는 자’가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사전 통보하고, 안전 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안전관리 계획 수립의 주체가 ‘지역 축제를 개최하려는 자’로 돼 있어 이번 핼러윈 행사와 같은 자발적 행사는 관리 책임의 주체가 없는 안전 사각지대가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이 같은 주장은 역으로 '자발적으로 모인 인파를 관리할 안전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이번 이태원 참사를 방치했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가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크다.
‘주최자 없는’ 대규모성 축제, 안전 무방비...정부 스스로 자인한 셈
이 때문에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지자체와 경찰 모두를 관할하는 행안부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는 점을 줄곧 강조하며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식의 주장을 늘어놓아 국민적 저항과 분노를 키우고 있다.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성이자 면피용이란 지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핼러윈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등 ‘주최자가 없는’ 각종 대규모성 기념 행사와 민간 축제의 경우 그동안 안전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왔음을 정부가 스스로 자인한 셈이어서 더욱 논란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많은 시민들은 “주최가 없는 집단행사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해도 안전 매뉴얼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의 안전과 질서를 책임져야 할 지자체와 경찰 등 행정·치안당국이 손놓고 바라만 봐도 된다는 것이냐”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사고 발생 가능 행사들 손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던 말인가?” 분노 확산
이를 의식한 듯 윤석열 대통령은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사고 예방 안전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 데 이어 국민의힘이 부랴부랴 1일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도 안전 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재난안전관리법 개정' 추진에 나섰다.
일선 자치단체들도 뒤늦게 주최·주관이 불분명한 각종 행사의 안전 매뉴얼 만들기에 부심하고 나섰다. 전북지역에서도 유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 사각지대에 대한 안전관리 매뉴얼 점검과 안전위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전주시가 발빠르게 나선 모양새다.
"지난 2월 17일 기준 지역축제 안전관리기본계획수립과 시 자체적으로 지침을 만들고 있다"고 밝힌 전주시는 “지역축제를 개최하기 전 주관하는 부서나 담당기관에 해당사항에 관한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한다”며 “주최나 특정 기관이 없는 행사가 발생될 시 안전이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시 자체적으로라도 통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154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핼로윈 참사 이후 주관·주최가 없는 불분명한 모임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매뉴얼 적용 범위에 대한 논란은 쉽게 가라 앉지 않는 분위기다. 문제는 현재까지는 주최자가 없는 대규모 집단 행사의 경우 정부의 안전 매뉴얼이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행안부 장관, 과연 시민들 안전을 책임질 자격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정부와 서울시의 대응을 놓고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이 목소리를 높이고 나설 만하다. 민주당은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에게 정부 차원의 진솔한 사과부터 요구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일이 발생을 하면 사과부터 하셔야 한다”고 질책했다. 또한 “유감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며 “그런데 사과를 안하는것 같다. 어느 누구도 사과한다는 이야기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의당도 이날 이태원 참사에 대해 “참사가 일어난 골목은 세계 음식문화 거리와 클럽 등이 밀집돼있어 매년 핼로윈 축제마다 인파가 몰리는 안전대책 필수 지역이었다”며 “하지만 당시 용산구와 경찰의 관리대책에는 방역과 위생만 있을 뿐 시민안전대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의당은 “왜 안전대책이 빠졌는지 등 참사의 원인과 책임 규명 요구를 ‘선동성 정치적 주장’이라고 호도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과연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질 자격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직격했다. 특히 심상정 의원은 “이태원 참사는 안일한 행정으로 발생한 전형적인 후진국형 참사”라며“이번 참사가 미리 예견된 대규모 군중의 밀도를 관리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며 정부를 맹공하고 있다. 유 전 의원은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국가의 국민 보호 의무를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34조 6항' 법조문을 올려 시선을 끌었다.
헌법 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 전 의원은 전날에도 이태원 참사 원인 규명을 주장하며 "경찰·소방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파면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핼러윈 압사 참사'는 일어나선 안 될 참사였음에도 책임과 사과 대신 변명과 해명으로 떠넘기기에 급급한 정부를 향한 성난 민심이 마냥 들끓고 있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