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울 수 있는 남자가 용기 있는 사람이다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2022-10-31     강준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나는 눈물과 슬픔이 단지 여자들에게만 속한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의 말이다. 그는 어린 딸이 죽었을 때 울었다는데, 그런 상황에서 울지 않는 아빠가 있을 수 있을까? 

“내가 가는 곳마다 나에겐 어두운 운명이 따라다니고 있고, 또 나만큼 눈물을 많이 흘려 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프랑스 계몽 사상가 장 작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의 말이다. 루소에 대해 비판적인 영국 작가 폴 존슨(Paul Johnson, 1928-)은 “이런 얘기는 특히 신분이 높은 귀부인들의 동정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는 산전수전 모두 겪은 심리적인 사기꾼이었다”고 주장했다. 믿거나 말거나.

“감수성은 체질의 나약함이 아니다. 정말로 남성다운 남성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여성의 눈물보다 더 우리를 감동시킨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의 말이다. 디드로는 관객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연극의 유익한 효과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희극이 공연되는 극장 아래층 뒷자리는 덕성스러운 사람과 악한 사람의 눈물이 뒤섞이는 유일한 장소이다.” 

남자의 눈물

남자의 눈물은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달리 보긴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건 어떤 상황에서 우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정치인의 눈물에 대해서 그렇다. 세계 정치인들 중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만큼 눈물이 많았던 정치인은 없었을 게다. 처칠은 자신의 마지막 개인 비서관 앤서니 브라운에게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엄청나게 많이 운다네. 여기에 익숙해져야 해”라고 당부하기도 했는데, 브라운은 처칠의 눈물이 ‘영웅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마침표라고 주장했다.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공개 석상에서 우는 모습을 50차례 넘게 보여줬다. 모든 눈물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진 않았겠지만, 영국의 전쟁사가 앤드루 로버츠(Andrew Roberts, 1963-)는 “처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눈물이었다”고 말한다. 로버츠는 “자신의 눈물을 마치 질병처럼 여겼던 처칠은 주치의에게 1924년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조지 보궐선거에서 단 43표 차이로 패배했을 때부터 눈물이 많아졌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처칠은 보궐선거 전에도 운 적이 많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걸핏하면 눈물을 흘렸던 그는 불굴의 정신을 지닌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보다는, 그들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태어나 다소 격정적이고 예민한 삶을 살다 간 섭정 시대의 귀족에 가까웠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수상이 눈물을 흘릴 때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처칠이 우는 모습을 보며 그가 감정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솔직한 리더라고 생각했다. 처칠이 1940년 런던 대공습으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된 런던 부두를 방문해 눈물을 흘렸을 때 그곳에 있던 한 노파는 참모총장 헤이스팅스 이즈메이에게 이렇게 외쳤다. ‘보세요, 그는 지금 이 사태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네요. 울고 있잖아요.’” 

한국인들은 비교적 눈물이 많은 편이다. 한국학 전문가인 언론인 이규태(1933~2006)는 [한국인의 정서구조 1: 해학과 눈물의 한국인](1994)에서 “한국 사람은 기쁠 때도 운다. 외국 사람도 기쁠 때 누선(淚腺)을 자극받는다고 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처럼 그렇게 수월하게 우는 법은 없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한국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모성원리 아래 자랐기에 정동적이고 감정에 젖어 있다. 그래서 잘도 운다”고 설명했다. 

눈물의 문화 

2004년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한류 선풍을 불러 일으킨 데엔 주인공 강준상의 눈물이 큰 역할을 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준상은 드라마가 방송되는 20회 내내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며, 여성으로 인해 행복해하고 아파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여성들만이 해왔던 관계 유지에 필요한 노동을 기꺼이 분담하는, 여성과 대화할 능력이 있는 새로운 남성이다! 이를테면, 여성들에게 강준상은, 스스로 노동자가 된 자본가, 흑인 노예가 된 백인인 것이다. 전후 50년 동안 ‘회사 인간’만을 겪어온 일본 여성들은 말한다. ‘일본 드라마에서는 남자의 눈물을 본 적이 없어요.’” 

실제로 일본 남자들은 한국 남자에 비해 잘 울지 않는다. 아니 울고 싶어도 남자의 눈물을 좋지 않게 보는 문화 때문에 그걸 억눌러야만 한다. 일본엔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같이 울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루이카스(淚活)'라는 모임이 있다는데, 2016년 이 모임에 참석한 어느 회사원은 이렇게 말했다. “남자는 회사에서 울면 ‘약한 인간’이 되고, 집에 가서 울면 아내와 자식이 걱정하니까 여기 온다.”

‘루이카스’ 모임은 한국에도 있다. 2018년 4월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엔 30~40대로 보이는 남성들이 모여들었다. 카페 입구엔 일반 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11명의 남성들은 간단한 수인사를 나눈 뒤 익숙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슬프거나 비극적인 내용의 영화를 보면서 각자 내키는 대로 울었다고 한다. 이 모임의 회원인 조모(39)씨는 이렇게 말했다나. "예전보다 울음이 많아졌지만 창피하고 익숙지 않아 참기만 했다. 이곳에서 한참 울다 보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든다.“

“눈물을 보이며 ‘나는 지금 힘들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김병수가 [이상한 나라의 심리학](2019)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감정을 덜 억압한다. 강한 사람은 감정에 솔직하고, 감정 표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울 수 있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이다. 용기 있는 사람이 세상을 향해 눈물을 보일 수 있다.” 눈물 많은 남자들이여, 기 죽지 말고 원 없이 우시라. 당신은 건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