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생각도 나지 않는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다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2022-10-17     강준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신이시여, 기억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기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광대한 성소입니다. 누가 그 깊이를 잴 수 있겠습니까?”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354~430)의 말이다. 그의 ‘기억 찬양’을 더 들어보자. “나는 혀를 움직이거나 목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이 모든 일은 내 안에서, 나의 기억이라는 광대한 수도원 안에서 일어난다. 이 안에는 하늘도 있고, 땅도 있고, 바다도 있어서, 내가 부르면 언제든 나타난다....나는 이 안에서 나 자신도 만날 수 있다.”

“기억, 뇌를 감시하는 교도관.” 영국 극작가 윌리엄 쉐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맥베스(Macbeth)](1605∼1606년으로 추정)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기억이 늘 주인의 뜻에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건 아니다.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은 기억에 대해 이런 불평을 했다. “기억은 때로는 내용을 매우 잘 간직해주며 쓸모 있고 순종적이지만, 또 어떤 때는 너무나 혼란스럽고 약하며, 또 다른 때는 너무나 포악하고 제멋대로다.” 

기억의 목적 

“‘내가 그렇게 했어.’ 나의 기억이 말한다. ‘내가 그렇게 했을 리가 없어.’ 나의 자존심이 확고하게 말한다. 결국 기억이 굴복하고 만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말이다. 사실 자신의 자존심을 보호하거나 세우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기억을 조작하지만, 자존심은 그런 조작에 대한 기억마저 없애주니 그걸 알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기억은 진실 말고도 여러 주인을 섬긴다.” 미국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 1915~2016)의 말이다. “기억은 미덥지 못하고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 역사가이다. 기억은 종종 과거 사건의 윤곽을 흐리게 하고, 범죄성을 호도하며, 진실을 왜곡하는 자기고양편향(ego-enhancing bias)에 의해 재단되고 형성된다.” 미국 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Elliot Aronson, 1932~)의 말이다. 미국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Jonathan Gottschall, 1972~)은 [스토리텔링 애니멀: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2012)에서 위 두 명언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억의 목적이 과거를 사진처럼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라면 기억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기억의 목적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라면 기억의 유연성이 실제로는 유용할지도 모른다. 기억의 결함은 의도된 것인지도 모른다....우리가 과거를 잘못 기억하는 이유는 삶 이야기에서 주인공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기억의 목적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라면 기억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수단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리더십을 행사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선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상 그런 능력이 가장 뛰어난 대표적 인물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가 거론되곤 한다. 영국의 전쟁사가 앤드루 로버츠(Andrew Roberts, 1963~)는 [승자의 DNA: 300년 전쟁사에서 찾은 승리의 도구](2019)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폴레옹은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아주 잘 기억했다. 황제는 행군 도중에도 수많은 부대원 중 자신과 함께 전투에 참여한 병사에게 다가가 전투를 회상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지목을 받은 병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황제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물론 나폴레옹의 주위에는 계급별 병졸들의 이름을 외워 알려주는 유능한 참모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모든 병사의 이름을 다 알지는 못했고, 더러는 나폴레옹이 먼저 나서서 병사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나폴레옹의 기억력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기억과 선택 

리더에겐 기억하는 게 중요하지만,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에겐 기억되는 게 중요하다. “‘기억된다’는 말과 ‘선택된다’는 말은 동의어다. 생각도 나지 않는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교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 1946~)가 [권력의 기술(Power)](2010)에서 한 말이다. 친숙성이 선호도와 직결된다는 뜻으로 한 말이지만, 중국의 심리상담사 구위안인은 [영향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2014)라는 책에서 이 말에 좀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해 다음과 같은 자기계발용 조언을 내놓는다.

“상대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자주 얼굴을 마주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서 당신의 얼굴을 자주 보여줘라. 눈도장을 자주 찍을수록 당신의 영향력 역시 커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런 조언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일지라도 눈도장을 찍는 걸 완전히 외면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긴 어려울 것이다. 어쩌겠는가. 생각도 나지 않는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다고 하니,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진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선 눈도장 찍는 일과 적정 수준의 타협을 해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