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은 이웃 사촌의 '접착제'

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85)

2022-10-12     김용근 객원기자

마을이 동네 장구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하면 이웃 싸움이 심해진다. 농촌은 이웃 사촌 공동체다. 골목에 부는 바람통으로 이웃이고 풍물로 사촌이다. 골목과 풍물은 이웃 사촌의 씨줄과 날줄이다. 

그래서 바람통을 늘 열어 놓기 위해 골목에 물건을 쌓아놓지 않아야 했고 생겨나는 갈등의 소화제인 풍물 도구 장구와 북을 함께 만들어 사용해야 했다. 그 실체는 농촌 풍물 중 징, 괭가리는 모셔오고 장구, 북은 만들어 쓴다는 말에 있다.

징, 괭과리는 돈 주고 사오고 북, 장구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는 말이다. 세상에 내어 놓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 디자인 된 것이었다고 하니 동네 장구가 그렇다. 

"덩더쿵 거리고 쿵기닥 거리는 소리만 나면 됐지, 겉모냥이 무신 상관 있것소. 울퉁불퉁해도 동네 사람들 손만 잘타서 제 소리만 내면 된단 말이시." 

옛날에 장구를 만드셨다는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동네에 손재주만 쫴끔 있는 사람이라먼 누구라도 맹글어썼제. 오동나무 베다가 절구통같이 깎고 구멍 파내고, 가죽 무두 질 해각고 무명실로 끈 쪼여서 맹들어. 그렇게 맹글어 놓은 장구보고 옆동네 장구보다 더 좋네 안좋네 헌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어. 동네 사람들 마음이 그 장구 속에 다 들었기 때문이여." 

장구 만드는데 동네 사람 마음 보태지 않은이 없다는 말은 풍물이 마을 공동체 마중물이라는 말이다. 마을은 신명의 창고다. 흥은 신명에서 나온다. 흥은 이웃 사촌의 접착제다. 마을을 구심으로 모으는 기운인 신명은 풍물놀이에서 시작된다.

조상들은 꽹과리는 심장을 울리고, 징은 간을 울리며, 북은 폐를 울리고, 장구는 신장을 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는 곧 징이 봄의 기운을 내고, 꽹과리가 여름의 기운을 내며, 북이 가을의 기운을 내고, 장구가 겨울의 기운을 내게 되어 사물놀이판에서 사계절 자연의 기운을 몸에 얻는다고 생각했다.

그 계절 기운 중 새봄을 준비하는 겨울 기운이 쇠하면 질투와 시기가 생겨나 이웃이 두려워진다는 것이니 겨울과 신장은 오행 중 공포의 샘물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장구가 그것을 해소해 내는 처방제였고 장구만큼은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괭과리와 징은 뉘어놓고 장구와 북은 걸어 놓아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은 풍물의 정체성이다. 두손을 합해야 소리를 내는 장구는 이웃을 사촌으로 묶어내는 문화 도구였다. 공동체 문화는 삶터의 마음이 디자인 되어 세상에 나온 것이다. 함께하는 풍물 놀이는 조각난 마음의 접착제였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